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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겔 Dec 29. 2020

안경을 쓰고, 글을 쓰고

일상과 육아

안경을 쓰고, 글을 쓰고


오랜만에 동생을 만났는데 얼굴이 묘하게 낯설다. 안경 쓴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시력이 나빠져 쓰는 건 아니고 눈 보호용 안경이란다. 모니터나 핸드폰 화면에서 나오는 블루스크린이 눈을 쉽게 피로하게 하는데 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업무상 컴퓨터 다룰 일이 많아 샀다는데 난 그 그럴싸한 기능보다 디자인에 눈이 갔다. 안경이 생각보다 동생에게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뭔가 지적이면서도 어려 보이는 느낌이랄까. 번뜻 동생에게 어울린다면 내게도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을 벗어보라고 하고는 냉큼 써보았다. ‘오! 진짜 어려 보이는 것 같은데?’ 나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 감탄했다. 동생도 옆에서 킥킥대며 그런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안경 사진을 여러 장 찍어둔 뒤 집으로 돌아와 본격 안경을 알아봤다. 다양한 안경 디자인을 비교해보고 블루스크린 차단 기능도 자세히 살폈다. 눈에도 좋고 얼굴(?)에도 좋을 것 같아 큰 고민 없이 결제했다. 


라식수술 이후로 안경과는 13년 만에 재회였다. 하지만 동안을 향한 열정이 무색하게도 안경과는 일주일 만에 이별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 안경을 썼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점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13년간 없던 습관을 만들기엔 일주일은 부족했던 걸까. 어려 보이는 건 잠깐이었지만, 콧잔등을 꾹 누르는 묵직함과 이물감은 오래갔다. 결국, 동안을 포기하고 편안을 찾게 된다. 일주일이 되던 날 안경을 책장에 고이 모셔둔 뒤 오랫동안 찾지 않았다. 


나는 얼마 전 글을 다시 쓰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오랫동안 글쓰기는 나에게 마음을 돌보는 일과 같았다. 머릿속이 번뇌로 뒤덮일 때마다 나는 글을 지었다. 차분히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면서 복잡한 일들을 하나씩 지우곤 했다. 밥을 짓고 뜸을 들이듯 글을 짓고 뜸을 들이면 어느새 내 마음은 평안을 되찾았다. 하지만 엄마가 되자 글 쓸 짬을 내기가 어려웠다. 글을 쓰지 못하니 마음 돌보는 시간이 줄었고, 방치된 마음은 매일 더 피폐해져 갔다. 아이가 돌이 될 때쯤 겨우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숨통이 조금 트이자 나는 다시 글을 쓰던 내 자리로 돌아가기로 싶었다. 내 마음을 돌보고 싶었다.


엄마가 된 후로 1년이나 절필했던 터라 시작 전에 준비운동이 필요할 것 같았다. 실은 준비운동 같은 준비물이 필요했다. 등산 전에 등산복을, 운동 전에 운동복부터 먼저 사는 버릇대로 글쓰기 전에 글 장비를 찾았다. 시작을 알리는 그럴싸한 퍼포먼스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동기부여를 할 만한 새로운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갖은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 성능 좋은 이어폰, 여러 프로그램을 실행시켜도 다운이 되지 않는 최신형 노트북, 글 쓰는 사람인 척을 하기 위한 모자와 만년펜 등. 생각나는 대로 떠올렸지만, 막상 마음에 쏙 드는 건 없었다. 그때 책장에서 까맣고 네모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를 발견했다. 이건 오래전 어려 보이고 싶어 샀던 안경이 아닌가. ‘이런 게 있었던가?’ 하며 일단 한 번 써본다. 거울을 보니 글깨나 잘 쓸 것 같이 생긴 아줌마가 있다. ‘흠. 나쁘지 않네. 좋았어. 너로 하겠다.’


글 쓸 준비를 한다. 책상 한편에 고소한 커피 한 잔을 두고, 노트북 입을 쫙 벌린 뒤 워드 프로그램을 두 번 눌러 실행시킨다. 하얀색 창이 화면을 메우면 상자에서 안경을 꺼내 깨끗하게 닦은 후 경건한 마음으로 착용한다. 나는 이제 글 쓰는 귀여운 아줌마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행위가 착착 진행될 때 오는 안정감이 참 좋다. 나만의 글쓰기 준비운동 시간. 그러고 보면 나는 학창시절 때도 무엇을 하던 준비과정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림 그리기보다 양팔에 토시를 하는 순간이, 달리기보다 신발을 동여매는 순간이 설렜다. 본격 글을 쓸 때는 머리를 쥐어뜯을지 모르겠지만 준비운동을 할 때는 평소보다 조금 더 우아하고 귀여워지고 싶다.


오래전 안경과 이별했던 이유는 다행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안경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조금 불편하더라도 습관이 될 때까지 꾸준히 해보려 한다. 아직은 안경을 쓰고 글을 쓰는 내 모습이 퍽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습관을 들이면 쉽게 안경을 쓰듯 글도 쉬이 써질 것도 같다.


나는 오늘도 안경을 쓰고 글을 쓴다. 조금 귀여워진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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