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왜 항상 바쁘다 말하고, 왜 늘 정신이 없을까
24시간이 부족하면, 24시간이 충분한 정도로만 계획해야지
오늘 샤워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고, 막상 해놓은 것도 없는데 정신이 없는 기분인 걸까.
내가 느려서인가? 잠이 많아서인가? 시간 관리를 잘 못하나?
1. 나는 느린가? YES
나는 말도, 행동도, 생각도 조금 느린 편이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앞두었을 때는 스스로 계속 질문하다가 마음에 확신이 섰을 때, 그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요즘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참 힘든 성격일지도 모르지만 장점은, 후회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만큼 오래 질문하고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차곡차곡 쌓인 다음이기 때문이다.
2. 잠이 많은가? NO
사람마다 필요한 수면시간에 차이가 있지만, 권장 수면시간이 8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그냥 평균적인 수준이다.
나는 늦게 출근하는 편이다. 비교적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 관대한 상사 덕분에 보통 10시에서 11시 사이에 회사에 도착한다.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한 시간 조금 되지 않는다. 아침에 회의가 있으면 8시에서 8시 반쯤 일어나 9시에는 출발할 수 있도록 하고, 회의가 없으면 9시 10분에서 9시 반 사이에 일어나 10시쯤 출발, 재택이고 그 전날 늦게 잠든 날은 9시 50분까지 침대에 있다가 업무를 시작하기도 한다. 잠이 드는 시간도 제각각이지만 보통 1시에서 2시 사이인 것을 감안하면, 절대적인 수면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초저녁부터 소파에 누워 잠드는 안 좋은 버릇을 몇 개월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많이 좋아졌다.)
3. 그럼 시간 관리에 문제가 있나? MAYBE...?
사실은 이 질문에 대한 답 때문에 글이 시작되었다. 내가 너무 성향에 맞지 않게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맡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외적으로는 매달 한 잡지의 일부분을 번역해주는 일을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틈틈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검토서 작업도 맡고 있다. 검토서 작업이 잘 풀리면 일 년에 한두권 책을 번역한다. 예전에는 이마저도 하지 않는 날이면 스스로 일감을 더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회사에서도 어느 한 부서에 속한 입장이 아니고 전 부서와 연결되어 일하는 자리라 모든 부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잘한 문의에 답을 주거나 특정 부서에 속하지 않은 애매한 일을 맡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편이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덕분에 집안일의 많은 부분을 맡아 주지만, 여전히 신경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남편은 배달이든 요리든 식사를 챙기고, 바닥과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고, 재활용을 버리고, 떨어진 생필품을 챙기거나 고장 난 것들을 고친다. 나는 설거지와 음쓰 처리, 식물 케어, 가끔 빨아야 하는 패브릭의 빨래를 담당. 주기적인 빨래는 그때그때 시간 나는 사람이 맡는다.)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것 같은데, 심지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해내며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데 내가 복에 겨워 감사한 줄 모르고 투덜거리나 싶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꽉꽉 채워서 쉬는 시간에조차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버거운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온함과 일상의 소소함을 즐기고, 마음과 머리를 비워야 에너지가 샘솟는 사람인데 ‘비는 시간’ 없이 이렇게 채워놨으니 지칠 만도. 게다가 쉬는 시간에는 온전히 쉬는 게 아닌, 끊임없이 영상을 틀어 새로운 정보를 보고 접했으니 얼마나 머릿속이 시끌시끌할 거야. (꼭 시사정보나 지식이 아니더라도, 예능을 보더라도 끊임없이 소리가 들리고 자막을 읽어야 하는 상황은 뇌의 입장에서 새로운 정보의 입력이라고 볼 수 있다. 오은영 박사를 비롯, 정신과 의사들이 사람들에게 멍 때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한 건 이 때문.)
결국은 시간관리 능력 그 자체보다도, 내가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자 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일을 조금 덜어내고, 결정해야 할 일들을 줄이고, 단순화할 수 있는 것들은 단순화해야 내가 요즘 들어 일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대상 (나 자신을 돌보고 자신과 가까워지는 시간, 가족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을 테니까.
(202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