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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Feb 11. 2022

승리가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다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리뷰/줄거리/해석/결말

(사진=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스틸컷)


우리 노동자들은
기계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는다!


영국인 네드 러드가 노동자들을 향해 외쳤던 말이다. 러드는 기계를 파괴해야만 노동자들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들을 이끌며 공장에 들어온 기계를 부수고 공장 소유주 집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이 19세기 초 벌어진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다. 러드가 실존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는 오늘날 신문물에 저항하는 운동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는 과거와 미래가 갈등하는 현재를 그린 작품이다. 1925년 미국 몬타나주의 대목장을 배경으로 한다. 과거에 집착하는 형 필과 새로운 미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동생 조지,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조지의 아내 로즈, 자신만의 방식으로 갈등을 극복하려는 로즈의 아들 피터가 뒤엉키는 이야기다. 네 사람의 이중적이고 모호한 태도가 갈등을 극대화하고 긴장감을 고조한다.

영화는 1967년 발매된 토머스 새비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22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제94회 오스카상 후보 발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가장 많은 12개 부문에 지명됐다. 제인 캠피온 감독은 영화 <피아노>(1993)에 이어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두 차례 오른 첫 여성으로 기록됐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피터 역의 코디 스밋 맥피(왼쪽부터), 필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조지 역의 제시 플레먼스, 로즈 역의 커스틴 던스트/사진=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스틸컷)
1925년 미국 몬태나. 버뱅크 형제는 25년째 소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형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은 권위적이며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반면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는 형의 등쌀에도 내성적이며 차분하게 자신의 일만 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들의 삶에 미망인 로즈(커스틴 던스트)와 그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 맥피)가 들어온다. 필은 그들이 못마땅하다. 특히 종이꽃이나 만드는 피터가 여자처럼 연약해 보여 마뜩잖다.


미국은 지금처럼
활기 넘치는 번영을
누린 적이 없다


<파워 오브 도그>는 겉보기에 '서부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배경일뿐이다. 총을 쏘기는커녕 폭력을 쓰는 장면조차 없다. 하지만 주요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그 어떤 잔인한 폭력보다 더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특히 인물들은 겉모습과 상반된 자신만의 비밀을 하나씩 갖고 있다. 이들의 모호한 태도는 시대적인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


영화의 배경인 1920년대는 미국의 경제 황금기였다. 미국 30대 대통령(1923-1929) 캘빈 쿨리지는 "미국은 지금처럼 활기 넘치는 번영을 누린 적이 없다"라고 연설할 정도.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성장한다. 국제질서가 미국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경제적 호황기를 맞이했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경제 중심이 이동했으며, 경제력이 상승하면서 각종 인권 문제가 대두되었고, 1920년 여성이 최초로 투표에 참가했다. 사회 변화가 급격했던 시기라는 뜻이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스틸컷)


운전하는 여자를 처음 봤어


영화 초반 나오는 이 대사는 당대를 반영한다. 사회문화가 급변하는 시기라는 건 "운전하는 여자를 처음 봤다" 등의 대사로 드러난다. 이때 목장을 운영하는 필과 조지 형제는 과거 세력이다. 두 사람의 차이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수용 여부다. 이는 청결함을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난다. 필은 씻지 않는다. 부모님과 주지사가 집에 온다고 해도 절대 씻지 않는다. 과거의 체취를 쉽게 씻어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조지는 첫 등장이 목욕하는 장면이다. 항상 말끔한 정장 차림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것은 미망인 로즈와 그의 아들 피터다. 조지가 로즈와 결혼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필은 완고하게 두 사람을 거부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무너뜨리려고 한다. 로즈와 피터의 차이는 변화를 거부하는 필에게 대항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로즈의 방식은 회피다. 하지만 필은 이미 목장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의 왕에게 그런 소극적인 방식이 통할 리 없다. 필의 세계관에 들어온 로즈는 그의 휘파람, 발소리만으로도 압도당한다. 회피의 끝은 알코올 중독이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스틸컷)


이를 지켜보는 아들 피터는 다르다. 피터는 필을 파악하고 심리적 우위에 선다. 사실 필과 피터의 만남은 시작부터 불미스러웠다. 필은 로즈의 식당에서 피터가 만든 조화를 조롱하고 불을 붙여 파괴했다. 그리고 피터가 가녀린 태와 몸짓을 보이자 필은 그를 암사내라고 놀린다. 하지만 피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로즈와 달리 필에게 더 다가간다. 말 타는 법, 밧줄 만드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초반에 피터를 우습게 보던 필은 조금씩 태도가 달라진다.


두 사람이 필을 대하는 태도는 구도로 나타난다. 로즈는 필을 올려다보는 일이 많다. 피아노 앞이나 식탁에 앉아있을 때 구도상 필은 로즈보다 위에 있다. 필의 소리가 들릴 때는 로즈는 주로 침대에 있다. 로즈가 심리적으로 필보다 아래에 위치하는 것을 구도로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피터는 내려다본다. 필의 목장을 내려다보는 장면, 필이 밧줄을 만드는 장면에서 피터는 필보다 위에 있다.


심지어 두 사람이 함께 대화를 나눌 때도 그렇다. 함께 말을 타고 이동해 울타리를 만들고 토끼몰이를 하는 곳에서의 대화를 보면, 피터는 허리를 세우고 앉아있지만 필은 거의 반쯤 누운 상태로 피터를 올려다본다. 캐릭터와 카리스마를 보면 필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심리적으로 누가 우위에 있는지 화면 구도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스틸컷)


아버지는 목매서 자살했어요


영화 후반부는 피터와 필의 관계에 집중한다. 피터는 필의 마음을 크게 흔들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피터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이로 인해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현재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 상태다. 피터는 의대에 다닌다. 가녀린 모습이지만 표정 하나 없이 토끼를 해부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가 숨기는 것이 많다는 걸 암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필은 정반대다. 누구보다 강해 보이지만 연약한 속살이 있는 인물이다. 그 속살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브롱코 헨리'다. 필은 끊임없이 브롱코 헨리를 언급한다. 직접적으로 설명되진 않지만, 브롱코 헨리는 필의 우상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연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필은 동성애자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필의 과거에 대한 집착은 브롱코 헨리와의 추억에서 비롯된다. 그 상징이 밧줄이다. 필에게 밧줄은 프롱코 헨리와의 애틋한 관계를 나타내는 물건이자, 프롱코 헨리 그 자체다. 필은 그러한 밧줄을 만들기 위해 가죽을 팔지 않고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로즈가 말도 없이 가죽을 인디언에게 내줬다는 사실에 분노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사실상 브롱코 헨리가 필의 인생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스틸컷)


저 산에서 뭐가 보이지?


집착은 그를 과거에 머물게 하고 가족을 괴롭힌다. 그러던 필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피터에게서 브롱코 헨리의 향기가 느껴질 때다. 필은 광활하게 펼쳐진 목장 앞산을 보며 동료 카우보이들에게 "저 산에서 뭐가 보이지?"라고 묻곤 했다. 동료들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피터는 달랐다. 피터는 "짖어대는 개요"라고 말한다. 브롱코 헨리와 같은 대답을 한 것이다.


필은 그 대답으로 피터가 자신과 같은 성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간파한다. 이때부터 필은 스스로를 '과거의 프롱코 헨리'로 여기고, 피터를 '과거의 필'로 생각한다. 필이 가죽이 없어진 걸 알고 분노에 찬 상태에서 피터가 가죽을 주겠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처음으로 두 사람의 눈높이가 같아진다. 필이 피터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는 순간이다. 밧줄을 만들면서 담배 한 개비를 나눠 피는 장면은 두 사람의 심리적 섹스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필은 숨겨왔던 자기 속살을 드러낸 셈이다.


피터는 필의 감정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필이 생각하는 것처럼 '과거의 필'에 위치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괴롭히고 자신을 조롱한 그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이 크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피터의 아버지가 자살한 이유가 간략히 나온다. 필이 술집에서 피터의 아버지를 조롱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 자살의 원인 중 하나라는 내용이다. 결국 피터는 자기 가족을 파국으로 내몬 필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한 것이다.


피터는 아버지의 자살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목맨 밧줄을 직접 끊었다. 피터에게 밧줄은 아버지 목숨을 앗아간 도구다. 필에게 과거의 연인을 추억하는 도구인 것과 상반된다. 피터는 필에게 밧줄이 어떤 것인지 파악했다. 이를 이용해 필이 속살을 보여주는 순간을 기다렸다. 미리 준비한 탄저균이 섞인 가죽을 필에게 건네고, 필은 프롱코 헨리를 떠올리면서 그 가죽으로 밧줄을 완성한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스틸컷)


불행을 견디면 어른이 된다

두 사람은 매우 상반된 것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우상,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조언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필은 "불행을 견디면 어른이 된다"라는 프롱코 헨리의 말을 따른다. 필에게 불행은 자신의 속살이 드러나는 일이다. 그의 마초적 행동은 속살을 지키기 위함이다. 피터는 피터의 아버지가 말한 "인생은 장애물을 없애 가는 것"에 충실한다. 피터는 장애물인 필을 살해한다.


인생은 장애물을 없애 가는 것


이들의 관계는 시대적 충돌, 성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장치다. 필의 죽음 유난히 쓸쓸하게 그려지는 건 이 때문이다. 과거를 지키려는 자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고단함, 외로움을 나타낸다. 그런 점에서 필의 집착이 절대적으로 악이었으며, 감히 어리석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마지막 장면인 피터가 필이 만든 밧줄을 침대 밑에 간직하는 모습은 새로운 변화를 이끄려는 자의 승리이면서도 잔인함을 보여준다. 이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피터의 복수에 박수를 쳐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진=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 스틸컷)


앞서 러다이트 운동을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과거와 미래는 충돌한다. 그럴 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시대가 바뀌고 있으니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건 또 다른 폭력이다. 반대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아무리 튼튼한 밧줄로 막아도 소용없다. 이제 그 밧줄의 용도마저 달라졌으니. 새로운 시대의 승리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하지만 승리가 모두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영화 제목인 <파워 오브 도그>는 성경 구절에서 따왔다. 시편 22편 20절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이는 선과 악이라는 담론을 붕괴하는 이중적인 이미지가 중첩되어 의도적인 구술로 발화된다. 성경에서 '개'는 '악'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악'은 모호하다. 앞산에 보이는 개를 바라보는 필과 피터의 속마음이 다른 것처럼. 시대마다 '악'이 되는 개가 달라지는 것처럼. 캠피온 감독은 이처럼 모호한 방식으로 연출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인간은 미스터리한 존재이기에
한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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