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쓰다 2 - 「레옹」,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건
Is life always this hard?
Or is it just when you're kid?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에만 그런가요?
Always like this.
언제나 힘들지.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에는 레옹과 마틸다가 한 쌍씩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뉴욕 같았다. 세상은 뉴욕처럼 외롭고 불안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홀로 남겨진 것처럼 두려웠다. 마틸다는 레옹의 뒷모습을 보며 어른이 되어도 삶은 언제나 힘들 것이라고 믿었다.
이젠 마틸다조차 힘든 눈물을 흘리는 시대에서 우리 모두는 고달파야 한다. 가슴팍에 권총 한 자루와 방아쇠를 당길 손가락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총을 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던 레옹이 죽으면 우리는 마틸다처럼 떠나야 할 것이다. 한 손엔 화분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죽은 인형을 안고서 담배 연기 같은 뉴욕 하늘 너머로 붉고 쓸쓸하게, 하지만 후련하게 죽음처럼 사라져야 할 것이다.
뉴욕도 섬이기에 우리는 바다 건너 저쪽으로 간다. 바다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물은 짭짤하겠지. 그러나 울고 나면 언제나 정돈되는 것들이 있듯 모든 것은 흘러가리라고 믿는다.
영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영원한 엔딩 크레딧 뒤에 마틸다는 어디쯤의 울음 같은 하늘을 울고 있을까.
You love your plant, don't you?
화분을 무척 사랑하는군요.
He's my best friend.
Always happy, no questions.
And it's like me, you see, no roots.
가장 친한 친구야.
항상 행복해하고, 질문도 하지 않지.
마치 나처럼 뿌리도 없어.
If you really love it,
you should plant in the middle of park
so it can have roots.
And then you should me water
if you want me to girl.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해요.
그리고 내가 자라길 원한다면,
나에게야말로 물을 줘야죠.
관계를 맺는다는 건 '길들이는 것'과 같다. 레옹과 화분과 마틸다는 서로를 길들이며 유의미한 관계를 맺는다. 그들의 관계는 상대방을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아름다운 길들임이었다.
레옹은 화분에게 물을 주었고 화분과 레옹은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뉴욕의 그늘진 아파트먼트에서 레옹은 검은 알의 안경을 쓰는 삶을 택했지만 화분만은 따스한 햇볕을 쬘 수 있게 했다.
이어 레옹은 마틸다에게도 물을 주었고 마틸다와 레옹은 서로를 길들인다. 그렇게 마틸다는 레옹에게 연필로 세상을 쓰는(write) 법을 가르쳐 주었고 레옹은 마틸다에게 총으로 세상을 지우는(erase) 법을 가르쳐 주었다.
레옹에게는 사람의 심장보다 마틸다의 머리 향기가 나는 한 그릇 화분이 더 소중했고, 마틸다에게는 가짜 가족보다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단련시켜 준 레옹이 더 소중했다. 그들이 서로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틸다는 자신이 길들이지도 않은 화분을 목숨 끝까지 지켜냈다. 화분이 자신이 길들인 사람을 길들이게 한 또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별들이 있어도 그중에 나의 별 하나가 있기에 별들은 아름답고, 수많은 장미가 있어도 그중에 나의 장미 하나가 나의 별에서 숨 쉬고 있기에 우리는 장미가 보이지 않아도 별무리가 빛나는 밤하늘을 보며 행복해할 수 있다. 뿌리내리지 않았던, 레옹 같은 나의 화분 하나 장미 하나. 지금쯤 그 화분 한 그릇 장미 한 송이는 어느 행성에서 피어나고 있을까. 마틸다 같은 꼬마 아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나의 행성에 화분을 심고 뿌리를 내리고 동그란 눈물로 물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
정말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데 눈물은 흘려도 눈에 보이지 않고, 오늘 밤엔 레옹도 화분도 별의 뒷면에 숨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슬프도록 아름답고 소중한 밤은 그렇게 잔잔하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