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 버리기, 배려하기.
누군가를 상담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역할을 하다 보니, 정작 제가 힘들고 지칠 땐 누군가에게 그 고민을 털어놓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작년 초부터 고등학교 때 정말 친했던 A라는 친구와 갑자기 멀어졌습니다.
어떤 계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카톡을 해도 읽고 답장도 없고, 팔로우를 신청해도 받아주지도 않더라고요. A가 오랜 기간 외국에 있다 최근에 한국에 들어와서 전화를 해봤습니다. 수신음이 좀 가더니 그 친구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 사냐고 묻자, 굉장히 차갑게 왜 라고 얘기합니다. 고등학교 때 했던 것처럼 ‘야 븅시나. 한국 왔는데 왜 연락 안하냐?’라고 장난스레 말하자, 냉소를 뱉으며 바쁘다고 좀 있다 연락할게라고 하며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전화를 끊고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올 거냐고 A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또 읽고 답장이 없더라고요. 저로서는 굉장히 답답해 죽을 맛이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다른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줄 때는 그렇게 기대 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면서, 막상 제가 이 상황이 되니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이유라도 알고 싶고, 잘못한 게 있다면 고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A에게 내가 뭘 잘못했는지만 좀 얘기해줬으면 좋겠다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역시나 읽고 답이 없더군요.
제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도 아니고 고등학교때부터 베스트프렌드였는데.. ‘내가 그렇게 안 좋은 쪽으로 변한 건가? 뭘 잘못 한 거지?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매졌을까?’
이 공허한 감정을 풀기 위해 A를 아는 고등학교 친구 몇 명에게 연락을 해봤습니다.
대부분 ‘니가 할 만큼 했네. 그래도 저렇게 무시하는 건 A가 사람 된 도리가 아니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공허해지더라고요. 공허함을 견디기가 힘들어 마지막으로 C라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습니다. ‘C야, 나 A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딱히 어떤 이유도 없었고, 큰 실수도 없었다. 그냥 갑자기 끈이 싹둑 잘리듯 잘려버려 굉장히 당황스럽고 서운하다.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든다.’라구요.
그러자 C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가 주목하고 있는 건 서운함 같아. 내가 이정도까지 했는데 A 니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이런 감정이지. 근데 생각해봐. 누구나 이유 없이 사람이 싫어질 수 있어. 그게 질투가 될 수도 있고, 아니꼬움이 될 수도 있고, 삶의 방식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보기에 A는 지금 그냥 니가 싫은 거야.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그 이유를 말해달라고 하는 자체가 A에게는 더더욱 스트레스가 될 거고, 그럼으로써 너를 더 싫어할 수도 있겠지. 니가 이유를 묻는다고 해서 풀릴 관계가 아니라면 그냥 놔둬. A가 널 싫어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런 깊은 고민을 들어주고 정성스레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니 주변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에서 저는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합니다.
유지태는 이영애가 자신을 떠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고 그녀주변을 서성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꽤나 지나고 완전히 그녀가 잊혀졌을 때 이렇게 웃으며 손 흔들어주는 장면, 유지태의 뒷모습은 선명하지만 이영애의 모습은 흐릿한 걸 보면서 유지태가 정말 이영애를 잊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어라는 과목이 싫은 이유에 대해 누군가는 답이 애매모호해서라고 대답할 것이고 누군가는 지문 읽는 게 짜증나서라고 대답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냥’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냥 국어라는 과목이 싫은 겁니다. 이유가 없이요.
제가 아마 A에게 그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A에게 느꼈던 서운함이 훨씬 덜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A와 멀어지고 영영 보지 못할 지라도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고, 그저 A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들만을 간직해야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A가 먼저 다가와준다면, 그 때 반갑게 손 흔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