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불안하고 힘들어요.
30살, 10년을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을 퇴사한 내 나이였다. 퇴사를 했을 때 나는 응원보다는 걱정을 많이 들었었다.
‘사회가 호락호락하지 않을 텐데..’ ‘취직할 곳은 정하고 나가는 거지?’
주변에서는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며, 좀 더 나이 들면 신입사원 공채도 넣지 못하니 최대한 빨리 취직하라며 나를 보챘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의 반 이상을 회사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퇴사를 하고 제일 처음 한 일은, 영어회화학원등록이었다.
영어회화를 잘 하고 싶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고, 두 번째는 유럽에서 가이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6개월간 취직을 하지도 않고, 영어공부만 했다. 그리고 6개월의 끝에 나는 영어로 스피치까지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해외여행 가이드를 지원했는데, 코로나가 터져 해외여행 자체가 막혀버린 것이다.
불안한 시간들의 연속이었고, 그때쯤 내가 포기했던 것들이 점차 생각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그 때쯤, 아는 대표님이 글쓰기 클래스를 제안하셨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을 배운 적도 없었고, 나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처음에는 부담된다고 거절을 했다. 그러나, 계속 미루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될 거 같아 억지로 강의안을 만들고 강의를 했다. 강의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지금 글쓰기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 7월, 5번째 책을 출판하고 몇 명의 독자들을 직접 뵙고 그들의 고민을 듣고 답변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 인상 깊은 20살의 학생이 생각난다. 조심스레 카페에 들어와, 본인이 나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질문지에 빼곡히 적어 물어봐도 되냐고 멋쩍게 웃던 귀여운 학생. 그 학생의 질문 중 이런 게 있었다. ‘주변에서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야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넌 어려서 모른다고.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나이가 들면 포기해야할게 많아지고 현실에 타협하게 되나요?’
그 답변에 내가 정확히 어떻게 대답을 한 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식으로 답변했던 것 같다.
‘제 나이가 올해 서른 한 살이에요. 사회적인 기준에 따르면 평일에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열심히 일을 하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주말에는 근교 데이트도 다니며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겠죠.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벌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요. 그러나 전 그와 정반대로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20대때 앞에 말한 것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았을 때 전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 때의 제 삶은 사람들이 말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 흔히 행복한 삶이라고 불리우는 삶이었지만 오히려 불행했습니다. 반면 지금은 참 행복해요. 다수가 그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그게 답은 아니에요. 그 사람들의 안정이 나에겐 불안이 될 수도 있고, 그 사람들의 불안이 나에게 안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진정 무언가를 할 때 행복한가를 찾는 거고, 그걸 지속해서 하다보면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돼요.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게 되거든요.’
직장에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이를, 사회에 나와서는 자주 잊고 살 때가 많다. 그만큼 상대방을 이런 사람이라고 짐작하고 비교하는 습관이 많이 없어져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타인의 인생에 큰 관심을 둘 여유가 없을 만큼 내 삶이 재밌고 바빠서일수도 있다.
내년이면 서른 둘, 여전히 나는 방황하고 불안함을 스스로 청한다. 이게 나에게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게 아니다.
본인의 꿈을 좇다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할 때, 그 때 나이가 보이는 것이다.
오늘 그 때 만났던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몇 개의 학교를 붙었는데, 학교의 인지도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학교, 원하는 과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왜 더 인지도 있는 학교를 안 갔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본인의 결정이 그러하다면 그게 옳은거니까.
모두가 본인의 행복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누구의 기준이 아니라, 오롯이 본인만의 기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