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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 일 인분 Dec 08. 2016

그래 뭐, 일기니까

66페이지를 넘어가기 전.

춥다. 방금 전 집으로 가는 버스는 내가 분명 눈빛으로 '여기 타는 사람있어요!' 외쳤지만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헐 10분후에야 다음 차가 온다.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임소라 작가의 <29쇄>를 66페이지까지 읽었고 지금 작가는 책 속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앤딩 크레딧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29쇄>는 지난 달 소소시장에서 산 책인데 이제야 읽는다. 근래에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는 내 자신을 향한 변명과 함께.

오늘은 중요한 발표가 끝나는 날이라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침부터 그간 벼르던 <29쇄>를 챙겨나왔지만, 하루가 말 그대로 쏜살같이 지나갔고 집에 오는 길 지하철에서야 그 첫 장을 넘기게 되었다.

한 사람의 29일간의 일기,<29쇄>를 읽으니 문득 일기가 쓰고 싶어진다. 이제 반 읽은 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오늘의 나를 발견하였기에 더더욱.

오늘 새벽 난 나의 바람이 잔뜩 담긴 사심가득한 꿈을 꿨다는 걸 잠결에 알았고 꼭 기억하라고 내게 말했다. 어젯밤 꿈을 더 생생하게 떠올리기 위하여 종종 미간을 찌뿌리며 하루를 보냈지만 새벽에 그렸던 꿈에 비해서 지금의 기억은  너무도 희미할 뿐이다.

하나의 발표를 마치고 다음 발표주제를 정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수십권의 책을 뒤졌다. 그러다 자료 속 귀여운 사진들을 찾는 재미가 들려, 본래의 목적을 잃고 핸드폰 앨범 가득 생뚱맞은 사진들을  채워 놓는 나를 발견한다. 나란 사람...후. 그렇게 딴짓을 한 결과 지금 내게는 오늘 반납한 책들 보다 훨씬 무거운 책들이 들려있다. 이걸 다 읽기는 할련지 싶지만 우선 도서관이 닫는다고 하니 챙겨 나올 수 밖에. 누군가 내게 왜 항상 짐이 많냐고 물었었는데, 이유는 여기에 있다.

-

10분 후 도착이라던 버스가 6분만에 와서 글은 잠시 끊겼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방금 전까지 엉엉 울었다. 그간의 속상함이 터진 것이다. 며칠 전 많은 부분을 희생하며 노력한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 결론은 하나이다. '어쩔 수 없어' 결국 나 자신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이 이해해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엄마는 한 번 더 어떡하겠냐며 네가 이해하라고 말한다. 그런 엄마에게 '어쩔수 없다'는 말이 제일 싫다고 한 마디 쏘아 붙이다 말은 번지고 속상함은 불어나 며칠전의 억울함이 다시금 솟았다. 그렇게 그간 참았던 눈물을 한번에 쏟는다. 오랜만에 엉엉 울었더니 시원타. 이해 안해! 이해 안돼! 엉엉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싶다는게 찡얼거리는 불편한 말만 주욱 늘어놓게 되었다. 그래 뭐, 일기는 그러려고 쓰는 거니까.

다시 <29쇄>를 편다. 67페이지부터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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