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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겔 Jan 26. 2021

직업으로서의 주부

일상과 육아

주부라는 말은 내게 어색한 단어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 직업란에 매번 ‘회사원’을 적었기 때문에 주부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 마음대로 해석하곤 했다. 그 때문일까. 주부의 정확한 뜻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 기억엔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짝꿍이 어머니 직업을 ‘주부’라고 적어 내는 걸 봤는데 나 혼자 뜨악했던 적이 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주부의 뜻은 튜브(TUBE)의 한국식 아니 방언식 표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떠날 때면 항상 ‘주부 챙겨라’라는 말을 들었고, 주부를 끼고 열심히 물장구를 쳤던 기억이 강렬하다 보니 주부는 당연히 튜브라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왜 직업을 적지 않고 튜브를 적었을까 궁금했는데 물어봤으면 내 학교생활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나는 분명 ‘주부’라는 별명을 갖고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테니 말이다. 아마 수영장도 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던 주부를 제대로 껴본 건 30년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사회생활을 한 뒤로는 직업란에 고민 없이 직업명을 적었다. 그 뒤 결혼을 했지만, 직장은 계속 다녔기 때문에 직업은 여전히 회사원이었다. 회사원 7년 차가 되는 해에 휴직기를 내어 잠시 일을 쉬었지만, 직업은 회사원이었다. 이듬해엔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고, 다음 해에는 엄마가 되었다. 지금 내게 직업란을 채워야 할 상황이 온다면 무엇을 적어야 할까. 머뭇거렸다. 회사원일까, 작가일까, 엄마일까.


주부라고 적기로 했다. 주부의 사전적 뜻이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 가는 안주인’이라는데 일단 저 안‘주인’이라는 말이 좋았다. 주인이 되어볼까 한다. 주인이니 주인의식을 가지고 나의 소임들을 하나씩 소화하고 싶다. 작은 역할 하나에 끙끙대기보다 더 높은 곳에서 넓은 시야로 전체의 조화를 이루고 싶다. 회사의 사장도 가장 높은 지위에서 가장 넓고 깊게 회사 전반을 아우르지 않는가. 사장은 사원이나 과장 그리고 부장의 일까지 훤히 꿰고 있으면서도 회사 전체가 나아갈 방향을 잡아야 한다. 내적으로는 구성원들의 역할에 때마다 기름칠하고, 외적으로는 험난한 길을 꾸준히 깎아낸다. 사장은 회사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부 이야기를 쓴다. 일반적인 주부의 범주와 조금 벗어난 안주인 이야기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고, 글을 쓰고, 돈을 버는 일상을 잘 버무려 안주인 표 한 상을 멋지게 차려보려고 한다. 짝꿍 어머니의 직업이었고, 튜브라고 알고 있던 주부. 회사원이면서 작가면서 엄마지만 이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인 주부. 앞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도록 불릴 직업 이야기. 주부의 일상을 사랑하는, 주인의식 투철한 안주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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