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붙들고 싶은 마음
8월의 마지막 날. 점심 이후 비는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고 이제는 서늘하게 느껴지는 바람이 불어온다. 언제나 그렇듯 조금 내리고 그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 하원 시간이 다가오도록 비는 그칠 생각이 없다. 아무래도 나가는 길엔 번거롭더라도 아이 우산과 우비 그리고 장화까지 챙겨야 할 것 같다.
집안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즐거우나 빗 속에 있는 것은 썩 달갑지 않다. 더군다나 기온이 이렇게 떨어져 춥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직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니니 이 시간을 즐기도록 해보자. 어차피 비는 그칠 것 같아 보이지 않고 아이와 단단히 무장하여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물로 씻고 따뜻한 우유 한 잔 마시면 그만이다. 오늘은 그럴 수 있는 날이다. 아마 오후 5시 반쯤이면 우리는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있겠지? 이렇게 빗속을 아이와 나란히 걸을 날도 그리 많지 않으니 지금을 즐겨보자 마음먹는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2018년 1월에 이사 왔었다. 훨씬 이전에는 이 동네에서 살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었고 또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난 지금 또다시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가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사는 곳에서의 행복감이 커서 그런 것일까? 이전에는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띄고 헤어지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사람들과 헤어짐 보다 매일 지나가던 길 아이와 함께 누렸던 풍경들이 너무 아름답고 아쉽고 애틋하다.
3년 내내 보이지 않던 배롱나무는 이제 와서 내 마음에 쏙 들어와서 내 기분을 들어다 놨다 쥐고 흔든다. 유독 비가 많이 내렸던 올여름 꽃잎이 다 떨어졌겠지 하고 가서 보면 여전히 소담스러운 백일홍으로 나를 반겨준다. 화창한 날에는 그날 데로 아름답고 흐린 날에는 또 흐린 날 데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매일 보는 배롱나무는 질리기는커녕 곧 헤어질 것이 아쉬워 아이를 유치원에 조금 늦게 데려다주더라도 빠르게 지나가며 인사를 건네고 간다.
"안녕 배롱나무야 여전히 아름답구나!!"
작은방 창가에 앉아 비가 오는 건너편 숲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숲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풍성해 보인다. 3년 넘게 자리 잡아온 동네는 이제야 숲과 나무들이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려니 내 마음이 불안정하다.
내가 사랑한 풍경.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이 풍경 꾹꾹 눌러 담아 내 마음속에 간직해 둬야지. 절대 잊지 말아야지.
(2021.8.31 남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