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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겔 Dec 30. 2020

돈으로 시간을 산다.

일상과 육아

어릴 땐 ‘돈으로 시간을 산다’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시간은 당연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아닌가. 사랑이나 마음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처럼. 나이가 더 들고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하면서 어렴풋하게 이해가 되었다. 잦은 야근으로 몸이 녹초가 될 때면 버스로 1시간 거리인 집까지 서서 갈 수가 없어 종종 택시를 이용했다. 무려 10배 이상의 비용을 치러야 했지만, 체력을 지켜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혹은 이틀이 그러다 일주일 내내 골골거렸기 때문이다. 돈을 더 쓰니 퇴근 시간이 30분으로 단축되고, 앉아서 갈 수 있으니 피로감도 덜했다. 그때 조금 느꼈다. ‘돈으로 시간과 체력 둘 다 살 수 있구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물건만이 아니었다. 정말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도 얻을 수 있었다. 돈이 꽤 대단해 보였다. 돈은 비천하고 속된 것이라 배웠던 것 같은데 현실은 꽤 달랐다.


길지 않은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휴직기를 냈다. 나는 풍족해진 시간 속에서 그동안 잊고 지낸 일상의 여유와 계절 변화를 몸소 만끽했고 매일을 기쁨으로 가꿔갔다. 하지만 1년간의 휴직 생활을 백 퍼센트 만족했냐고 묻는다면, 2% 정도 부족했다고 대답했다. 돈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이 궁해졌다. 시간이 필요해 휴직기를 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으로 돈을 사고 있었다. 나에게 많은 자원은 시간이지 돈이 아니었다. 시간으로 돈을 아껴야 했다. 나는 일단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생활화했다. 버스나 택시는 급할 때가 아니면 거의 타지 않았다. 필요한 물품은 주로 중고거래로 샀다. 시간을 들여 내가 원하는 물품이 나오길 기다리고, 새로운 물건을 사야 할 때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최저가를 검색했다. 시간을 들이니 돈이 모였다. 


그로부터 1년 뒤 나는 엄마가 되었다. 돈은 여전히 부족했지만, 그보다 무서운 속도로 시간이 부족해졌다. 내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신생아 때는 내 시간이 없어도 갓 태어난 생명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사실 시간 개념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이 없기도 했다. 시간이 생기면 잠부터 자기 바빴다. 그러다 아이가 걷고 뛸 수 있는 시기가 되니 근근이 버티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쉬지 않고 에너지를 발산했고, 나는 그때마다 녹다운이 되어 쓰러져나갔다. 체력이 바닥을 보이자 점점 정신력까지 흔들렸다. 정신력으로도 버티기 어려울 만큼 몸과 마음이 무너진 어느 날, 나는 새로운 결정을 해야 했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돌파구였다.


나는 다시 돈으로 시간을 샀다. 육아에서 온전한 내 시간은 그냥 얻을 수 없었다. 당연히 돈이 필요했다. 돈을 들여 시터를 고용하니 하루 3시간의 자유가 생겼다. 돈을 아끼려 동동거렸던 예전을 생각하면 무척 아까운 지출이지만, 남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쟁취해야 했다. 죄책감과 부담감을 물리고 나는 매일 밖으로 뛰쳐나온다. 보통 조용한 카페에 가서 사색에 잠기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나를 위해 혹은 나를 위한 일에 오롯이 집중할 때 비로소 하루의 숨통이 트인다. 그 밑바탕은 돈이었다. 돈으로 오늘의 내 시간을, 오늘의 체력과 정신력을 그리고 자유를 산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엄마가 된 친구를 만났는데 대화 도중 ‘시터’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시터를 쓰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추천한다고 했지만, 친구는 의외로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자기는 혼자 나가서 크게 할 일이 없어 시터를 쓸 필요성을 못 느낀단다. 자격증 공부처럼 당장 주어진 일이 없는데 굳이 아이를 두고 나갈 필요가 있냐는 말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그동안 어렴풋했던 내 생각이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선명해진 것이다. 그래, 나는 원래 내 시간이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었다. 아이를 돌보듯 나를 살피고, 아이를 달래듯 나를 아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 나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방전된 체력과 정신력을 충전하고 엉클어지고 산만해진 마음을 다잡곤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읽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내 시간을 갖는 과정은 헨델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조약돌을 뿌리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집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평안하고 행복한 본래 내 모습이기도 하다.


돈과 시간은 상황에 따라 희소가치가 달라졌다. 돈이 더 필요할 때와 시간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를 원하는 곳에 적절히 쓸 수 있는 용기라 생각한다. 상황에 떠밀려 우리가 가진 자원을 비자발적으로 쓰기보다 얻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하여 씀씀이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족하다고 머뭇거리거나 풍족하다고 소홀히 한다면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돈이 아까워 지금 이 순간 나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 나는 돈으로도 못 고칠 상태가 되었을 수 있다. 돈과 시간을 모두 아껴야 할 상황을 만나더라도 원형의 내 모습에 더 가까운 자원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지 않을까. 엄마가 된 나에게 나를 지킬 수 있는 내 시간이 더없이 가치로운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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