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일기
잘할수록 좋은 때가 있었다.
내가 거머쥘 수 있는 것이 나에게서 나올 때. 그러니까 내가 좀 더 명석하게 머리를 쓰면 내게 좋은 점수가 주어지고 그것이 ‘좀 더 좋은’ 집단에 속할 자격이 될 때. 다른 경제적 자본도 인적 자본도 없으니 교육이라는 제도로, 그리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문화 자본을 차곡차곡 쌓으며 10대를 보냈다. 그래서 시각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났고 대학교 이름을 얻었고 양질의 교육을 또 받을 수 있었다.
좋아해서 잘하는지, 잘해서 좋아하는지를 구분하는 건 가끔 어려웠다. 좋아해서 잘하게 되고 잘하면 더 좋아하게 되고, 이런 선순환이 제일 바람직한데, 돌이켜보면 대체로 좋아해서 열정적으로 달려들면(이 무슨 자소서 문구란 말이냐) 좀 잘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못할 것 같은 걸 좋아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쓰고 보니 이게 맞는 거 같다.)
어쨌든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얼추 맞추어 살아오면서, 어디서든 어느 정도 잘 하고 인정받고 살아온 것이 - 덧붙여서 그럼에도 너무 노력하진 않는 것, 참 잘 조화하면서도 어디서든 약간 아웃사이더의 기질을 남겨두는 것 - 내게 배어버렸다. 내가 의도하건 아니건 이러한 아비투스가 나를 늘 그 방향으로 밀어낸다.
잘하지 않아도 되는 때에도.
유학을 오기는 왔지만 목표가 학문적 성취에 있는 것은 (솔직히) 아니었다.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길이기는 하다. 내가 행하는 것들이 내 안에 오롯이 쌓이고 나를 키워주는 일. 그런 종류의 일로 생각된 것 중 하나가 공부였다. 그럼에도 나에게, 나와 남편에게 프랑스로의 유학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기에 이 시간을 충분히 누리는 것 자체도 중요했다. 정신적으로 불필요한 부담에서 홀연히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이 시기를.
그런데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잘하고 싶어진다. 문제는 내가 기존에 들이던 노력 정도로는 그 정도의 “잘함”을 얻을 수 없다는 데 있다. 학문의 깊이와 분야도 이전과 달라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으로 내 역량이 강등된다. 내가 원하는 수준만큼 해내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더더욱 많이 소비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 거기에 익숙지 않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으려니 허리가 약해지는 것 같고, (그렇게 오래 앉아있지도 않았는데 이건 다른 문제인가) 학문에 계속 뜻을 둔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노력할 일인가 의문이 든다. (사람일 또 모르지 2년 후에 어떤 바람이 생길지 모르잖아) 그렇지만 왜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있는지, 왜 수업시간에 입도 잘 떼는 동양인으로 활약(?)해서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그런 고정관념 있기는 하는지?)을 깨뜨리고 싶은지, 왜 지도교수에게 인정받는 학생이고 싶은지. 나는 왜 이런 나를 원하는가 피곤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내 삶의 구조여...
그냥 적당히만 해도 되는데, 왜 잘하고 싶을까? 적당히만 할까 했는데 그래도 잘하고 싶어. 그럼 일단 잘할 수 있는지 해보지 뭐.
그래서 최대한 읽어보자고 다짐한다. 아직 학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하나도 안 지쳤고 그렇다고 요령도 붙지 않은 때라 의지만 오른다. 이번엔 정말 자기만족 이외에 특별히 내게 돌아오는 게 없을 것 같은데, 에휴 내가 좋은 게 제일 좋은 거니까. 아니면 고생하고 정신을 차리든가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