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듣고만 있어? 니 얘기 좀 해봐"
친구 4명과 함께하는 자리, 한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어온 질문.
"내 얘기? 난 할 말 없는데, 너는 요즘 공부하는 거 어때? 이번엔 합격할 것 같아?" 되묻는걸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고 편했다. 가끔은 맨날 듣기만 하고 자기 얘기는 안 한다며 툴툴대는 친구도 있었던 반면 나를 찾아와 비밀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듣고만 있는 것이 나의 못난 모습을 들키는 것 같지 않아 편하고 좋았었다. 특히나 비밀 이야기 같은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들어줄 때면 친구들이 고맙다는 표현을 했었다. 나는 그저 듣기만 했고 "그래. 그랬구나. 맞아. 진짜?" 이런 식의 반응만 해줬을 뿐인데도 말이다. 나중에 그것이 공감이었고 경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젠가부터 공감과 경청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 바쁜 세상이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이야기해야 먹힌다고 해야 할까? 어떨 때는 말없이 가만히 있는 사람을 되려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만히 있는다고 진짜 가만히 있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본인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보다, 공감해주며 경청해주는 사람이 되라며 책에서든 어디에서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공감하고 경청해주다 보면 그 사람에게 감정 이입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그 사람보다 더 기뻐하며 좋아할 때도 있다. 그러나 어느 때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 너무나 큰 슬픔이 닥쳐왔거나 속상할 땐 어떤 이야기를 해도 힘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희귀병 진단을 받고 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전했다. 대부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잘될 거야! 힘내!" 이런 식의 말들이다. 위로해주는 건 고맙지만 한편으론 '니들이 멀 안다고 걱정하지 말래? 내가 어떻게 될지 알고?' 이런 삐딱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형식적인 위로라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면 상대방도 그 입장이 돼보지 않아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정확히 몰랐던 거다. 힘들고 속상해하니깐 위로는 해주고 싶고, 용기도 주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럴 땐 그냥 공감해주고 들어만 주는 건 어떨까? 꼭 위로를 하기 위해 무언가를 이야기해줘야 할까? 내가 삐딱한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오히려 독이 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지인들이 하나같이 "힘내, 걱정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는데, 유일하게 어떤 친구가 상대방이 아프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해줬다는 거다. 위로의 말들이 아닌 그냥 일상적인 대화들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제일 생각나고 고맙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상대방이 힘든 상황이나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으면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할 것 같고 힘내라고 용기 있는 말을 해줘야 할 것만 같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이런 말들보다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대해주는 것이 진짜 위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무조건 위로의 말을 해주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속상한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그냥 있는 그대로 공감만 해줘도, 들어만 줘도 그 사람 마음은 훨씬 가벼워진다. 무언가 억지로 해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나 역시도 아프다고 같이 눈물 흘리고 '어떡하니 어떡하니' 하는 사람보다 그냥 내 일상에 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공유하는 사람이 더 고맙고 기억에 남는다.
"너 힘드니깐 맛있는 거 먹으면 힘날 거야. 머 먹고 싶은 거 없어? 맛있는 음식 먹고 힘내!" 이렇게 말하는 사람보다 "야! 같이 밥 먹자. 내가 이거 먹고 싶은데 너랑 같이 먹고 싶어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사람이 나한테는 더 고맙게 다가왔었다.
위로라고 해주는 말들이 어쩌면 그 사람을 더 힘들게 하거나 반감만 사는 일들은 아닐까 생각해보자. 꼭 위로나 '힘내'라는 말을 해줘야 상대방이 기분이 풀리거나 힘듬을 극복하는 건 아닐 거다. 결국엔 스스로 이겨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일상을 편히 살아가게 지켜봐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