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니컬 아트를 배우며 알게 된 것
주변 사람들은 내 성격이 '차분하다'고 입모아 말한다. 어려서부터 친구들은 내 말이 너무 느리다고 놀려댔다. 지금은 많이 고쳤지만 여전히 친구들 중 나는 말이 느린 축에 속한다. 차분하고 느린 성격, 그림을 그릴 때도 그 성격대로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림을 배우며 느낀 것은 나는 꽤 성미가 급하며, 즉흥적이라는 것이었다. 급한 마음에 따라 움직인 손은 어김없이 그림을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그려지게 했다. 그림은 내 뜻밖의 성격을 알게 했다. 이럴 수가. 나는 틀린 그림 찾기뿐만 아니라 틀린 그림 그리기에도 일가견이 있었구나.
보테니컬 아트 첫 시간에는 미술 교과서에서 많이 본 공 그리기를 한다. 한쪽에서 빛이 비쳐서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을 잘 살려내야 했다. 학창 시절 미술시간에도 비슷한 그림을 그렸다가 장렬하게 망한 기억이 있었다.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없을수록 꼼꼼히 그렸어야 했는데 오히려 내멋대로 선을 내질렀다. 보다 못한 선생님은 급작스럽게 어두워지는 부분 때문에 명암이 부자연스럽다며, 지우개로 수정해 주셨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미술을 전공했거나 그림꽤나 그리던 분들이었다. 내 그림이 제일 못생겼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전에 포스팅한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이렇게 급한 성격은 구도를 잡으면서 많이 잠재웠다. 하지만 그뒤로 나는 그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때도 한 번쯤 자문해보게 됐다. 내 성미가 많이 급한 편인가? 나는 무계획적인 사람인가? 느린 노트북 때문에 짜증이 나 마우스를 딸깍거릴 때도, 주문한 음료가 빨리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다리를 떨 때도 생각했다. 확실한 건 무계획적인 사람은 맞다. 이 글 역시 개요도 짜지 않고 써내려가고 있으니. 논술을 쓸 때 가장 어렵고도 지켜지지 않는 것은 개요짜기였다. 매일 일정 역시 즉흥적으로 결정하곤 한다.
못생긴 공을 그리고 나서는 그림이 나랑 안 맞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림은 나를 설명하는 새로운 척도가 되었다. 그동안 취업준비생으로서 나를 평가하는 기준은 정해져 있었다. 상식을 얼마나 잘 맞추는지, 논술을 얼마나 논리정연하게 쓰는지 등등. 언시생으로서의 나를 판단하는 척도들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를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추가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 급한 사람'이라는 것. 비록 고쳐야 하는 점이지만 이건 제법 마음에 든다. 글에 관련된 수식어로만 나를 규정해왔던 지난 날들과는 확연히 다른 일상을, 매주 화요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