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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아루츠키 Feb 14. 2023

마음의 관계 우다오잉후통五道营胡同

[回梦到北京] 좋아해요 그날의 우리를.

每个人都有属于自己的森林, 也许我们从来不曾去过, 但它一直在那里, 总会在那里, 迷失的人迷失了, 相逢的人会再相逢。


Everyone has his own forest. Maybe we have never been there, but it is always there. The lost people are lost, and the people we meet will meet again.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숲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지만, 그것은 항상 그곳에 있다. 잃어버린 사람들은 길을 잃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다시 만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






용허궁 앞에 있는 우다오잉후통五道营胡同은 내가 가장 많이 놀러 갔던 후통이다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이 적절하게 섞여있고,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스냅샷을 찍을 정도로 유니크한 후통으로 인기가 좋은 곳 중에 하나이다.  작은 카페와 샵들이 가득하고, 배낭여행객이 많이 찾는 유스호스텔이 많으며, 2층에서 자유롭게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펍이 있는 곳으로 바로 옆 국자감과 함께 후통 전체가 유적 지면서 힙한 골목길이다.




처음 우다오잉후통에 가게 된 건 왕징 새댁모임에서였다. 새댁모임이라니!! 것도 베이징 한인타운에서 ㅋ 웃음이 나올 만큼 신기한 모임이었지만 그만큼 우리는 절실했달까 내 사람 찾기가 그렇게나 힘든 베이징이었다. 베이징에 들어갔던 16년 당시에도 참 정보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있는 엄마라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오가는 엄마들과 친구가 되곤 했지만 남편과 둘이서 나온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접점도 없었기에 매일이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일상이었다. 


08년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에 외국 기업들이 많이 들어왔고 중국에서 한국 프로그램 수입이 많아 예능피디들과 중국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건너갔고,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나쁘지 않았을 때여서 한국가족들이 중국에서 터를 잡기 위해 넘어가던 때였다. 보통 주재원이나 해외생활을 하시는 분들 보면 가족단위로 이동해 오시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가 어린 가족이거나 대입을 앞둔 중고생들 가족들이 많았다. 나이가 비슷하면 아이가 어렸고(아이 유치원 하원 시간 전에 헤어져야 한다) 나이가 좀 있는 어른들과 수다 떨기엔 좀 부담스러웠달까 (아이들 학원&남편 직장 등등의 이유로 깊은 대화를 할 수 없다) 중국어는 안되고, 왕징은 주거 타운이라 별거 없고, 어디 가자니 모르는 곳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두려움이 컸다. 


인생은 보이지 않는 순간에 있다


만약 그때 여행자의 마음으로 다가갔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은데,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처음 가는 곳이었고 남편을 따라간 중국이라 낯선 곳에서 아무것도 몰랐으니 조금 두려움이 더했던 것 같다. 게다가 남편의 회사 가족들이 주변에 살고 있어서 어색한 눈치도 보았다. 이후 4년간의 이곳 생활을 예상하니 더욱 불안했다. 중국어 학원에서 1:1로 배우기도 했지만 언어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친구도 없고 골프도 못치는 상황에서 사람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어느 분이 네이버 카페에 번개글을 올리셨고, 많은 분들이 참여를 원했다. 아이가 없거나, 소속이 불분명한 나이대의 사람들끼리 함께 밤에는 술 한 잔, 낮에는 커피 한잔 마시면서 친구가 필요한 상황이었건 것이다. 이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고, 용기를 내서 번개글을 올린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처음엔 15명이었지만, 이후 6명 정도가 친한 사이가 되어 서로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모임이 되었다. 이 모임의 이름은 '놀부'가 되었는데, 놀고 있는 부인이라는 뜻이다. 

(중국은 취업비자 없이 일할경우 곧바로 추방되기 때문에 남편의 일과 연관될 수 있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되었다. 그중 일하는 친구가 우리는 정말 너무 부러웠다. 해외에서 일할 수 있다는 능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기에) 


그렇게 내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베이징에 정을 붙일 수 있었다.





五道营胡同 우다오잉후통


add. 北京市东城区五道营胡同1号 (KFC에서 시작되는 우다오잉후통)

business hours. 24 hours.

charge 入场费. Free 免费 무료



처음 우다오잉을 갔을 땐 추운 겨울이었다. 진눈깨비가 날리고 너무 추운 날이었는데도 우리는 뭐가 그렇게 신났던 건지 추위도 모르고 맛집이며, 커피숍에서 수다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뉴타운과 다르게 올드타운의 정취, 이국적인 올드 베이징의 가옥, 좁고 기다랗게 연결된 후통에서 로컬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후통은 우리에게 색다르게 다가왔다. 걷기만 해도 즐겁고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좋은 기억을 가진 우다오잉 후통은 나의 베이징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고 매일 가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비록 같은 문화권이지만 중국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외국인들의 시선으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낯선 베이징이 익숙해지자 라오베이징의 후통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 나만의 애정스팟을 발견할 정도로 베이징의 속에서 나만의 놀이터를 찾아나서게 되었다


새로운 가게가 궁금하면 들어가 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먼저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하여 더듬더듬하며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이라면 그냥 따라서 서서 시도해보았다. 음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옆 사람이 먹는 것이 맛있어 보이면 문법이 틀려도 중국어로 주문했다. 입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에 그리워하는 어린 아이처럼, 베이징과 중국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쁨을 느꼈다.




고전적인 라오베이징이 사는 현실과 외국인이 상상하는 옛 스타일의 꿈이 만나는 곳이 우다오잉후통이었다.  맛집과 술집, 커피숍, 다구판매점, 중국 전통복장인 치파오를 파는 곳, 악세러리 판매점, 빠짐없이 골고루 즐길 수 있는 곳이었던 우다오잉 후통은 베이징이 낯선 외국인에게 적당한 상업화가 되었으면서 불편하지 않게 놀 수 있는 후통으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곳이었다. 집 밖을 나가 언제든 나만의 놀이터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기대에 차있었다. 어제까지 이방인으로, 낯선 사람으로 지내던 내가 조금씩 베이징에 융화되고 있었다. 그 안도감, 안정감은 내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말을 할 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용기, 베이징에서 더이상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즐거움, 친절한 우다오잉의 상점주인들과 짧게라도 대화했다는 성취감, 낯선 곳이 아니라 궁금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되어 삶에 신선한 생동력을 안겨주었다. 


우다오잉후통과 옆골목 국자감 골목을 다니며 밥을 먹고, 물건을 사고, 차를 마시고, 구경을 하며 나는 조금씩 베이징에 익숙해져 갔고 말이 늘어갔으며 타국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다. 말이 안돼서 움츠러들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한마디라도 건네며 어제 배운 중국어를 내뱉고, 모르는 길도 우선 들어가고 보았다. 





蘭·泰餐(安定门店) 란 . 태국음식점


add. 五道营胡同78号-1

business hours. 11:30-14:30, 17:00-21:30



수아언니랑  추운겨울날 지나가다 가계가 이뻐서 들어갔었는데 알고보니 매일 웨이팅하는 베이징런들에게도 사랑받는 곳이었다. 베이징에서 멕시코, 태국음식은 정말 믿고 먹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오다우잉후통 초입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인 완(菀)집과 함께 나의 우다오잉 애정맛집으로 우다오잉후통 골목 끝에 있다





사람들은 중국에서 돌아다니는 게 무섭지 않냐고 했다. 물론 부주의할 경우나 운이 안 좋을 경우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지만 내가 아는 베이징은 안전한 도시였다. 상점 주인들은 외국인이 라고 하면 도와주려고 했고, 모르는 지역에선 길에 있는 공안을 찾아가 길을 물어보았다. 중국어를 어느 정도 하게 되었을 땐 길을 알려주던 중국 아저씨가 너 중국인 아니네?라고 놀랐던 적도 있었다. 


우다오잉후통은 나에게 중국에서 마음을 열어준 곳 중 하나였고, 관계를 맺는 법을 알려준 곳이었고, 중국을 좋아하게 만들어준 놀이터였다. 오래된 고목은 푸른 잎사귀를 날리며 그늘을 만들어 주며 언제 가도 즐겁게 나를 반겨주고 새로운 곳을 알려주고 맘 편히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낭만이 살아있었다.



처음부터 색안경을 끼고 흡수되지 않으려 많은 걸 거부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뉴스로 보는 중국이 전부가 아니었던 이유다. 베이징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후 우리는 중국을 열심히 여행하기 시작했다. 상하이, 칭다오, 서안, 뤄양, 샤먼, 창사, 운남, 항저우, 샤오싱 등등 나 혼자 여행했던 적도 있고, 여자친구랑 둘이 여행했던 적도 있고, 남편이랑 여행했던 적도 있다. 혼자 갔을 때도, 여자친구랑 둘이서 여행할 때도 지방을 다닐 때 꽤 안전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중국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색안경을 끼게 만드는 뉴스를 잘 골라봐야겠다는 생각이 한국에서 자주 들었다. 


결국 모든 건 스스로 이겨내야 하고, 모든 경험이 같을 수 없지만 경험하지 않고 얘기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스스로 용기를 내어 이겨냈을 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베이징에 마음을 나눠주기 전의 나는 편협하고 소문에 집착한 못난이였으나 마음의 관계를 맺고 나서부터 좀 더 깊게 보는 눈을, 다양함을 받아들이는 귀를, 손을 내밀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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