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sinki, Finland
헬싱키에 오면 꼭 가야 하는 곳
어딜 가면 꼭 가야 하는 곳들이 있다. 유적지일 수도 있고, 그 시기에 가장 핫한 맛집일 수도 있고, 그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 매장일 수도 있고. 헬싱키를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것들은 무엇일까. 무민(Moomin), 이딸라(Iittala), 알바 알토(Alvar Aalto), 아르텍(Artek) 등 이것저것 떠올리다 보니 디자인 관련된 것들이 확실히 많은 것 같다.
헬싱키는 정말 작아서 웬만한 곳은 다 걸어서 갈 수가 있다. 이리저리 걷다 보니 중앙역과 스토크만 백화점 앞을 여러 번 지나다녔는데 버스를 타고 지나치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버스를 탄 이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이딸라에 가기 위해서. 예전엔 이딸라 아웃렛이었다는데 현재는 아웃렛이 사라지고 디자인 쇼룸에 가까운 모습으로 채워졌다. 이름하야 Iittala & Arabia Design Centre는 중앙역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인 이 곳은 아라비아(Arabia) 지역에 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굴뚝이 보인다. 공장 느낌이 팍팍 나는 외관과 맑은 하늘과 차가운 공기가 너무 완벽해서 거짓말 같았다. 함께 간 K와 많이 사지 말자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많이 사고 싶어서 많이 사게 될 것 같아서 그런 말을 서로 했던 듯. 다행히 서로 워-워-를 해줘서 딱 필요한 만큼만 구입했다.
Iittala & Arabia Design Centre
Iittala & Arabia Design Centre
Hämeentie 135, 00560 Helsinki
http://www.designcentrehelsinki.com/
1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위치한 이딸라 매장은 조명이 따로 필요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 채광이 좋았다. 예전 아웃렛이었을 때는 어떤 분위기였을지 안 봐서 모르겠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더 보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아웃렛은 가격이 착한 것은 많지만 막상 사고 싶은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웃렛은 더 이상 없다는 소식이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나중에 찾아본 것인데 아라비아(Arabia) 지역에서 시작한 도자기 회사 아라비아(Arabia)의 첫 공장 굴뚝이 버스에 내렸을 때 본 것이고, 이 공장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동하고 있었다는 것. 아쉽게도 그 시기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새로 오픈한 지 반년도 안된 때에 이 곳에 방문했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우선 한 바퀴 휘휘 둘러보고 다시 입구 쪽으로 가서 꼼꼼히 봤다. 아침 시간이라 손님도 많지 않고, 점원이 도와주겠다며 부담 스러 다가오지도 않아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 점원이 먼저 말을 건 것은 세일 상품 근처에 서성일 때 이쪽이 세일 상품이라며 알려준 것이 전부.
판매하는 그릇들 뿐만 아니라 유리 공예 과정을 7단계로 보여주는 것이 있었는데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예전에 어디선가 와인잔을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손과 입김으로 만들어져서 감동받았던 기억도 나고. 특히 번짐 없이 컬러 패턴을 넣는 것은 평정심과 크래프트맨쉽(Craftsmanship)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 같다. 이 부분은 헬싱키 시내 매장에도 똑같이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는데, 아마 모든 매장에 되어있었을 것이다.
무민(Moomin)은 분명 귀엽지만 평소 막 좋아하던 캐릭터까지는 아니라서인지 만지작 거리기만 하고 구입까지는 하지 않았고, 평소 사용하기 좋은 식기들에 더 눈이 갔다. 유리그릇만 기대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도기 제품들이 꽤 괜찮았다. 아마 헬싱키가 이번 여행의 시작이 아니라 마무리였다면 샀을 텐데 아쉽게도 포기한 것들이 많았다. 리조또나 파스타, 샐러드 담기에 딱 좋은 보울이 있어서 두 개 살까 엄청 고민했었는데 캐리어 무게 때문에 깔끔하게 포기.
같은 컬러여도 부분적으로 농도가 다르게 나와도 바로 B급 판정을 받고 세일 품목이 된다는 직원분 이야기를 듣고 돌아보니, 이렇게 컬러를 농도별로 보여주는 부분이 있었다. 판매하는 것도 아닌데 꼭 이런 게 더 탐난다. 신기한 것은 유리 두께가 두꺼울수록 컬러 농도가 진해 보인다는데, 농도가 다르게 나와서 B급 판정을 받는 아이들은 두께가 문제라는 것일까.
안내받은 세일 공간에서 뭐라도 사보자 하며 둘러보니, 보울보다 접시가 부피도 적고 운반하기도 쉬울 것 같았다. 평소 가장 좋아하던 컬러의 유리 접시 두 장과 알바 알토(Alvar Aalto) 컬렉션 캔들 홀더를 하나 구입했다. 접시는 개당 8유로, 한화로 만 원 정도의 착한 가격이었고 캔들 홀더는 3만 원이 조금 안 했던 것 같다.
물론 여행을 하면 내가 살던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지만, 유독 계산대 앞에 서서 보였던 창 밖은 정말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비현실적으로 맑고 푸르고 빛이 창을 뚫을 듯이 들어와서 온 몸이 나른해지는 분위기.
이딸라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복도에 사람이 꽤 많아졌다. 아쉽게도 월요일이라 9층 뮤지엄은 가지 못했다.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간단한 샌드위치나 샐러드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눈이 띄었다.
헬싱키를 대표하는 음식은 연어 수프와 순록 고기라고 듣고 갔는데 오히려 신선한 연어와 야채가 들어간 샌드위치 종류를 더 많이 접했던 것 같다. 덴마크만큼은 아니지만 핀란드도 건강한 식재료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특별히 맛있는 집이 아니더라도 다 중간은 갔다. 건강한 베이글과 스무디를 한 잔 하고 펜틱(Pentik) 매장으로 향했다.
컬러와 패턴이 주는 즐거움
입구부터 화려한 컬러와 패턴이 눈을 사로잡았다. 다양한 소재의 테이블웨어가 가득한데 같은 패턴으로 패브릭, 플라스틱, 페이퍼 등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모여있어 한 세트로 조합하였을 때의 모습이 잘 연상된다.
입구가 주방에서 쓰일 것들이었다면 창가 쪽에는 욕실용 제품들이 가득했다. 깔끔하고 심심한 흰색 타월을 쓰고 있어서인지 타월 욕심이 솟구쳤다.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만 사기로 했으니 백번 참고 아이쇼핑으로 만족했다.
그레이 컬러 바탕의 화이트, 블랙, 연한 핑크색 패턴이 마음에 들었던 코너에서 냅킨과 밤부(Bamboo) 조리도구를 골랐다. 냅킨은 어딜 가도 꼭 하나씩 사모으는 편인데 그만큼 쓸 일은 많지 않아서 싱크대 한편에 쌓이고 있다. 집에 손님을 들이지 않으니 쓸 일이 없는 것 같아, 혼자 밥 먹을 때에도 꺼내 써야 하나 싶다. 가볍지만 견고한 밤부 재질은 식기로도 몇 개 가지고 있는데 과일이나 케이크를 담기에 딱 좋다. 파스타나 샐러드를 섞거나 덜기에 좋은 커다란 스푼과 포크가 세트로 되어있는 것을 단돈 8유로에 구입했다. 컬러를 맞춰서 골랐더니 마음에 들어서 요리하기 좋아하는 언니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한 세트 더 구입. 그런데 서로 일상이 바빠서 아직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더니 오후 2시쯤 시내로 돌아갈 수 있었다. 헬싱키를 가기로 정했을 때부터 가고자 했던 곳을 들렸더니 비로소 내가 이 곳에 온 게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첫 쇼핑 스타트는 이딸라에서 시작되었다.
*북유럽 여행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제목이 떠오르면, 하나의 매거진으로 엮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