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럽고 풋풋한 그 맛
남편이 무화과를 사다 주었다. 우리 가족은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다만 독특한 과일은 대부분 나 혼자만 먹는다. 특히 무화과는 호불호가 갈리는 과일인데 다들 입도 대지 않으므로 나만 먹는 과일이 되었다. 일단 아이는 모양만 보고 거부하고 남편도 내가 들이민 무화과 앞에선 입을 막아버린다. 덕분에 남편이 사 온 무화과 한 박스는 온전히 내 차지가 되었다.
[매일매일 채소롭게]를 읽다가 무화과 파트를 보곤 '올여름에는 꼭 무화과를 먹어야지!' 하며 지나가는 말을 했었는데 남편은 그 말을 기억했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 과일 트럭에서 사 온 것이다.
여름의 뜨거운 해가 유리창을 통해 내리쬔다. 빼곡한 식물의 잎 사이사이로 빛이 쪼개지고 흩어진다. 그렇게 잘게 부서진 빛이 가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데, 정말이지 넋을 잃게 만드는 풍경이다. 나무의 초록 잎만으로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구나. 꽃이 아니어도 화려하게 반짝일 수 있구나. 그때 눈에 띈 것이 초록색 무화과였다. 아직 엄지손가락만 한 초록의 무화과 열매가 가지에 성실히 달려 있었다. 자라나는 식물들은 저마다의 에너지로 열심인데, 가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매일매일 채소롭게_단단 지음]
무화과를 받아 곧장 무화과 보관법을 검색해 보았다. 말랑말랑한 과일이기 때문에 잘 무를 것이고 나 말고는 먹는 이가 없으니 싱싱하게 잘 보관하는 팁이 필요했다. 꼭지가 위로 가게 해서 흐르는 물에 잘 씻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깨끗하게 닦아 냈다. 무화과 하나하나를 키친타월로 감싸 밀폐 용기에 나눠 넣고 냉장 보관했다. 먹고 싶을 때마다 한두 개씩 꺼내서 먹어야지 생각하면서...
생무화과는 20대 때 친구들과 부산 여행에 가서 맛보았다. 그해 여름휴가로 친구 네다섯 명과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었는데 시원한 물놀이는 가지 않고 재래시장 투어를 다녔다. 재래시장은 내가 가자고 우겼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꼭 가보고 싶은 시장이라고 했는데 부산의 재래시장은 서울의 시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도 이것저것 시장 음식을 사서 먹으면서 시장투어를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고 거의 나올 즈음 입구에서 바닥에 과일을 깔아 놓고 판매하는 아주머니에게 무화과 한 봉지를 샀다.
생으로 된 무화과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주머니께서 생으로 된 무화과는 정말 맛있으니 꼭 한번 먹어보라고 하셨다. '무화과를 생으로 먹는다고??' 말려서 꼬독꼬독하고 단맛이 진한 무화과 밖에 먹어보지 못한 나로선 꽤 신선했고 살짝 걱정이 되었다. 정말 맛있을까? 친구에게 받은 무화과를 반으로 쪼개 '왕~'하고 깨물었다. '무화과가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었나?' 그때 먹었던 무화과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친구들과 하나씩 나눠 먹은 생무화과는 정말 색다른 맛이었고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첫 경험이었다.
무화과의 맛은 푸릇푸릇한 여름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은 맛이다. 물론 무화과는 말렸을 때 당도가 훨씬 높게 올라가는 과일이지만 생 무화과는 그것 나름의 매력이 있는 과일이다. 요즘은 다양한 요리에 활용해 사용되는 과일이지만 나는 무화과 자체의 맛을 더 즐기는 편이다. 내가 부산여행을 갔었던 20대 때만 해도 무화과는 흔한 과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여름철 대형마트를 방문하면 무화과 박스가 산처럼 쌓여 있다. 무화과를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남편이 사 온 무화과는 당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생 무화과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올해 여름이 가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사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대체로 좋아하는 것들은 여름에 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아삭아삭한 복숭아, 무화과, 수박 그리고 수국과 배롱나무 꽃 등 모두 여름에 보아야 좋고 여름에만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것인지 여름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름에 반짝반짝 빛나는 과일과 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으나...
지치고 힘들었던 여름. 과일 하나로 이렇게 위로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
벌써 처서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여름도 끝나가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여름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