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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Aug 15. 2021

영화는 클래식처럼, 소설은 소나기처럼

영화가 문학을 만났을 때 1 - 영화 「클래식」과 소설 「소나기」

 

들어가며 : 문학과 영화의 본질, '페르소나'

 

 '페르소나(Persona)'는 소설이나 시의 일인칭 서술자, 혹은 영화에서 감독에 의해 창조된 등장인물의 심리적 이미지를 의미한다. 전자는 문학 용어이고 후자는 영화 용어이다.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경험이다. 말과 글로, 그리고 몸짓으로, 우리는 다양한 언어와 매체를 이용하여 '나'를 드러낸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가면을 쓴다. 자기를 더 아름답고 개성 있게 뽐내기도 하고, 본래와는 다른 사람으로 분장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에둘러 표현할 때도 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페르소나'를 쓴다.

 

 '문학'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소설가와 시인들은 글로 페르소나를 창조해낸다. 작품 속 서술자(화자)와 실제 작가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작가는 서술자(화자)라는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는 인물과 화자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멋진 운율을 전한다.

 '영화' 또한 그렇다. 감독은 배우라는 페르소나를 빌려 자신이 꿈꾸던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도 각각 자기만의 개성 있는 페르소나로 이야기에 참여한다. 감독과 배우는 마치 시를 쓰듯 봄꽃 같은 사랑이야기를 노래하고, 소설을 쓰듯 겨울비 같이 쓸쓸하고 슬픈 이야기를 풀어내며 관객의 마음속에 의미 있는 페르소나를 선사한다.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페르소나'를 쓴다.

 

1. 영화가 문학을 만났을 때 : '클래식'한 '소나기'의 어울림의 미학

 

영화 「클래식」은 소설 「소나기」의 결말을 바꾸어 그 뒷이야기를 영화로 새롭게 재창작한 작품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곽재용 감독은 소설 「소나기」를 감상하다가 소설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며 영화 창작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소녀가 죽지 않았더라면,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졌을까?' 하는 작은 물음으로부터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문학이 영화로 자주 재창작되는 이유는 두 분야 모두 '이야기하기'라는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문학(특히 소설)과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낸다'라는 서사적 측면에서 서로 닮아 있다. 인물과 플롯이 있고, 줄거리와 갈등이 있다. 예술 작품 간의 창조적 재창작이 가능한 분야 중, 영화와 문학은 '이야기하기'로서 서로 가장 맞닿아 있다. 그래서 영화는 '문학'을 만났을 때에 가장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와 문학이 만났을 때 독자와 관객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효용을 얻을 수 있을까? 문학 작품을 재창작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문학과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넓혀준다. 기존의 문학을 내면화하고, 문학 작품을 재창작한 영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감상하고 비평함으로써 문학과 영화를 보는 안목이 성장하는 것이다.

 

 영화와 만난 문학 작품의 사례로 소설 「소나기」를 꼽은 것은 이 작품이 어떤 소설보다도 '쉽고, 공감 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먼저 소설 「소나기」는 쉬운 작품이다. 줄거리는 간단하고, 문장들은 짧고 간결하다. 갈등 구조 또한 복잡하지 않다. 그만큼 쉽다.

 또 소설 「소나기」는 공감 가는 작품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이름은 고유명사로 특정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소녀'와 '소년'인 덕분에, 우리는 소설을 감상하며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소설 속에 대입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이러한 불특정성과 더불어, 소설은 우리가 어릴 적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모두에게 공감이 갈 만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어 소설 「소나기」와 함께 다루어 볼 수 있는 재창작 영화로 「클래식」을 꼽은 것은 이 영화가 단순히 원작을 리메이크한 것이 아니라, 원작을 '모티프'로 하여 완전히 새롭게 재창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소나기'라는 날씨 소재를 모티프로 하여, 원작의 '이루어지지 못한 어린 시절의 사랑이야기'의 구조를 오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는 원작과는 다르게 새로이 재창작된다.

 지금부터는 영화 「클래식」과 소설 「소나기」를 소재와 결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비교하고, 소설의 뒷이야기를 바꾸어 영화로 재창작한 방법과 내용이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비평해보기로 한다.

 

영화 「클래식」은 소설 「소나기」의 결말을 바꾸어 그 뒷이야기를 영화로 새롭게 재창작한 작품이다.

 

2. 소재 비평하기 : 한 방울 한 방울씩 소나기를 헤아리듯

 

1) 소나기

 날씨 소재인 '소나기'는 소설과 영화 모두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이다. 두 작품의 남녀 주인공의 관계는 소나기를 통해 더욱 각별해지고, '소나기 사건'을 계기로 그들 사이의 사랑하는 마음도 더 애틋해지고 깊어진다.

 소설 「소나기」에서는 '저 산 너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던 '소녀'와 '소년'에게 소나기가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둘은 수수밭의 수숫단 속에서 함께 소나기를 그으면서 서로에 대해 점차 마음 문을 열게 된다. 소설 속의 이러한 소나기 모티프는 영화 「클래식」에서 아름답게 오마주된다. 액자 속 과거 시점의 주인공 '주희'와 '준하'는 원두막에서, 액자 밖 현재 시점의 주인공 '지혜'와 '상민'은 대학 교정에서 함께 소나기를 맞는다. 소나기를 통해 그들은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설레듯 가까워진다.

 영화의 이 사랑스러운 장면 속에 소나기는 꼭 필요한 단비 같은 존재이다. 배우들의 풋풋한 연기와 클래식한 영상미, 그리고 감성적인 음악들로 가득 채워지는 스크린 속에서 남녀 주인공의 마음은 소나기에 촉촉이 젖어든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우리의 마음 또한 소나기 덕분에 덩달아 청량하고 풋풋하게 들뜬다. 만약 이 장면에 '소나기'가 없었다면, 배우의 연기의 페르소나가 아무리 훌륭했더라도 관객의 감상의 페르소나는 다채로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2) 조약돌

 소설 「소나기」에서 자연물 소재로 나오는 '조약돌'은 '소년'으로 하여금 '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소녀' 그 자체와 동일시되어 '소녀'를 표상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소녀'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소년'에게 "이 바보."라고 말하며 무심코 조약돌을 던진다. '소년'은 그녀와 헤어지며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는 행위를 통해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이후 '소년'은 '주머니 속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긴다. 그의 곁에 '소녀'가 부재한 상황에서 '소년'이 계속 조약돌을 주무르는 이 애타는 장면은 이유 없는 긴장감을 자아내며, 곧 두 인물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3) 분홍 스웨터

 의상 소재인 '분홍 스웨터'는 소설 「소나기」에서  '소녀'가 '소년'과 처음 만난 날부터 죽는 날까지 입고 있었던 옷으로서, '소녀' 그 자체를 상징하는 소재이다. '소년'과 함께 소나기를 맞은 그날, '소녀'의 분홍 스웨터에는 소나기와 꽃물과 '소년'의 땀이 한데 얼룩져 영영 지워지지 않는데, 이는 '소녀'의 마음속에 '소년'의 흔적과 그와 함께한 추억이 깊이 새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녀'는 자신이 죽어서 묻힐 때에도 분홍 스웨터를 입혀서 묻혀달라는 유언을 남기는데, 이는 죽은 이후에도 그녀가 '소년'과의 사랑을 간직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그녀의 이 한마디는 소설의 결말부를 더 아련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등장한 분홍 스웨터는 영화 「클래식」에서 의상 소품으로 묘하게 오마주된다. '주희'가 '준하'와 강가에서 처음 만날 때, '지혜'가 '상민'과 소나기를 맞을 때 입고 있는 옷이 바로 분홍 스웨터이다. 이렇듯 여성 주인공이 입은 분홍 스웨터는 소설 「소나기」의 결말을 떠올리게 하여, 영화 속 남녀 간의 사랑이 마치 소설 속 '소년'과 '소녀'의 사랑처럼 쉽지만은 않은 애타는 사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4) 목걸이

 영화 「클래식」에서 액세서리 소재로 나오는 '목걸이'는 '주희'가 '준하'에게, '상민'이 '지혜'에게 건네는 사랑의 정표이다. '주희'에게서 '준하'에게로, 그리고 '준하'의 아들 '상민'에게서 '주희'의 딸 '지혜'에게로 사랑을 싣고 돌고 도는 목걸이는, '부모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자녀 세대에서 이룬다는' 주제 의식을 논리적인 개연성으로 형상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주희’는 약혼남의 아버지에게 약혼 증표로 받은 목걸이를 '준하'에게 걸어주며 사랑을 전한다. 그는 목걸이를 받고 그녀와 사랑을 이어나가지만,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닫고 목걸이를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며 마음을 정리한다. 이후 '주희'는 베트남전 파병을 앞둔 '준하'를 극적으로 만나, 그를 기다리겠다는 애틋한 마음과 함께 그에게 다시 목걸이를 건넨다. '준하'는 전쟁 중에 목걸이를 잃어버리지만, 그녀와의 사랑을 떠올리며 목숨을 걸고 목걸이를 찾아 사수한다. 목걸이를 지키려다 시력을 잃은 그는 몇 년 후 '주희'와 만나 목걸이를 그녀에게 되돌려주려 하지만, '주희'는 둘의 사랑을 간직하라며 목걸이를 받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주희'의 딸 '지혜'는 자신의 남자 친구 '상민'에게 어머니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오열하면서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담담하게 걸어준다. 그랬다. '상민'의 아버지는 '주희'의 첫사랑 '준하'였던 것이다. 목걸이는 '주희'에게서 '준하'로, 그리고 '준하'의 아들 '상민'에게서 결국 '주희'의 딸 '지혜'에게로 사랑을 싣고 돌도 돌아 원래 주인에게로 전해진다. 이렇듯 '목걸이'는 부모 세대인 '주희'와 '준하'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각각 그들의 자녀인 '지혜'와 '상민'이 이룬다는 결말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5) 우산

 소품 소재인 '우산'은 영화 「클래식」에서 자녀 세대인 '지혜'와 '상민'의 사랑을 로맨틱하게 이어주는 복선적 장치이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대학 교정, '지혜'는 우산이 없어 비를 흠뻑 맞고 학교 나무 아래에서 간신히 비를 피한다. 그때 우산이 없던 '상민'도 우연히 그 나무 아래로 비를 피하러 들어온다. 서로 우산이 없었지만, '상민'은 '지혜'와 함께 비를 맞으며 도서관까지 그녀를 데려다 주기로 한다. '상민'의 몸과 외투는 '지혜'의 우산이 되어주고, 그렇게 영화 속 비 내리는 시퀀스는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의 멜로디와 함께 슬로모션으로 아름답게 적셔진다.

 사실 이 장면의 진실은 영화의 말미에 '우산'이라는 작은 퍼즐 조각을 통해 함께 아름답게 밝혀진다. 그날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 그날과 달리 우산을 가지고 있는 '지혜'는 학교 매점에 들른다. 그때 매점 주인 언니가 그녀에게 검정 우산을 쥐어주더니, 그 우산이 '상민'이 매점에 놓고 간 것이라며 그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그랬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던 그날, 우산을 가지고 있던 '상민'은 비를 맞고 있는 '지혜'를 매점 창문 너머로 우연히 보게 되었고, 우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함께 비를 맞기 위해 일부러 우산을 매점에 두고 빗속으로, '지혜'에게로 뛰어 들어갔던 것이다.

 '상민'의 진심을 알게 된 '지혜'는 그날의 그가 했던 것과 동일하게, 자신의 우산을 일부러 매점에 두고, '상민'의 검정 우산을 손에 쥐고, 우산을 쓰지 않은 채 '상민'에게로, 빗속을 뚫고 달린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있는데도 우산을 쓰지 않고 달리는 '지혜'의 모습이 관객에게는 전혀 이상하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순간 빗속에서 '지혜'는 우산이 있었음에도 일부러 비를 맞았던 '상민'의 마음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어 '지혜'는 비에 흠뻑 젖은 채 '상민'의 우산을 들고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우산이 있는데, 왜 그렇게 비를 흠뻑 맞아?"라고 물어보는 그에게 그녀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함박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이건 제 우산이 아니니까요. 돌려드리려고 왔어요. 매점에 두고 가셨잖아요. 우산이 있는데 비를 맞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에요?"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가진 사랑의 진심을 확인하고, 둘의 인연은 '우산'과 함께 빗속에서 아름답게 적셔진다. '우산'은 두 사람의 사랑을 그토록 로맨틱하게 이어주는 복선이었던 것이다.

 

영화 속 비 내리는 시퀀스는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의 멜로디와 함께 슬로모션으로 아름답게 적셔진다. [어진 그림]

 

3. 결말 비평하기 : 클래식 음악의 마지막 악장을 감상하듯

 

Q1. 두 작품은 끝부분의 줄거리에서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나요?

 

 영화 「클래식」은 부모 세대인 '주희'와 '준하'의 결말에 있어서는 '사별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한 가슴 아픈 사랑'이라는 점에서 소설 「소나기」와 공통점을 지니며, 자녀 세대인 '지혜'와 '상민'의 결말에 있어서는 '돌고 돌아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소설 「소나기」와 차이점을 지닌다.

 소설 「소나기」에서는 '소녀'와 '소년'이 소나기 속에서 애틋한 추억을 만들며 사랑을 싹 틔우지만, 결국 '소녀'의 죽음으로 둘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화 「클래식」에서도 소나기를 매개로 '주희'와 '준하'가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나가지만, 결국 '준하'의 죽음으로 이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사별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한 가슴 아픈 사랑'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의 결말은 공통점을 지닌다.

 한편, 각각 '주희'와 '준하'의 자녀인 '지혜'와 '상민'은 소나기를 통해 서로의 사랑의 진심을 확인하고 서로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나간다. 마지막에 '상민'은 자신의 아버지 '준하'의 목걸이를 '지혜'에게 걸어주고, 아버지 '준하'가 '주희'에게 그랬던 것처럼, 고향 강가에서 반딧불이를 잡아 '지혜'의 두 손에 꼭 쥐어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답게 페이드아웃되고, 둘이 함께 입을 맞추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처럼 '돌고 돌아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의 결말은 차이점을 지닌다.

 

'지혜'와 '상민'은 소나기를 통해 서로의 사랑의 진심을 확인하고 서로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나간다.


Q2. 두 작품은 결말에 있어 어떠한 여운을 남기나요?

 

 영화 「클래식」과 소설 「소나기」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과 '새로운 세계를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라는 구성에 있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두 작품 모두에서, 두 주인공은 서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에 호기심을 갖는다. 그 세계는 영화에서는 '강 건너 귀신의 집'으로, 소설에서는 '저 산 너머'로 구체화되어 등장하는데, 두 주인공은 미지의 세계를 함께 갈망하며 탐험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육체적ㆍ심리적으로 더 가까워진다. 특히 미지의 세계에서 위기처럼 만난 '소나기'는 오히려 두 사람의 사랑의 마음을 더욱 애틋하게 연합시키며 사랑의 도화선처럼 그들과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소설과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우리 마음이 소나기의 여운으로 촉촉이 젖어있는 까닭이다.

 한편 소설 「소나기」에서는 '소년'이 '소녀'에게 꽃을 꺾어주면서, 영화에서는 '준하'가 '주희'에게 반딧불이를 잡아주면서 그들은 점점 자기들만의 사랑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러한 장면에서는 고려가요 「헌화가」의 모티프를 찾아볼 수 있는데, 한국문학의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계승하는 데에서 오는 신선한 여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한 절벽, 그 위에 핀 꽃 한 송이를 공주를 위해 따다 주고 싶은 「헌화가」의 화자의 목소리가 소설과 영화 속 남성 주인공의 눈빛과 겹치며 우리의 마음속에 입체적이고 아련하게 남게 되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에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게 되는 경위는 남녀 주인공 모두의 갈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성 주인공이 먼저 호기심을 가지고 남성 주인공에게 체험을 제안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마치 성경의 창세기 속 선악과 모티프를 떠올리게 한다. 첫 사람 '아담'의 아내인 '이브'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먼저 맛본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남편 '아담'과 죄의 달콤한 맛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을 품고 그에게 선악과를 권유하며 죄의 경험을 공유한다.

 두 작품의 여성 주인공 또한 첫 여성 '이브'의 모습을 모방하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동행자를 구하려고 남성 주인공에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이상향의 세계, 혹은 지금까지 한 번도 뛰어 들어가 보지 못했던, '우산 없이 맨몸으로 맞는 소나기'라는 미지의 세계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심정을 바탕으로 사랑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이렇듯 두 작품은 남녀 주인공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과 '새로운 세계를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이야기를 꾸려나가기 때문에 결말에 있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

 

Q3. 두 작품 속에 등장하는 '미지의 세계'는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나요?

 

 '미지의 세계'는 영화 「클래식」에서는 '강 건너 귀신의 집'으로, 소설 「소나기」에서는 '저 산 너머'로 구체화되어 등장한다. 그런데 소설과 달리 영화 속에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바뀌는 계기가 등장한다. 바로 자녀 세대인 '지혜'와 '상민'의 소나기 신(scene)이다. 이전까지 '저 산 너머' 등의 특정한 '장소(Place)'로만 인식되었던 미지의 세계는, 이 장면을 계기로 '소나기가 내리는 대기ㆍ분위기(Atmosphere)' 그 자체로 확장된다.

 '지혜'와 '상민'은 몸을 적시지 않고도 둘이서 우산을 같이 쓰고 충분히 소나기 속을 거닐면서 추억을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가 피하고 싶은 위기이자 장애물인 '소나기'를 일부러 함께 맞아보는 새로운 모험을 공동으로 감행한다. 발상을 뒤집는 이 신선한 행위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맨몸으로 소나기에 적셔지기]라는 새로운 경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 이러한 의도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지혜'와 '상민'의 그 청량한 경험을 통해, 관객은 남녀 주인공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영화가 끝난 뒤에도 촉촉한 여운을 느낄 수 있다.

 

 '미지의 세계'가 우리에게 강한 여운을 남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세계에 영원히 머무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두 작품에서 남녀 주인공은 장대 같이 쏟아지는 소나기로 인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던 '강 건너 귀신의 집'과 '저 산 너머'에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마을로 내려와야 했다.

 '소나기'라는 미지의 세계 속에서 특별한 경험을 함께 공유했던 '지혜'와 '상민'도 마찬가지였다. 소나기의 특성상, 계속 소나기를 맨몸으로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소나기를 피해야 하고, 어쩌면 그날 이후로 인생에서 소나기를 맨몸으로 맞아보는 경험은 다시는 해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행복했던 세계에서의 순간이 영원하지 않고 오히려 유한하기에, 그 희귀성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 세계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느끼며 아름다운 여운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것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정지용 시인이 그의 시 「향수」에서 노래하듯, 우리가 '파아란 하늘' 같은 어린 시절 너머로 '함부로 쏜 화살' 같은 추억은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며 찾아도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경험했던 많은 추억들은 어쩌면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에 영영 두고 떠나 온 장미꽃 한 송이처럼 다시는 경험해볼 수 없는 한 조각 꿈같은 순간들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과거의 특별한 추억 속에 존재하는 우리 자신을 그 시간 속에 영영 두고 온 '추억 상실자'와도 같다. 그날 그 순간에, 과거의 시간 속에서 함께 한바탕 웃고 간지러워하던 과거의 우리는, 지금쯤 머릿속 어디쯤의 추억의 회로에 갇혀 있을까? 그 시간 속에 아직도 있을까? 거기서 무얼 하고 있을까? 하는 슬프고 아련한 궁금증이 우리의 마음을 촉촉이 적신다. 이렇듯 사랑하는 사람과 미지의 세계에서 함께 한 그 순간 속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미지의 세계를 추억하며 한없는 여운 속에 잠기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가 우리에게 강한 여운을 남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세계에 영원히 머무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Q4. 소설의 뒷이야기를 바꾸어 영화로 재창작한 방법과 내용은 타당한가요?

 

 영화 「클래식」의 곽재용 감독은 소설 「소나기」를 감상하다가 소설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며 영화 창작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소녀가 죽지 않았더라면,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졌을까?' 하는 작은 물음으로부터 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즉, 영화 「클래식」은 소설 「소나기」의 결말을 바꾸어 그 뒷이야기를 영화로 새롭게 재창작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소설 「소나기」의 플롯과 설정을 그대로 이어간다. 남성 주인공이 산골 출신 소년이고 여성 주인공이 부잣집 외동딸이라는 점,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가 시골 강가라는 점, 미지의 세계를 향해 탐험하는 두 사람에게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린다는 점, 그들이 원두막에서 함께 비를 피하며 추억을 쌓는다는 점, 여성 주인공이 다치고 남성 주인공이 그녀를 업고 마을까지 데려다준다는 점 등의 영화적 전개를 통해서 영화 전반부의 줄거리와 소재, 그리고 설정의 모든 요소들이 소설 「소나기」를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성 주인공인 '주희'가 소나기를 맞아 병이 들어 고향을 떠나는 순간부터 영화는 소설과는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소설에서는 '소녀'가 병이 들어 죽게 되어 두 사람의 사랑이 이어지지 못하지만, 감독은 소설의 결말을 '소녀'가 죽지 않은 것으로 바꾸어 뒷이야기를 새롭게 이어나가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부모 세대인 '주희'와 '준하'의 과거 이야기와, 자녀 세대인 '지혜'와 '상민'의 현재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으로 나란히 진행된다.

 감독은 액자 안과 밖의 두 이야기 모두에서 소설 「소나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구사한다. 하지만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인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려 연출하며, 소설의 중요한 복선이 되는 소재인 '조약돌'을 영화 속에서 '목걸이'라는 소품으로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재창작한다.

 

 큰 뼈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작은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곽재용 감독은 소설 「소나기」의 여러 요소들을 영화 속에 독특한 모습으로 녹여낸다. 먼저 부모 세대인 '주희'와 '준하'의 순수한 사랑이 자녀 세대인 '지혜'와 '상민'에게도 그대로 순수하고 애틋하게 이어진다는 줄거리를 바탕으로, 감독은 소설 서사의 큰 흐름을 영화에도 그대로 끌어들여 효과적으로 재현해낸다. 또한 '소녀'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 속 소재인 '조약돌'을 영화에서 '목걸이'로 변용시켜 상대를 향한 사랑을 마치 소설 작가처럼 설득력 있게 표상한다.

 감독은 소설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화 속 목걸이의 소유주가 계속 바뀌고 분실 위기에 처한다는 내용 전개를 통해 감독은 소설과는 차별화된 흥미진진한 긴장의 서사를 창조한다. 더 나아가 그 목걸이가 남녀 주인공의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을 아름답게 이어준다는 결말을 통해 소설과는 또 다른 묘미의 마무리를 선보인다.

 곽재용 감독의 이러한 창작의 노력을 바탕으로 관객은 영화를 감상하며 '주희'와 '준하', '지혜'와 '상민' 두 남녀 주인공의 모습에서 소설 「소나기」의 '소녀'와 '소년'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오래전 한번쯤은 '소녀'와 '소년' 그 자체였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순수한 옛사랑을 그리는 데까지 이를 수 있게 될 것이다.

 

 곽재용 감독은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소설 「소나기」의 줄거리를 모방하고 재현하였으며, 중반부부터는 소설의 여러 소재를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소설의 뒷이야기를 아름답게 이어나간다. 결국 소설 「소나기」에서 '소녀'와 '소년'이 이루지 못했던 사랑은 영화 「클래식」에서 '주희'와 '준하'에게로 아름답게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그들의 자녀인 '지혜'와 '상민'에게까지 성공적으로 계승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소설 「소나기」의 뒷이야기가 영화 「클래식」으로 재창작된 방법과 내용은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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