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이 사람이 날 좋아하진 않을까요?

어장의 미학

by 권민창

연애 관련 글을 많이 적다보니 메시지로 연애 고민을 많이 풀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고민이 ‘이 남자(혹은 이 여자)와 잘 되고 싶은데 이 사람 태도가 애매해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였어요. 그래서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좀 풀어보려고 합니다.

20대 초반에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에 좋아하는 누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 죄송합니다.) 청년부 예배가 끝나고 조모임을 하러 다른 방으로 이동할 때 그 누나를 처음 봤습니다. 연예인을 보게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너무 이뻤습니다. 박지윤과 박수진을 섞어 놓은 듯한 얼굴, 가녀린 체형, 아담하지만 엄청나게 좋은 비율. 그냥 외면적으로 ‘완벽’하게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교회 특성상 서로간의 교제는 굉장히 조심스레 접근했어야했기에 교회에서 정말 믿을만한 끄나풀을 통해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몇 살인지, 뭘 하는 지를 알아봤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저보다 무려 4살이나 많더군요. 그리고 중국어를 전공해서 통번역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당시에도 저는 한국어만 사용할 수 있었기에 2개 국어 이상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한 동경심이 있었습니다. 스마트해보였어요. 더더욱 이뻐보이더군요. 박수진을 닮은 외모에 중국어 통번역자라니.
가벼운 만남이 아닌 이상, 소개팅이나 호감이 있어 누군가에게 대쉬를 할 때는 그 사람의 사전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서로의 레벨을 비교해보죠. 그 레벨에는 학벌도 있겠고, 직장의 안정성 유무, 그리고 외모(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할 정도면 좋겠죠.)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누나와 저를 춤으로 비교해본다면 누가 봐도 그 누나는 방탄소년단이었고, 저는 그냥 평범한 대학댄스동아리 부 주장 정도였습니다. 퍼포먼스, 실력, 외모, 인기 어느 하나 비빌게 없던 거죠. 그렇지만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혹시나?’라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혹시나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혹시나 내가 그 사람의 취향인 부분이 있지 않을까, 혹시나 만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라구요.
그렇게 어렵사리 연락처를 수소문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첫 카톡을 보냈습니다.
‘누나 안녕하세요. 저는 00그룹의 권민창이라고 해요. 자주 뵀는데 인사를 한 번도 못 드려서 이렇게 용기내서 카톡 드려요!’
그러자 20분 정도 있다 답이 왔던 것 같습니다.
‘아, 반가워요. 이름도 들어봤고 얼굴도 알아요.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렇게 연락 줘서 고마워요.’
이 카톡에 저는 갑자기 자신감이 확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게 그 괴로운 어장 속의 물고기가 되는 시작인지도 모르구요.
‘제가 더 감사하죠! 누나 근데 너무너무 이뻐요. 저 처음에 누나 보고 진짜 박수진인 줄 알았다니까요.’
‘아 고마워. 말 편하게 할게. ㅋㅋ 근데 민창이 너도 인기 많을 거 같은데? 내가 관심 없는 척 지켜보고 있었지.ㅎㅎ’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마음에 들어 한다니.
그렇게 며칠 동안 계속 카톡을 했습니다. 연락이 금방 안 오면 굉장히 불안하다가도, 늦게라도 오면 세상 행복한 줄 몰랐어요. 그 누나의 연락 한통 한통에 감정이 널뛰기하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 누나와 연인이 된 제 모습을 수없이 상상해보며 혼자 웃음 짓다가도 갑자기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관계의 진전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만나자고 하거나 약간의 호감을 비추려고 하면 일이 바쁘다거나, 갑자기 다른 말로 돌렸습니다. 그 이외의 일상적인 카톡에는 정상적인 답장을 해주더라고요. 저는 그 때 제가 어장에 갇힌 물고기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결국 고백은 하지 못했습니다. 결말을 아는 데 굳이 확인사살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나와 자연스레 멀어졌던 것 같아요.
제3자가 봤을 땐 분명히 어장이고,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막상 어장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혹시나?’라는 확률 낮은 게임을 지속하려 합니다.
혹시나가 운명이 되는 경우도 정말 간혹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혹시나는 역시나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호감이 있는 경우는 대개 헷갈리지 않는 거 같아요.
어장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사랑과 관심을 갈구합니다. 자신이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걸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한 번씩 심쿵멘트도 쳤다가, 좀 깊어졌다 싶으면 얼른 빠져 나오는 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어장의 물고기는 죽어나는 거죠. 뻐끔뻐끔 거리며 매번 선택을 기다리다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느냐, 아니면 제대로 된 흑역사를 만드느냐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살다보며 제가 어장에 있던 적도 있고, 저도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어장을 쳤던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느낀 점은 ‘적어도 나는 누군가의 마음으로 장난질치지 말자.’라는 결론을 얻은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며 5년 만에 그 누나의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습니다. 아무 느낌도 안 드네요. 풋내기 시절 한층 더 저를 성숙하게 해줄 수 있었던, 힘들지만 의미 있던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