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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May 26. 2018

아버님의 독상, 그리고 보름달

생의 심리학 52 |  지금 이 순간의 행복

날이 맑아, 밝은 달이 유난히 제 가슴에 들어와 조용히 저를 울리고 있는 요즈음 밤입니다.


우리들의 지나온 삶이란, 어렵고도 어렵던 그 시절들이었던지라 아무래도 먹고사는 일이 힘들었고, 그래서 먹는 데에 대한 추억이 많은가 봅니다.

 

만날 때의 인사도 으레 우리 또래 위의 사람들에게서는 ‘밥 먹었냐?’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인사하는 것을 좀처럼 보기 힘들지 않습니까? 먹는 일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고, 예전보다는 많이 넉넉해졌다는 객관적인 증거일까요.


苦盡甘來.

‘고생이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전에 우리를 괴롭혔던 그 시련들의 고통을 알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크면 클수록 우리는 작은 행복에도 감동할 줄 알게 됩니다.


그래도 어려운 시절을 견뎌냈던 마지막 세대인 우리처럼 중늙은이 정도 되면 지나온 세월들이 그러하니까 웬만큼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 옛날 ‘못 먹고 못 입고 못 살던’ 그때보단 낫다는, 위안의 기준점들이 아마도 있을 겁니다.


이제……이 길고 긴 세월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깊은 한숨부터 납니다.

군인이셨던 아버님께서 서울 집에 계시게 될 무렵부터 떠올려지는 기억입니다.


아버님은 집에서 늘 독상(獨床)을 받으셨습니다.

6남매의 아이들은 주방에서 전쟁 치르듯이 밥을 먹고, 아버님께선 안방에서 따로 상을 받으셨습니다. 그 옆에서 어머니는 함께 드시지도 않고 조용히 앉아 생선 살을 발라서 아버님 수저 위에 올려주시곤 했습니다.


노곤한 봄에서부터 여름날까지 휴일날이면 된장찌개에 배추쌈을 좋아하시던 아버님께선 반주로 막걸리 한 주전자와 함께 푸짐한 점심을 드시곤 햇볕 좋은 상도동 우리 집 툇마루에 누우셔서 한잠 주무시곤 하셨습니다. 그때 오르락내리락하던 아버님 배가 왜 그리도 높아 보였는지요.


그래서 그 독상은 아버님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셨고, 늘 배고팠던 젊은 날의 우리들에겐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기회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버님의 상 위에는 우리 상과는 상당히 차별화가 되어 있던 터라 군침 돌게 만드는 별미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특히 아버님께선 혈압이 높으셨던 터라 계란 프라이에서 매일 흰자위만 드시고 콜레스테롤이 많은 노른자위는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아버님 출근을 배웅하고 집에 남은 어린 세 남매 중의 발 빠르고 눈치 빠른 제가 그 노른자위를 한 입에 꿀꺽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얼마 되지 않은 날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 곁을 떠나실 때까지 무려 20년의 세월 동안 아버님은 본인이 원치 않으셨던 독상(獨床)을 평생 받게 되신 겁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거의 온몸이 마비가 되신 아버님께선 입으로 당신이 하시고 싶은 말씀 한 마디도 하실 수 없게 되셨고, 드시고 싶으신 음식 아무것도 드실 수 없게 되셨습니다.

 

당신의 몸에서 세상으로 연결된 생명선은 오직 한가닥. 배를 뚫어 위로 연결된 튜브였습니다.

아버님께선 그때부터 그 튜브 한 가닥에 의지해서 그분만의 독상을 받으셨던 겁니다. 병이 드셔서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신 아버님만의 독상 옆에는 여전히 어머님께서 계셨습니다.


어머니께선 인내와 사랑의 母性으로 아버님의 음식 수발을 드셨습니다. 당신이 좋아하시던 배추쌈이며 된장찌개며, 고기 등등을 입으로 못 드시고 어머니께서 으깨고 삶고 끓이고 거르고 해서 만드신 그 유동식을 가느다란 튜브를 통해서 드셨습니다. 배가 아프고 음식물이 입으로 올라오고 괴롭다고 고통스러워하시면서도 아버님께선 그렇게 돌아가시던 그날까지 그 생명선을 통해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독상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6남매가 모두 공부를 마치고 시집 장가가서 손자 손녀 낳아 잘 사는 것을 보시곤 이제 하실 일이 없으셨다고 생각되셨는지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제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아들이 왔습니다.' 하고 손을 잡고 인사를 드리자 아버님은 숨을 거두시면서 닫고 계시던 눈을 힘껏 뜨고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먹는 것’은 곧 ‘사는 것’입니다.


아버님의 생명줄을 어머니께선 사랑의 독상처럼 잡고 의사가 3개월밖에 못 사시겠다고 한 아버님의 목숨을 20년을 살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받는 것’입니다.

 

 

그해 한가위 대보름날, 말씀을 못하시던 아버님께서 휠체어에 앉아 휘영청 둥근달을 바라보시며 필담판 위에 제게 쓰셨던 그 한 구절이 떠올라 달을 바라보면 더더욱 가슴이 아파옵니다.

 

"달이 참 밝다."

 

그렇게 달걀 노른자위처럼 둥근 보름달에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둥근 밀떡 성체 안에서 만나듯, 아버님을 체험합니다.

 

가득 채워졌다가 또 이지러지곤 하는 달로부터 삶의 이치를, 그리고 자연의 이치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부디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연결되어 함께 나누고 있는 행복한 순간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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