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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샤나 Mar 31. 2020

뵈프 부르기뇽 대신 콩나물국

한 달 동안 요리를 해보았다

2월이 지나가던 어느 날, 수납장에 잠들어 있던 프라이팬을 꺼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세가 빨라 외식은 꺼려졌고 배달음식은 당기지 않았다. 5평이 조금 넘는 우리집은 주방이 턱없이 좁다. 인덕션은 화력이 약해 강불이 약불 같다. 그런 악조건을 핑계로 거의 하지 않던 요리를 해보기로 했다.


요리의 다른 말은 '예측불허'

"요리는 예측 가능해서 좋아."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서 크림과 양송이를 볶던 줄리가 말했다. 한 달간 요리하면서 이 말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체 요리가 어떻게 예측 가능하단 말인가? 내게 요리란 예측불허였다. 요리는 레시피의 한 단계만 소홀히 해도 처참한 실패를 안겨줄 수 있었다(뚜껑을 열었을 때 회색빛을 띄고 나를 기다리던 크림 닭요리가 아른거린다). 하지만 요리가 실패작만 남긴 건 아니었다. 투덜대며 요리를 시작했던 줄리가 성장했듯, 나도 조금은 바뀌었다.


줄리는 1년 동안 요리 524개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처음에는 블로그에 비장하게 숫자 524를 타이핑하는 그녀를 보며, 그리 거창한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요리를 좋아한다면 못 이룰 목표는 아닌 것 같았다. 직접 요리를 해보니 그녀의 365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갔다. 게다가 줄리는 줄리아 차일드라는 완벽한 모델조차도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요리를 단기간에 성공해야 했다. 뚝딱 만드는 간편한 요리가 아니라, 생닭을 실로 묶는 기술을 요구하는 등 고난이도의 요리들이었다.


같은 재료를 투입하더라도 요리하는 인간이라는 '알고리즘'이 미숙하면 실패작이 산출돼 버린다. 나는 실수를 반복했다. 줄리가 너끈히 차려냈던 크림 닭요리의 경우, 내가 도전했을 때 레드와인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색깔이 이상해졌다. 김치 떡국은 백종원이 알려준 대로 멸치를 볶았는데, 너무 강불에 볶아 멸치가 탔다. 멸치가 1분도 안 되는 찰나에 타버릴 수 있다는 걸 이때 알았다. 떡국 맛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한나절 동안 멸치 냄새가 방에서 빠지지 않았다. 물 한 방울 넣지 않아도 국물이 흥건하다는 드라이 카레에도 도전했으나, 양파를 너무 적게 넣었는지 정말 드라이한 카레가 됐다(사실 어쩔 수 없이 물을 넣었는데도 수습할 수 없었다). 


멸치 탄내 때문에 맛이 느껴지지 않았던 김치 떡국

기분 좋은 실패

헤아려 보니 성공한 요리는 몇 안 되었다. 사실 그마저도 레시피가 간단해 자랑하기도 민망했다. 콩나물국, 김치찌개와 중국식 볶음밥, 참치전, 스콘 등을 집에서 만들었다. 조금만 레시피가 복잡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졌다. 그런데 실패작을 바라보며 기분이 그닥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실수를 또 하지 않는다면, 여러 번 반복해서 차린다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줄리도 마찬가지다. 손님에게 대접하려던 뵈프 부르기뇽(프랑스식 소고기 찜요리)은 타버렸고, 수란은 몇 번이고 실패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다시 도전해 맛있는 뵈프 부르기뇽과 완벽한 수란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블로그가 유명해진 이유도 요리의 시행착오를 솔직담백하게 적었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 괜찮은 한 접시를 만들 기회는 언제든 온다는 것이 요리의 매력이었다.


또 다른 재미도 있다. 재료가 물, 불 등과 만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흥미롭다. 크림 파스타를 할 땐, 좀처럼 다른 재료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생크림이 점점 노릇한 색깔을 띄는 게 신기했다. 열을 가하자 바지락 껍데기가 벌어지는 것도 놀라웠다. 요리의 특권은 이런 과정들을 하나하나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요리는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간 끼니를 거의 밖에서 해결했다. 강한 조미료 맛에 질려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다. 집밥이 정말 그리웠다. 당연히 영양 섭취도 불균형해졌고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조미료와 소금을 적당히 넣어 차린 음식을 먹었을 때 행복했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정말 먹고 싶어서 먹는 음식일 때 느껴지는 행복감이었다. 나를 위한 한 상 차리기가 주는 만족감은 생각보다 컸다.


평범하게 느껴졌던 것에서 대단함을 발견하기도 했다. 며칠 전 고향에서 온가족이 모여 칼국수를 먹었다. 내게는 1인분도 어려운데 4인분도 뚝딱 차려내는 엄마의 뒷모습이 위대해 보였다. 그동안 맛있다고는 해도, 4인분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차리냐는 칭찬은 해본 적이 없었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식탁에 있는 반찬 접시, 돈을 내면 내 앞에 차려지는 한 그릇에 무감했으나, 요리를 하는 동안 그게 대단하고 감사했다.


다만 부작용이 있다. 커트러리나 식자재 욕심이 생겨 예상 외의 지출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줄리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사고 후회한 것처럼, 나도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재료들을 집에 들여놓고 있다. 오늘 도착 예정인 치즈 그라인더로 좀 더 근사한 파스타를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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