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랑의 암호를 속삭이는가
삐삐
가끔 ‘삐삐'라는,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린 기기와 ‘사랑’을 연관지어 생각할 때가 있다. 수신만 되고 송신은 되지 않는 단방향 단말기인 삐삐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 사랑의 속성을 닮아 있다.
삐삐에서 ‘사랑해’는 ‘486’이라는 숫자 언어로 표현된다. ‘사랑해'의 획수가 4획, 8획, 6획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생된 노래 ‘비밀번호 486’에서 ‘486’은 “하루에 4번 사랑을 말하고 8번 웃고 6번의 키스를 해줘"라는 요구로 변형된다.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486’이라는 숫자를 보고 사랑을 떠올리기도 한다. 사랑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삐삐 언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사랑의 암호적 측면을 말하기 위함이다. 삐삐는 사랑의 언어를 약속된 암호로 변형해 전송한다.
암호와 해독
사랑의 표현은 본질적으로 암호의 속성을 갖는다. 대다수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랑해'라는 말이건 ‘486’이라는 삐삐 언어이건 추상적 감정인 ‘사랑'에 대한 약속된 표현이다. 조금 더 의미심장하게 말하자면 사랑이라는 감정의 암호화된 표현이다.
암호는 해독을 염두에 둔 채 탄생했기에 해독이라는 개념 없이는 암호를 이해할 수 없다. ‘해독되지 않는 것'이 암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불가사의한 것들은 암호의 성질을 조금씩 갖는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말과 몸짓을 통해 발신되고, 수신된다. 발신 방법은 “사랑해"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뜨거운 눈빛일 수도, 육체적 접촉일 수도, 추운 날 가로등 밑에서 손을 호호 불며 상대를 기다리는 시간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 모든 행동은 사랑이라는 암호의 발신인 것이다.
해독되지 않는 것
하지만 사랑의 암호는 쉬이 해독되지 않는다. 발신자이면서 동시에 수신자인 우리는 상대의 발신을 추측하고, 간혹 가슴 졸이며, 어떨 때는 “이건 반드시 이런 뜻이야!”라며 확신하기도 한다. 대다수의 문제가 그렇듯 사랑의 문제 또한 서로가 다른 사람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상대에게 아무리 공감해도 상대의 마음을 체험할 수 없으며, 서로에게 기댈지언정 하나가 될 수 없다. 다른 감정들도 수수께끼인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특히나 사랑의 표현이 암호와 같이 느껴지는 건, 그토록 가까운 관계임에도 결코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듯하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사랑은 흥미로워진다. 정확한 풀이법이 나온 문제가 더 이상 난제일 수 없듯이 사랑이 해독 가능하다면 그건 그리 숭고한 감정으로 여겨지지 않을 테니까.
해독되었다고 여겨지는 것
사랑은 본질적으로 해독 불가능한 암호이지만, 어떤 정형화된 패턴을 통해 해독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밀란 쿤데라는 이러한 상황을 묘사한다.
첫 이별을 겪은 누군가가 다음 상대를 만난다. 그리고 첫 연애 상대와 두 번째 연애 상대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푸른색 외투를 입고 그녀에게로 달려오는 두 번째 연인을 보며 첫 번째 연인을 떠올린다. … 이러한 우연의 일치에 그녀는 감탄한다.”*
고유하다고 느껴졌던 두 상대의 암호가 하나의 패턴을 가질 때, 기이하게도 초심자의 애정은 고양된다. 영원한 난제인 암호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리라. 그리고 암호는 다음과 같은 때에 ‘해독되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해독되지는 않는다.)
“훨씬 나이가 들어서 그녀는 이러한 유사성에서 개인들간의 유감스러운 획일성 (포옹하기 위해서 모두 다 똑같은 곳에 멈추어 서고, 복장에 대해 똑같은 기호를 갖고 있으며 똑같은 은유로 여자를 꼬신다)과 사건들의 따분한 단조로움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에 지나지 않는)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그녀는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기적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의미를 해독하고 싶어했다.”*
암호가 하나의 정형화된 패턴을 갖고, 따분한 단조로움으로 변모할 때 사람들은 연애가 지겹다고, 남자(여자)들은 다 똑같다고 말한다.
암호는 풀고자 애쓰는 과정에 있을 때 가장 애타게 느껴진다. 사랑의 암호는 해독이 불가능하다. 어느 순간에 암호가 패턴으로 보이고, 흥미를 잃고, 암호 해독을 포기해버리는 것뿐이다. 혹은 풀릴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철옹성 같은 암호에 전의를 상실하고 돌아서 버리든지.
암호화된 “사랑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비해 한 마디 말은 너무 쉽기에 “사랑해"라는 말은 간혹 사랑의 암호성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깊어진 사랑과 함께 언어의 한계를 여실히 느낀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피해 사랑을 표현하는 말과 몸짓의 총화’라고 수식된다. 이 영화의 각본을 공동 집필한 정서경 작가는 “사랑한다는 말 없이, 가장 근원적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다. 말은 너무 쉽고, 사랑은 너무 추상적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꾸만 다른 표현과 행동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사랑은 본질적으로 암호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며, 언어가 갖는 편리함은 암호적인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친구와 그런 얘기를 나눴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을 말하고 싶으면 뭐라고 할 거냐고. 친구는 신발끈을 묶어달라고 말할 거라 했다. 가끔 나 또한 생각해 본다. “사랑해"가 삐삐 언어로 “486”이라면, 나의 언어로는 어떤 표현일지. 나는 쉬운 말 대신 어떤 몸짓으로 사랑을 발신하고 있을지 말이다.
*『향수』, 밀란 쿤데라, 민음사, 2000, 85p
**박찬욱 감독을 만나다…헤어질 결심, ‘사랑’을 피해 사랑을 완성하다, 김혜리, 2022.07.21,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518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