유라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
음반을 이해하거나 정의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EP < Gaussian > 이후 재즈 그룹 만동과 함께 낸 음반 <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 >에서 부각된 재즈적 터치가 그의 첫 정규인 이번 신보에 짙게 자리한다. 개인 커리어와 콜라보 음반 사이 연결 고리를 찾자면 그 접촉면은 후자에 더 넓게 포진해 있다. 과거 코스믹 보이와 함께한 싱글 ‘Can I love?’, 기리보이와 손잡은 ‘도쿄’ 같은 곡에서 느껴지던 대중 감성, 이미지가 최근 커리어에서는 많이 옅어졌다. 변화 혹은 자유로움. 작품 첫 장에서 느껴지는 인상이다.
의중을 알 수 없는 타이틀만큼 수록곡 역시 저마다 난해하고 의문스러운 제목을 가진다.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 ‘허영 깊은 분위기에 실오라기 같은 눈을 가진 자’ 등 쉬이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노래 명 사이 전곡의 작∙편곡을 함께한 그룹 만동의 멤버이자 베이시스트 손남현의 터치가 가미되자 앨범의 질감은 전에 없이 독특해진다. 희뿌연 연기와 흐릿한 실루엣이 연일 소리로 만들어진다. 모호하고 아슴아슴한 가사의 나열이, 감정 표현을 최대한 거둬 낸 듯 노래하는 유라의 보컬이,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툭 던져 낸 음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해석의 실마리는 귀보다 마음을 열었을 때 다가온다. “순수 현존하려면 바로 응고해야 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곡들은 찰나의 순간, 기억을 소재로 파편화된 무언가를 표현한다. 거두절미하고 감각한 것들을 적시한 가사는 데뷔 이래 그가 늘 음악을 써온 방식이다. 즉, 재즈에 거점을 두고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그 문체는 언제나처럼 ‘유라스럽다’. 다양성과 통일성이란 두 가지 틀을 중심으로 자기감정을 노래하는 이 아티스트의 음악은, 애써 길을 찾지 않고, 구태여 길을 잃고자 할 때, 그제서야 우리에게로 온다.
둥둥거리는 베이스와 함께 묘한 긴장감이 서린 ‘목에게’, 전자음을 가미해 복잡한 내면을 서술한 것만 같은 ‘따갑고 부끄러워지는 것’을 지나 중후반부 ‘수풀 연못 색 치마’, ‘그늘덮개’, ‘동물원’로 이어지는 3곡은 이 작품의 핵심이자 정수다. 일면 대표곡 ‘미미’가 떠오르기도 하는 ‘그늘덮개’는 곡 말미 통기타 사운드를 덧대며 ‘그리움’, ‘외로움’을 말로 내뱉지 않으며 포착한다. ‘동물원’은 밴드 셋의 로큰롤로 밝게 서글픔을 노래한다. “저기 봄볕은 오뉴월 물드는 풍경을 볶고 있고”로 시작해 “떠난 자국 위에는 무지개가 생길 거다 말하면서”로 끝나는 노래라니. 근사하다.
유일한 아쉬움은 음반의 끝이 너무 빠르게 묶여 버린다는 데 있다. 3분 남짓 8개 수록곡으로 정규의 메시지를 다 풀어내기엔 그 무게가 다소 가볍다는 인상도 든다. 한편으론 달려 나가면서, 되레 앨범의 문을 열어둔 채 끝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빈 공간엔 청자의 해석을 덧대라는 식으로. 자유롭고 풍부한 음반. 주제를 가두지 않고 노래의 끈을 잘라 각자의 순간을 곡에 빗대게 한다. 꿈속인 듯 몽롱하고 현실인 양 비범하다. 언어적 상상력의 끝에 음악이 걸려있을지니, 그걸 잡아 의미를 새기는 건 오롯이 듣는 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