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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y 14. 2021

나의 과거까지 사랑할 자유

영화를 쓰다 7 - 「마빈의 방」, 진정한 자유를 향한 청춘의 드라이브

 

끝없이 달려가는 우리에게 종점은 없어
아직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나아가야만 해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지나간 날은 너무나 힘들었지
 
이제는 다시 돌아가자 말을 해도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난 와버렸지
 
  - 브로콜리너마저, 「청춘열차」
 

  

 자동차와 해변, 그리고 하늘. 필름을 투과하는 모든 소품들은 「마빈의 방」의 모티프를 만들어낸 사랑스러운 장면들이다. 자유를 찾아 방황하는 청춘의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행크'는 꿈같은 소품들과 장면들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무언가에 억눌려 삐딱하게 반항하는 마스크로 스크린에 투영된다. 그의 모습은 마치 사랑이 부족해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던, 방황을 통해 자유를 찾으러 날아가버린 나의 청년 시절과도 닮아 있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자유를 찾아 방황하는 청춘의 페르소나다.

 

 탈출과 일탈과 탈선은 더 삐딱하게 벗어나려는 청춘의 몸부림이다. 영화에 투영된 그러한 디카프리오적 방황은 결국 '자유로의 갈망'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우리는 디카프리오 같은 청춘이 되어 낡은 포드 자동차를 타고 하얀 밤 붉은 새벽, 플로리다의 자유로를 달린다. 자유로, 자유로, 자유로. 우리 국토에도 있는 '자유로'라는 도로명이 '자유를 향해 간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명칭을 지칭하는 대상 또한 '도로'이기에, '~을 향해 간다'라는 의미가 자유를 갈망하는 청춘에게는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자동차인지 비행기인지 알 수 없는 창문 밖으로 손을 뻗는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그 창문 너머엔 바람 같은 하늘이 펼쳐지는 거니까, 둘 중 어디에 타고 있든 자유로운 바람을 느낄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 떠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우리는 다른 곳에 있는 상상을 하며,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상상을 하며 젊은 날의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청량한 새벽인지 막 동트는 해 질 녘인지 알 수 없는 하늘 아래에서, 우리의 청년 시절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엔딩 크레딧 같은 자유를 찾으러,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과 걱정을 받고 싶어서 공허하지만 상쾌한 드라이브를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항로처럼 끝없이 뻗은 신대륙의 하이웨이를 달리다 보면, 우리의 젊음은  「이터널 선샤인」을 닮은 아무도 없는 새벽 같은 창창한 하늘 속으로 이륙할 것이다. 청춘은 그렇게 닿을 수 없는 바다 건너 저쪽으로 영영 자유롭게 날아가고, 아무도 우리의 과거를 모를 테지.

 

청춘은 닿을 수 없는 바다 건너 저쪽으로 영영 자유롭게 날아간다.

 

 아무도 우리의 과거를 모르게 만드는 것, 나조차도 나의 과거를 모르게 만드는 것, 청춘에게는 바로 그것이 '자유'일 것이다. 여기서 '나조차도 나의 과거를 모르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완벽히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젊음이 나아가야 할 자유의 방향은 '과거를 모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모르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그 아픔을 정면으로 드러내어 꺼내야 한다. 총상을 치료할 때에도, 암을 고칠 때에도 반드시 살을 도려내고 탄환이나 암세포 조직을 드러내어 꺼낸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행크'는 과거의 상처를 정면으로 드러내는 것을 끔찍하게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과거의 어린 나'에게 손을 내밀어 그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상처와 직면할 때, 그는 오히려 마음속 아픔에 담담해지며 젊은 날의 상처를 깨끗하게 치유할 수 있었다. 과거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되어 내적 트라우마와 상처를 치유할 때 우리의 청춘은 비로소 '완전한 자유의 장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청춘은 그렇게 닿을 수 없는 바다 건너 저쪽으로 영영 자유롭게 날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멀어져서 보이지 않는 청춘을 바라보며, 이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우리의 젊은 날을 바라보며, 그 동일한 '자유'를 느낄 것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본다. 별이 낮에 보이지 않아도 하늘 위에 떠 있듯이, 어디에선가 반짝이고 있는 어린 왕자의 보이지 않는 별 하나, 거기에 심긴 장미 한 송이가 눈을 감은 우리의 시야에 담기듯이 우리의 청춘도 삼차원 하늘의 어느 좌표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마빈의 방」이 되어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겠지. 청춘은 그렇게 자유를 찾아서, 지금 어디쯤의 하늘을 날아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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