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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ug 17. 2019

프랑스에서의 평등과 자유 관찰기

외국인이 바라보는 프랑스 내 종교의 자유에 대한 단상

나는 무교다.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와 불교 신자인 아버지 사이에 종교로 인한 갈등은 전혀 없었다. 어렸을 적엔 엄마를 따라 성당에 가서 베일을 쓰고 앉아있기도 했고, 석가탄신일엔 절에 가서 소원을 빌고 절밥을 먹었다. 지금도 고모가 사다준 염주를 팔찌마냥 매일 차고, 유럽 곳곳의 성당 건축물을 구경다닌다.


역사적으로 가톨릭이 뿌리깊게 박힌 프랑스는 1905년 정교분리원칙에 대한 법을 채택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 국가와 종교는 분리되어 있고 모두가 평등하게 신앙의 자유를 누린다. 단 종교의 자유를 평등하게 누리기 위한 일련의 조건들이 있다.


https://www.lemonde.fr/religions/video/2017/03/16/comprendre-la-laicite-en-france-en-trois-minutes_5095583_1653130.html


프랑스의 정교분리 법에 대한 간략한 소개영상인데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 개인은 '공공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종교활동을 실천할 자유가 있다.

- 사기업은 직원의 종교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주되 기도 시간을 위해 근무지를 이탈하는 행동을 금지할 수 있다.

- 국가는 종교건축물에 재정을 조달하지 않는다.

- 초/중/고등학교까지는 학교에 갈 때 종교적 표식(십자가, 베일, 키파 등)을 '눈에 띄게' 들고 다닐 수 없다.


이러한 제약과 허용이 현실에서 반영되는 것을 보면 흥미롭다.

프랑스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 혹은 눈만 보이게 하는 니캅과 같은 이슬람의 베일을 착용할 수 없다. 2011년 프랑스가 이러한 결정을 한 이후로 유럽 내 몇몇 국가들이 - 덴마크, 네덜란드 등 - 같은 결정을 내려 시행하고 있기도 하지만, UN인권위원회는 니캅 착용을 금지하는 프랑스의 법이 종교적 신념을 표현할 권리를 해치고 이슬람 여성을 도리어 집에 가두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대성당. 12세기 시칠리아를 지배한 노르만 왕조가 이슬람사원 위에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독특하고 아름답다.


물론 이러한 규제들의 시발점은 '안전'일 것이다.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예방책. 그러면 얼굴을 보는 것으로 그 사람이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나? 얼굴은, 눈빛과 시선과 작은 표정들은 많은 것을 전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판단을 할 순 없다. 그러니까 어떤 공공시설에는 소지해서는 안 되는 물품들이 있고, 대부분의 시설들에서 짐 검사를 한다.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공개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종교의 자유에 제약을 가할지언정 시민의 안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원칙일까?


두 개의 종탑은 건재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지난 4월 노트르담대성당의 화재 이후 엠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은 국가 소유로 되어 있는 노트르담대성당의 5년 내 복원을 약속하고, 복원 기금 조성에 대한 특별법을 마련했다.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은 여느 성당 한 채가 아니라 국가자산이다. 프랑스 공화정의 역사와 빅토르 위고의 문화를 품은, 세계에서 매년 엄청난 수의 방문객이 찾는 문화자산이자 관광명소다. 종교와 국가가 분리된 오늘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가톨릭은 프랑스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준다.


예컨대 프랑스에는 종교에 관련된 많은 공휴일이 있다. 성경의 내용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 날이 어떤 날인지 대략 설명을 듣거나 검색을 해보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내용을 까먹어버리고 말았다. 어쨌거나 쉬면 좋으니까. 그런데 위의 영상을 보고 프랑스어 공부를 하다, 이방인으로서 문득 상상해보았다.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한 무슬림이 자신의 종교와 관련없는 휴일을 누리면서 정작 회사에서 본인의 기도 시간을 얻지 못하는 상황을. 종교 관련 공휴일 중 이슬람교와 관련된 날은 물론 없다.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 이슬람교도 비율이 높은 나라다. 프랑스에서 이슬람교는 천주교에 이어 두 번째로 신자가 많다.  (이미지 출처: mediapart)


종교가 곧 역사였던 유럽이기에 더욱 복잡한 문제일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엔 테러, 증가하는 이민자와 난민 문제가 모두 얽혀 있다. 그래도 특정 종교를 우호하고 특정 종교에는 일단 경계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태는 아닐 거라고,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나라 프랑스에서 정답 없는 생각을 펼쳐본다.


6월, 벨기에 브뤼셀에 갔다가 우연히 축제의 장을 목격하고 함께 즐겼다. 어느 작은 성당 앞 광장이 이렇게 교류와 화합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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