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 않은 삶을 살자
‘어느 정도의 소득을 올렸을 때 가장 기뻤나요?’
최근에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이런 대답을 했다.
‘처음으로 월 순수익이 500만 원을 넘었을 때요.’
작년 9월, 월 순수익이 500만 원을 넘었다. 인스타그램으로 책 광고 콘텐츠 10개를 만들고 100만 원을 받았었는데, 그 딜이 성사되고 통장으로 3.3%를 제한 96만 7천 원이 들어왔을 때 너무 기뻤다. 왜냐면, 7월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월 80만 원도 못 벌며 반지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짧은 시간을 투자해 이렇게까지 많은 돈을 받아도 되나?’라는 약간의 죄책감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역량으로 온전히 돈을 벌 수 있게 됐다.’라는 희열감이 들었다.
10월, 800만 원, 11월에는 드디어 순수익 1000만 원을 넘었다. 열심히 일했고 광고도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신기한 게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익숙해진 것이다. 처음의 그 희열감이 많이 희석됐다. 그러다 2022년 1월, 출판사를 직접 만들고, 그 출판사에서 내 책을 냈다. 그리고 매일 새벽 3시가 넘어서 잤다. 그렇게 늦게 잤던 이유는,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어야했기도 하지만 서점 순위나 판매량이 그때나 돼서야 집계가 되기 때문이다.
매일을 울고 웃었다.
‘오늘은 3권 팔렸네.’ ‘오늘은 8권이네.’ ‘이게 과연 될 책일까?’ ‘돼야만 해.’
하지만 그런 과정 자체가 너무 재밌고, 즐거웠다.
만약 내가 출판사를 차리지 않았다면 안정적으로 월 천만 원은 계속해서 벌 수 있었을 것이다. 인스타는 계속해서 커져갈 거고 자연스레 단가도 올라갈 테니까.
그러나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도전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고 싶었다. 돈을 벌어보니, 돈은 언제든 벌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오만함이 생겼던 것이다.
그런 말이 있다. 3할을 한 번 찍어본 타자와, 3할을 한 번도 찍어보지 않은 타자는 레벨이 다르다고. 나는 월 천을 찍어봤으니. 언제든 찍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였던 첫 책인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가 잘 됐고, 현재는 나 포함 4명의 구성원과 함께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금전적으로도 훨씬 더 여유로워졌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기쁨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몇 십억, 몇 백억 자산을 모으는데 기쁨과 희열, 카타르시스를 느끼겠지만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요즘 너무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일에서 얻게 되는 가치, 내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데서 엄청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미국 퍼듀 대학의 연구원들은 연 소득 9만 5천 불을 넘어가면 정서적 행복감(Emotional well-being)과 삶의 만족도가 감소하는데, 그 이유는 건강에 좋을 것 없는 사회적 비교와 만족을 모르는 물질적 추구라고 대답했다.
10억을 벌면, 100억을 벌고 싶고, 100억을 벌면 1,000억을 벌고 싶다. 돈이 많으면 정말 좋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돈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잘하는지 파악해야 하고, 정확히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손에 쥔 무언가를 내려놓기 두려워한다. 움켜쥐고 있는 무언가를 내려놓는 순간 나의 존재 자체가, 내가 그 동안 쌓아왔던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에.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용기는 그 사람의 그릇을 키우고, 훨씬 더 많은 걸 가져다준다.
손에 쥔 모든 것들을 항상 내려놓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 되고 싶다.
큰 용기로 삶을 놀랍게 발전시키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늘 그런 삶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