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육아
작년 가을,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된 것이 얼마나 큰 효도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 손녀와 함께 소녀처럼 밝아지는 엄마를 볼 때면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엄마의 오늘은 어땠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나는 사실 그동안 여러 이유를 들어 아이를 가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딱 하나 걸렸던 게 있었다. 엄마였다. 겉으로 큰 내색은 없으셨지만, 엄마는 매일 저녁 아이들이 나온다는 TV 프로그램을 찾으셨다. 그때마다 엄마는 눈물을 훔쳤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한 번도 말씀하시지 못한 채.
아이를 갖기 전에는 막연히 생각했다. ‘엄마도 남들처럼 손주가 있으면 좋으시겠지.’ ‘주변에 자랑도 하실 수 있겠지.’ 하지만 이제 엄마가 왜 그리 행복하신지 알 것 같다. 나는 엄마께 엄마의 30대를 선물할 수 있었다. 나를 처음 품에 안아 든 그때, 젖을 먹이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그때, 기저귀와 옷가지 삶기를 반복하던 그때, 예쁜 옷을 입혀 사진관으로 향하던 그때, 백일상을 준비하던 그때, 첫눈을 보여주던 그때. 손녀의 탄생으로 엄마의 수많은 ‘그때’가 살아났다. 이는 단순히 추억 여행이 아니었다. 엄마의 긴 세월을 완성하는 경험이 되었을지 모른다.
엄마는 요즘 매일 보던 TV 프로그램 대신 옛날 앨범을 꺼내보신단다. 갓난쟁이 딸을 키우던 그때의 당신을 떠올리시곤 가끔 감정이 벅차오를 때면 딸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곤 수줍게 고백하신다. 손녀가 보고 싶다고, 딸이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행복하다고. 엄마께 진짜 큰 효도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