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너 Feb 20. 2022

우리에게 애나란?

#구너의영화리뷰11. '애나 만들기'는 왜 불쾌하고 섹시할까

 이상하다고 표현하기엔 아쉽고 약하다. 오히려 혼란스럽고 불쾌했다.

This whole story is completely true. Excpet for all the parts that are totally made up.

(이 이야기는 전부 실화이다. 완전히 지어낸 부분만 제외한다면)

매 시즌 초반부에 나오는 이 안내 문구조차 너무 완벽하게 혼란스럽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자신이 독일의 어마어마한 상속녀라는 황당무계한 사기를 친 사기꾼 범죄자일 뿐인데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매달리고 왜 비비안 켄트는 그렇게 그녀에게 집착하는지, 심지어 안타까워하기까지 하는지 이해가 어려워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타고난 심성이 곱지도 않고, 남을 업신여기는 말을 스스럼없이 해대는 미친 여자에게 왜 사람들은 애정을 때지 못하는지, 왜 미니 시리즈의 은근한 분위기는 자칫 애나를 응원하는 것처럼 들리게 구성한 것인지  불쾌했다.(물론 편파적으로 애나 편은 들었다고 볼 수 없고 그런 점에서 연출이 참 잘 된 거 같다고 느낀다)


실존 인물. 애나 소로킨


사람이 가지는 아우라와 분위기가 더 중요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만나야만 겪을 수 있는 경험이라 논외로 하고,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애나의 수법은 그렇게 치밀하지도 않다. 은행 송금시스템 문제, 신규 카드 발급 문제, 아빠와의 갈등으로 아빠가 돈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애나가 지불을 피하는 방법이다. 그런 식으로 그녀는 식당이나 호텔에서 지불을 피하고, 심지어 노라 등 다른 사람의 신용카드를 거침없이 써버 린다. 그리고 그 거침없는 씀씀이가 다른 사람들이 속는 지점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그렇게 쓰다간 파산하고, 부자들이 더 아끼고 계획적으로 돈을 쓰며,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매력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몰라서 사람들을 애나에게 속은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신디 셔먼의 작품에 대해 말하는 그녀의 견해를 좋아했고, 패션의 디테일을 아는 그녀를 동경했고, ADF의 비전을 보고 탐욕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펑펑 쓰는 그녀의 콩고물이 나에게도 떨어지길 바라며 함께했다.


 결국 애나의 사기는 월스트리트 은행들을 아예 파산시킨 남자들보다 가혹한 형량을 받으며 막을 내렸지만 우리가 사기꾼일 뿐인 애나의 이야기에 이토록 관심이 가는 것은 한편으론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애나가 속이고자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나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그게 돈이든 젊은 여성성이든 열정이든 당당함이든 간에. 그녀는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강한 자기 확신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자기애를 가졌다.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했으나 최고 엘리트 혹은 부유층이 속았다는 사실이 어쩐지 통쾌하기도 하다. 또한 그녀는 (적어도 영화에서는) 그녀에게 속는 사람들과 달리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능력을 보는 눈을 지녔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가 네프(실존인물로는 네페테리 데이비스)인 것은 네프가 가난해서도 아니고 예쁘거나 못생겨서도 아니고 자신과 말이 통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누구보다 잘 처리하는 능력이 있어서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이 최고가 되고 싶은 분야(명품 패션)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난 절대 애나를 정당화하고 싶지도 응원하고 싶지도 않다.  날이 갈수록 인기가 많아지는 이 미니 시리즈가 '애밀리, 파리에 가다'처럼 단순히 예쁜 여배우와 비싼 명품의 아름다움으로 소비될까 봐, #사기칠꺼면애나처럼 과 같은 사기꾼 찬양 해시태그가 유행하지는 않을까, 사기에 '여자'를 이용하는 모습이(애나는 내가 어린 여자라서 무시하는 건가요?라고 말하며 사기를 치기도 한다.) 잘못된 오해를 만들고 남녀 갈등을 더 가속화시키는 게 아닌지  두렵기까지 했다.

이 정도가 되니 비비안 켄트(실존 인물로는 제시카 프레슬러)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또한 애나에게 며칠간을 집중하고 시달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매화가 끝날 때마다 다음화를 보고 싶어 견딜 수 없기도 했다. 실제 뉴욕의 1% 상류층, 대기업인 은행들도 속아 넘어갔으니 정말이지 사람을 홀리는(미모로 홀리는 게 아니다. 애나를 연기한 배우는 아름다웠지만 실존인물은 그리 예쁘지는 않았다고들 한다.) 재주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애나는

실제로 그런 여자가 존재하길 바라는 소망이자
현대사회의 돈에 대한 탐욕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의 생존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