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얻기 위한 브랜드 기획자의 리서치 방법
주변에서 '딥웹 셍지'라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진짜로 딥웹에 접속해서 리서치를 하기 때문은 아니고, 일반적인 경로로는 잘 찾기 힘든 정보를 열심히 찾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리서치 하는 방법'에 대한 공유 요청을 받았고, 리서치를 잘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지만 맘처럼 되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흔히들 기획자의 리서치라고 여겨지는 리서치 방법론의 형태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방식은 비슷할 수 있겠지만 내가 체화한 것은 영감을 얻기 위한, 목적지향성이 적은 서핑식 리서치이니까.
감도 높은 기획을 위한 뾰족한 레퍼런스를 찾기 어려웠던 분들에게 이 글이 피상적이게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당신은 서치를 어떻게 하는가?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필요한 정보를 원하는 만큼 검색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관점으로는 검색에 의존하며 광고를 주입받고 알고리즘에 휘둘리게 되었다.
누구나 서치를 할 수 있지만, 모두가 아는 1차적인 정보 이상을 얻고 싶은 당신에게!
정보에 의존하지 말고 정보를 활용하라. 인터넷은 무궁무진한 영감의 장이다. 단순히 팩트 체크 이상의 정보를 당신 것으로 만들라. 그렇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보를 얻기 위한 서치 말고, 영감을 얻기 위한 발산적 서치를 하고 싶다면, 익히 알려진 것과 다르게 ‘범위를 넓혀’ 서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당신이 얻고자 하는 정보의 ‘키워드’는 빼놓으면 안 된다. 키워드를 확정하기 어렵다면, 키워드를 결정하기 위한 서치를 선행해야 한다.
일례로, 당신이 물고기가 아닌 나무를 넣어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감도 높은 예술 작품 이미지를 서치하고 싶다고 하자. 맨 처음 당신은 ‘fish bowl only plant landscape’ 와 같은 키워드를 검색할 것이다. 그렇게 원하지 않는 이미지만 잔뜩 얻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어리석은 서치를 반복하다 보면 당신이 원하는 정보가 유리에 식물을 넣은 ‘Terrarium’이라는 키워드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진짜 서치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렇게 ‘Terrarium’이라는 키워드를 알게 되었다면 이제 광범위한 서치를 시작한다. 기획을 위한 서치를 할 때는 우선 레퍼런스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 단순한 이미지 레퍼런스가 아닌, ‘Terrarium’과 관련된 전시, 콘테스트, 책 등 큰 단위의 레퍼런스를 찾는 게 먼저다.
내가 자주 입력하는 검색어는 ‘Exhibitiion, Book, Poem, Lyrics, Contest, Festival, Movie’ 등이다. 초기 리서치 단계라면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24개의 굉장한 테라라움 작업’과 같은 1차적 서치 결과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초기 서치 단계에만 한정되어야 한다.
이후에는 ‘Terrarium Design Exhibition in MoMA’, ‘Terrarium Classic Store in London’ 등 구체적인 키워드를 함께 입력해야 한다. 문법적으로 말이 안 돼도 좋고, MoMA에 그런 전시가 없어도 좋다. 이는 뻔한 결과를 줄이려는 일종의 한정어일 뿐이니까.
❌ Dont’ Do That!
이미지 레퍼런스를 우선적으로 찾다 보면 아무 영감도 얻지 못한 채 유사한 무드의 이미지만 주구장창 모은 ‘무드보드’만 갖게 된다. 그건 프로젝트의 후반 ‘Visualizing’ 단계에서 필요한 리서치다.
⭕ Do That!
감도 높은 레퍼런스를 찾으려면 ‘in London’, ‘in MOMA’ 등 대상을 한정하는 키워드를 끼워 넣는 걸 추천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구글링에서 머물 순 없다. 구글링은 1차적인 정보를 얻는 데 쓰는 걸 추천한다. 가령, ‘MoMA에서 열린 Terrarium 전시회를 찾았거나,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Terrarium Contest를 찾았다면 다음 단계(3장 파도타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구글링과 위키 플랫폼 / 사전 중 어떤 서치를 먼저 하든 상관 없다. 당신이 서치하려는 항목에 걸맞는 경로를 택하도록 하자. 나는 보통 단어에서 출발하는 경우 위키 플랫폼과 사전을 먼저 찾는다. 예를 들어, ‘라면’을 주제로 당신이 이벤트를 기획해야 한다고 치자. 그럼 가장 먼저 나무위키 / 위키백과 / 네이버 사전 / 어원 사전을 차례로 훑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역시 ‘키워드’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라면’뿐만 아니라 면, Noodle, Instant Noodle, Ramen 등 연결된 키워드들을 모두 서치하자.
단어가 각 나라 말로 어떻게 번역되는지, 그 번역에 특이점이 있는지, 어원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등 정보를 살피며 인상 깊은 내용은 바로 스크랩 한다.
만약 당신이 네이밍 / 슬로건 / 스토리 빌딩을 위해 서치를 진행한다면 ‘Z로 끝나는 단어, A로 시작하는 4글자 단어, 애너그램’ 등 단어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즐겨찾기에 반드시 추가해 두라.
⭕ Do That!
영단어의 어원은 대부분 라틴어에서 유래하기에, 네이밍을 할 때는 라틴어 사전이 유용하다.
❗ For Example!
일례로, ‘필스’라는 브랜드의 슬로건을 뽑는다고 상정해 보자.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슬로건은 ‘필’과 ‘스’라는 발음을 활용하여 만든 문장일 듯하다. 나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필’은 Feel이라고 두고, ‘스’는.. 스… 스로 시작하는 말이 뭐가 있지?”
이럴 때 S로 시작하는 단어를 검색하는 것이다. 혹은 네이버 사전에서 ‘스’를 치고 ‘스ㄱ, 스ㄴ, 스ㄷ’ 등을 입력해 밑에 뜨는 자동완성 단어들을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필 스페셜, 필스!’ ‘필 스트레인지, 필스!’와 같이 머릿속에 1차적으로 떠오르는 뻔한 슬로건이 아닌, 새로운 단어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 For Example!
당신이 브랜드 네이밍을 하는데, ‘당신의 삶을 채우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브랜드 핵심을 활용하고자 한다고 치자.
이런 상황에서 나의 서치 및 아이데이션 과정은 다음과 같다.
Step 1. 네이버 사전 통합검색에 ‘채우다’ 검색
Step 2. Full / Fill 이라는 키워드 도출
Step 3.어원 사전에 Full 검색
Step 4. Fullaz라는 Fill의 Old English 발견
Step 5. “FullAZ, A부터 Z까지 가득 채우다”라는 네이밍과 카피 도출
네이밍을 하는 경우, 사전을 매우 오랜 시간 붙들고 있겠지만, 당신의 서치는 보통 네이밍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 위키 플랫폼과 사전은 간단하게 훑고 단서를 찾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단계는 구글링(1장)과 파도타기(3장), 영감 플랫폼(4장)을 종횡무진하며 영감을 주는 정보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 Don’t Do That! 위키 플랫폼 서치의 장점은 팩트 뿐만 아니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감을 주는 문장을 수집하되, 팩트 체크는 반드시 해야 한다.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끝없는 파도타기가 중요하다. ‘서치력’이라고 부르는 능력은 보통 이 파도타기를 얼마나 집요하게 하는가에서 결정된다. 파도타기는 어느 플랫폼에서 시작하든, 어느 경로로 가든 관계 없이 꼬리물기를 반복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파도타기를 하는 과정을 잠시 살펴 보자.
Part 1. 롱블랙 아티클 읽기
Part 2. ‘Rubbish Famzine’ 키워드 추출
Part 3. ‘Rubbish Famzine’ 인스타그램 구독
Part 4. 인스타그램이 추천하는 ‘Rubbish Famzine’과 유사한 계정 구독
Part 5. ‘Rubbish Famzine’ 판매 사이트로 이동
Part 6. 판매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다른 매거진 구경
Part 7. 다른 매거진의 저자 인스타그램 구독 > Part 4.로 다시 이어짐
Part 8. 판매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큐레이션 아티클 읽기 > Part 2.로 다시 이어짐
어떤 맥락인지 알겠는가? 이 모든 과정에서 파도타기의 가지가 갈라질 수 있다. 파도타기를 이어가다 보면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항목들을 쉽게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 Don’t Do That!
파도타기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파도에서 내려오는 타이밍’이다. 핀터레스트 피드를 언제까지고 내리며, ‘나는 리서치를 했어’라고 손쉽게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내가 뭘 찾고 있는지도 모른 채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해 자문해 보자. 목적을 잊었다면 최초의 키워드로 돌아오라.
쉽게 말하자면, 3장 파도타기에서 잠깐 등장한 ‘롱블랙’ 같은 플랫폼이 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서치력이 파도타기에서 비롯된다면, 그 서치의 감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당신이 나를 서치왕으로 보고 있다면, 그 이유는 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큐레이션 플랫폼’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살피는 ‘뉴욕 타임즈, BBC News, 중앙일보 기사’ 등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보기 어렵다. 당신이 찾아야 할 건 ‘당신만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다. 인상 깊은 큐레이션 플랫폼이나 웹진을 만났다면 반드시 저장해 두라. 인상적인 포스팅을 만났다면 그 출처에서부터 다시금 파도타기를 이어가라. 그러면 당신이 보유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 Do That!
잊지 마라. 황금알을 많이 갖고 싶다면, 황금알을 찾아 헤매는 게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찾아 헤매야 한다. 또한, 거위를 갖고 있다고 안심하지 말고, 거위 배 밑을 자주 뒤적여 황금알을 꺼내와야 한다.
아무리 흥미롭고 좋은 정보를 보아도 그 정보를 잘 수집 / 분류해 두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정보를 한데 모으라. 컴퓨터 즐겨찾기, 노션 페이지, 인스타그램 팔로잉, 카카오맵 즐겨찾기 등을 모두 한데 모으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각 플랫폼 안에서는 반드시 모아두어야 한다.
플랫폼이나 아티클이 아니더라도 좋은 단어, 키워드, 문장을 만나면 반드시 모아 두라. 출처 표기는 필수다.
이 파트에서는 내가 수집해둔 것들을 소개한다.
사전 / 번역: 말 그대로 사전 / 번역과 관련된 사이트를 모아 두었다.
논문 / 기사: 논문 서치 사이트 / 언론사 사이트를 모아 두었다.
Branding: 나는 브랜딩이 업이라서, 브랜딩 이슈를 알 수 있는 사이트를 따로 모아 두었다.
Design: 디자인 이슈, 비평 플랫폼 /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 레퍼런스 사이트를 모아 두었다.
Shop: 감도 높은 셀렉트 샵 / 재미있는 물건을 파는 온라인 샵 / 럭셔리 브랜드 샵을 모아 두었다.
PortFolio: 채용 사이트 / 포트폴리오 링크 / Recruit 공고 등을 모아 두었다.
Photography: 포토 매거진 / 포토그래퍼 개인 웹사이트 / 포토 북 서점 링크를 모아 두었다.
Research: 그 외 다양한 웹진, 큐레이션 플랫폼, SNS 등을 전부 모아 두었다.
Word: 책 읽다가 / 웹서핑하다 인상 깊었던 단어들을 표로 모아 두었다.
Sentence: 책 읽다가 / 웹서핑하다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표로 모아 두었다.
Book: 단순히 문학적으로 감명받은 책이 아닌, 업무적으로 도움될 책을 모아 두었다.
Text: 인상 깊은 아티클 / 논문을 업로드해 두었다.
Image: 사진작가들의 포토 / 중세 화가들의 그림 / 전시 이미지 등 고전 예술과 관련된 이미지를 모아 두었다.
Website: 인상 깊은 / 재밌는 / 실험적인 웹사이트 레퍼런스를 모아 두었다.
Raindrop: 페이지 / 문장 단위로 글감이나 인상 깊은 사이트를 모아 두었다.
카카오맵: 관심 있는 공간들을 전국8도 폴더 / 공간 유형에 따른 색깔로 분류해 두었다.
수집만큼 중요한 것은 필요할 때마다 쉽게 꺼내볼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자신이 주로 꺼내어 보는 플랫폼을 정하라. 그리고 틈날 때마다 꺼내어 보라.
⭕ Do That! 어떤 키워드에 대한 보편적 사실 말고, 나의 인식이 필요한 리서치라면, 블로그나 메모장에 키워드를 서치해 보라. 무의식적인 당신의 인상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리서치에 있어 배경지식과 관심은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아무리 멋진 서치 능력을 갖고 있어도, 기본적으로 그 분야에 빠삭한 사람보다 더 좋은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기는 어렵다. 전에도 말했듯, 당신이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기획할 때, 분야 전문가라면 자신의 블로그나 팔로우 하고 있는 트위터 계정을 서치하겠지만, 아니라면 구글에 Animation 을 서치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 차이는 명백하다.
내가 작성한 이 글은 리서치 필승법이 아니라 초기 접근법을 전한다. 결국 아무리 서치를 잘 하고, 좋은 사이트를 수집해 두어도, 이슈 체크가 당신의 루틴이 되지 않으면 즉각적인 발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별 거 아니어 보이는 맛집 서치일지라도, 친구를 만나 그 자리에서 급하게 서치하려 하면 알고리즘과 광고에 끌려다닐 뿐이다. 평소에 좋은 공간을 보면 지도에 저장해 두고, 취향이 비슷해 보이는 사람을 팔로우 하고, 친구가 갔다 왔는데 좋았다고 말한 가게명을 물어보라.
리서치의 본질은 ‘알고 싶다는 열망’에 있다. 좋은 방법론을 잘 체화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대상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집요한 호기심이 당신을 서치왕의 길로 이끌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