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잡기

보테니컬 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

by 쇼샤나

또 실패였다. 눈동자부터 그려나가기 시작한 얼굴은 코와 입, 얼굴형을 잡자 무너졌다. 펜을 잡고 있다가 무심코 그려봤던 그림들은 시작할 때의 의도와는 달리 처참하게 끝났다. 심심풀이로 그려본 그림이 망할 때마다 나는 '이건 취미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2월부터 보테니컬 아트를 배우고 있다. 보테니컬 아트는 식물을 연구하며 그 내용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예술 영역이다. 마치 식물도감을 보는 것처럼 식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살려낸다. 뒤집힌 꽃송이와 잎사귀의 결, 빛의 방향에 따라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빼놓지 않고 표현해야 한다. 섬세한 묘사력이 중요하다.

수업을 들은 지 한 달 지났을 때 산더소니아의 구도를 잡았다.


그런데 묘사력보다 더 그림의 성공에 기여하는 결정적 요소는 바로 구도다. 그림을 그리기 전 외곽선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본다. 사각형 안에 네 개의 선을 긋는다. 수평선, 수직선, 대각선 두 개. 그리고 내가 그릴 그림이 선의 어디쯤을 지나는지 살펴본다. 선과 그림이 만나는 부분에 점을 찍는다. 이렇게 구도를 잡지 않고 그리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엉뚱한 곳에 꽃송이가 그려지거나 전체적인 비례가 맞지 않게 된다. 나는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성과가 바로 이 '구도 잡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구도 잡기는 성급함을 달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마음 속에 떠오른 나무들을 모두 지우고 숲을 보는 것이다. 그동안 취미로 그렸던 그림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구도가 없어서였다. 묘사부터 하고 싶은 마음에 그림의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부분부터 서둘러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 취미라는 위안을 수백 번 하고도 그림이 늘지 않았던 거다. 사실 취미라기도 뭣하고 낙서에 가까웠다. 구도를 배우고 나서부터 그림이 취미라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집에 걸고 싶은 내 그림이 생긴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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