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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Oct 16. 2021

노을

다 노을 때문이야



"누나 더 놀다가요."

그 애가 나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나를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을 걸어서 깜짝 놀랐다.


"아..."

당황해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약속 있어요?"

"아니... 조금 피곤해서"

"조금만 더 놀다가요. 동아리 사람들끼리 밥 먹는 거 처음이잖아요."

우물쭈물거리다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도윤이를 처음 알게 된 건 동아리 발표날이었다.

대학교 2학년이 되고 게임 창작 동아리에 들어갔다.

학기 초에 조별로 어떤 게임을 만들지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다른 조 조장이었던 도윤이를 처음 보게 됐다.

단발에 가까운 긴 머리에 통이 엄청 넓은 바지를 입은 그 아이는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사람처럼 보였다.

스무 살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능숙했다.

집중해서 발표를 듣고 있는데 노을이 드리웠다.

통유리로 된 강의실이 일순간에 주황빛으로 바뀌었다.

발표가 끝나고 '질문 있으신가요?'라는 말이 들렸을 때 아주 오랫동안 그 애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눈이 그 애를 따라가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자리에 앉은 나는 다른 아이들과 속도를 맞춰 술잔을 빠르게 비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 도윤이를 쫓고 있었다.

사교성 좋은 도윤이는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가 다운되자 한 친구가 술 게임을 하자고 했다.

"술 게임에서 걸린 2명이 아이스크림 사 오기. 콜?"

"콜. 무슨 게임?"

"배스킨라빈스. 나부터 왼쪽으로 돌게."

사람이 워낙 많아 내 차례가 오기도 전에 끝날 게 뻔했다.

도윤이 앞에 앉은 친구가 씩 웃으며 도윤이를 바라보더니 "28,29,30"을 외쳤다.

아이들이 게임에 걸린 도윤이를 놀렸다.


"도윤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무슨 게임 무슨 게임~"

"손병호 게임. 나부터 오른쪽으로"

이번에 걸리면 도윤이랑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갈 수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걸려야 했다.

"남자 접어."

아이들 모르게 손가락을 슬며시 접었다.

아싸는 이럴 때 유용하다.


"강아지 키우는 사람 접어."

상상 속의 백구를 떠올리며 한 번 더 손가락을 접었다.

여덟 명쯤 돌았을 때 내가 걸렸다고 슬쩍 손을 들었다.

아이들이 도윤이랑 둘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오라고 했다.

아싸 성공이다.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도윤이와 함께 근처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힘들게 만든 기회인데 입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많이 마셨어요?" 긴 정적을 깨고 도윤이가 입을 열었다.

"아니 괜찮아."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편의점에 가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점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제가 살게요."

도윤이는 컨디션 두 개를 가지고 오더니 아이스크림까지 자기 카드로 계산했다.

"들어가기 전에 우리끼리 마시고 가요."

컨디션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술집까지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도윤이가 바로 옆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애가 집 갈 때 방향이 같으니 같이 가자고 말했다.

같이 갈 생각에 마음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서로의 폰에 번호를 찍는데 훨씬 가까운 관계가 된 기분이 들었다.


술자리로 돌아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11시였다.

도윤이 옆으로 가서 말을 걸었다.

"나 10분 있다 집에 가려고 하는데. 너는?"

"네. 같이 가요."


함께 갈 생각에 두근거렸다.

동시에 지하철 조명이 환해서 내 얼굴이 잘 보일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도윤이가 보이지 않았다.

10분이 지나도 자리에 오지 않아 문자를 보냈다.

-도윤아 어디야? 나 지금 집 가려고 하는데.

막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결국 혼자 먼저 나왔다.

집에 도착한 후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정신이 또렷했다.

문자를 보낸 지 2시간도 더 지나 답장이 왔다.

-아 문자 지금 봤어요. 다음 모임 때 봐요.







도윤이 번호를 등록한 이후 수시로 카톡 프로필을 확인했다.

오늘은 상태명이 바뀌어있었다.

'시험 폭망'

무슨 용기가 났는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도윤아 오늘 시간 돼? 밥 사줄게

메시지를 보내고 떨리는 마음에 핸드폰을 엎어 두었다.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잠시 후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조심스럽게 폰을 뒤집었다.

손으로 눈을 가리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다른 친구의 문자였다.

1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자 불안해졌다.

괜히 보냈나...

지울 수 있다면 보낸 메시지를 삭제하고 싶었다.


그때 핸드폰에 진동이 왔다.

-언제요?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답장을 보냈다.

-6시 어때?

-네 괜찮아요

-정문 스타벅스 앞에서 보자


오늘의 후회는 오늘 제일 잘 한 일로 바뀌었다.

도윤이와 둘이 볼 시간이 생겨서 주체할 수 없이 들떴다.

샤워하고 하얀 프릴 원피스로 갈아입었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이 부끄러웠다.

원피스에 있는 레이스 개수만큼 도윤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30분 넘게 옷을 갈아입다 결국 무난한 티와 청바지를 입었다.







스타벅스 앞에 도착하니 도윤이가 서 있었다.

검은색 티에 추리닝 바지를 입은 그 아이를 보자 원피스를 안 입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도윤이에게 인사를 했다.

나와 달리 그 아이의 표정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바로 앞에 보이는 돈가스집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메뉴를 선택하고 나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정적을 깨고 도윤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나 왜 저한테 밥 사줘요?"

"친해지고 싶어서."

"왜요?"


네가 좋아서.라고 하면 너무 오버겠지?

급하게 둘러댈 거리를 찾았다.

"그냥. 공부 잘해 보여서."

그러자 도윤이가 답했다.

"저 공부 못하는데."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하고 있는데 음식이 나왔다.

돈가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열심히 자르기 시작했다.

포크로 집어서 입으로 가져오는 손이 덜덜 떨렸다.

떨고 있다는 걸 들킬까 봐 손이 안 보일만큼 빠르게 먹었다.


말은 거의 하지 못한 채 돈가스만 먹다 가게 밖으로 나왔다.

"누나 잘 먹었어요. 이제 집에 갈까요?"

도윤이가 말했다.

이대로 집에 가고 싶지 않은데...

"어... 맥주 마실래?"

도윤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맥주 집에 도윤이를 데리고 갔다.

술을 마시자 마음이 조금 편해져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존댓말 듣는 걸 불편해한다는 핑계를 대며 말을 놓으라고 했다.


이제 궁금했던 걸 물어볼 시간이다.

"도윤아 너 여자 친구 있어?"

"아니"

기쁜 마음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이상형은 어떻게 돼?"

"딱히 없는데. 누나는 이상형 있어?"

그에게 약간의 힌트를 주기로 했다.

"난 발표 잘하는 사람 좋아해."







그날 이후 방학을 해서 동아리에서 도윤이를 만날 수 없었다.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두 달 넘게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문자를 보내 놓고 주말에 갈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도윤이랑 만나는 상상만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나 토요일에 자격증 시험 있어. 시험 끝나면 연락할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토요일 저녁쯤 연락이 오려나?

친구들이 일요일에 놀자고 했지만 도윤이에게 연락이 올까 봐 거절했다.

토요일 저녁이 되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문자가 올까 자기 전까지 폰을 꼭 붙들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도 도윤이에게 온 문자는 없었다.


연락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니 일주일이 지났다.

도윤이는 나를 잊어버린 게 분명했다.

몇 번이나 주저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도윤아 내일 뭐해?"

"오전에 알바해"

"어... 저녁에 나랑 놀래?"

"그래"

오랜 고민이 의미 없게 느껴질 만큼 쉬운 대답이었다.


다음 날 7시에 한강에서 보기로 했다.

냉장고에서 팩을 꺼내 얼굴에 붙였다.

일찍 자야 내일 피부가 좋아질 테지.

하지만 두근대는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새벽 늦게 잤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잠을 못 잤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어린 왕자의 대사를 떠올렸다.

'네가 저녁 7시에 온다면 난 아침 7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한강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누나 미안한데 집에 일이 생겨서 집에 들렀다 가야 할 것 같아

-얼마나 늦어?

-30분 정도

전화를 끊고 가만히 강을 바라보았다.

강에 햇빛이 비쳐서 물결이 반짝반짝거렸다.


눈앞에 수많은 커플이 보였다.

서로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너무 부러웠다.

7시 반이 되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노을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5분쯤 지나자 옅어졌고 10분쯤 지나자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도윤이가 도착했다.

"노을이 다 사라졌어."

내가 말했다.

"그래?"

도윤이는 노을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강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도윤아 너는 어떤 영화 좋아해?"

"우주 영화 좋아해. 인터스텔라 같은 거." 도윤이가 말했다.

"진짜? 나돈데. 너는 우주가 왜 좋아?"

"어릴 때부터 우주 관련된 책을 많이 봐서 그런가. 누나는 왜 좋아?"

"우주를 떠올리면 내가 엄청 작게 느껴져. 그럼 다 별 거 아닌 거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그렇구나. 누나 말 들으니까 내 고민도 작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문제가 자신을 너무 크게 봐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해. 힘들 때는 네가 우주에 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별이라고 생각해봐."

내 눈에 이렇게 반짝이는 걸 보면 도윤이는 분명히 별이 맞을 거다. 


도윤이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다음 주 수요일에 개봉하는 우주 영화를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한강에서 같이 셀카도 찍었다.

핸드폰 앨범에 도윤이 사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약속한 수요일이 됐다.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초조한 마음으로 문자를 보냈다.

-도윤아 우리 오늘 만나는 거 알지?

1시간이 지나도 답이 오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준비를 끝냈다.

만나기 전까지 카페에 가 있기로 했다.


준비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오니 문자가 도착했다.

-누나 나 친구들 만나는 중인데 다음에 봐도 될까?

-그래

울적한 마음으로 카페에서 나와 근처 술집에 갔다.

혼자 술집에 와본 건 처음이었다.

2인용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모두 자기 앞에 앉은 사람이 있는데 나만 없었다.

한 병을 채 마시지 못하고 가게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방에 가만히 누웠다.

한강에 간 날 도윤이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누나, 좋은 사람 같아."

예전에 사귀던 애인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그와 사귄 지 두 달 정도 됐을 때였다.

"지수야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좋은 사람은 아무 쓸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계속 도윤이를 보지 못하고 방학이 끝났다.

개강 후 첫 동아리 모임을 했다.

기획을 맡은 친구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게임 기획을 발표했다.

도윤이가 앞에 나와 자신의 게임 기획을 이야기했다.

발표하는 동안은 마음 놓고 도윤이를 쳐다볼 수 있었다.

마이크로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발표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각 조의 팀원을 모집했다.

어떤 게임을 만들든 상관없었다.

도윤이랑 같은 조에만 들어가면 된다.

도윤이 조에 손을 들었는데 4명 정원에 8명이 지원했다.

가위바위보로 팀원을 정하기로 했다.

'같은 조 되게 해 주세요. 같은 조 되게 해 주세요.'

떨리는 마음으로 간절히 주문을 빌었다.

가위바위보!

와 졌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아리 모임이 끝나고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도윤이 근처에 앉기 위해 그 애가 가게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바로 뒤따라 가긴 부끄러워 다다음으로 들어갔다.

운 좋게 도윤이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이 수저를 세팅하고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도윤이가 잠깐 전화를 받으러 나갔는데 그 사이 다른 아이가 그 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들어와서 멀리 앉은 도윤이를 힐끔거리며 조용히 술만 들이켰다.

혹시 쳐다보는 것을 들킬까 몰래몰래 바라보았다.


수진이가 3차 갈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도윤이가 가겠다고 하길래 나도 간다고 손을 들었다.

셋이 근처 룸 술집에 갔다.

수진이가 남자 친구와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나와 도윤이가 열심히 들으며 조언해줬다.

밤 12시가 되자 수진이가 먼저 집에 간다고 일어났다.

도윤이가 나보고 집에 안 가도 되냐고 물었다.

집이 가까워서 괜찮다고 했다.

밀폐된 공간에 둘이 있으니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순간 정적이 흘렀다.


"누나 나 좋아해?"

정적을 깨고 도윤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왜 물어봐?"

내 마음을 뻔히 알면서 떠보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런 것 같아서."

도윤이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 애는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향수 냄새가 확 느껴졌다.

도윤이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얼굴이 점점 가까이 왔다.

내 왼쪽 볼을 손으로 감싸고 입을 맞췄다.

도윤이의 손이 얼굴에서 목으로 내려갔다.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입을 뗐다.

도윤이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집에 가야겠다고 말하고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집에 오자 방금 있었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나를 쉽게 보는 건 아닐까 화났던 마음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호감은 있으니까 입을 맞춘 거 아닐까?

작은 희망이라도 가져보고 싶었다.






도윤이는 그 후로 아무 일 없던 듯이 나를 대했다.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술을 많이 마셔서 지어낸 환상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집에 가만히 앉아 핸드폰 캘린더를 보고 있는데 도윤이 생일이 일주일 후였다.

선물을 고르기 위해 도윤이 인스타에 접속했다.

친구들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아래에 '폴라로이드 카메라 갖고 싶다'라고 쓰여 있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10만 원이 훌쩍 넘었다.

여행 가려고 모아둔 돈으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주문했다.


며칠 후 도윤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27일 날 만날래?

생일날은 약속이 있을 거 같아서 그 전날 만나자고 했다.


약속 당일 만나기로 한 카페로 걸어갔다.

지난번에 입지 못한 하얀 프릴 원피스를 입었다.

미용실에 들러 드라이도 받았다.

오늘은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도윤아 생일 축하해."

말을 건네면서 폴라로이드도 같이 줬다.

부담스러워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고맙다며 받았다.

도윤이가 웃는 모습을 보자 폴라로이드 3개도 사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각자의 동아리 조 얘기를 하며 신나게 떠들었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눈 지 두 시간 정도 됐을 때 도윤이가 말했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가볼게."

그 애의 말 한마디에 섭섭함이 몰려왔다.

애초에 그 애가 나와 오래 있어야 할 의무 같은 건 없었다.


도윤이와 헤어지고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지하철에서 도윤이에게 문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만두었다.

인스타에 들어갔는데 도윤이가 방금 올린 사진이 보였다.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하철 역에 내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

놀이터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멍을 때렸다.

캘린더에 매 년 반복으로 등록해놓은 도윤이의 생일을 삭제했다.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예쁘게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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