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 하나- 기억에 남겨진 사람에 대하여, 그 첫 번째
어젠 작업실 앞 무인카페 사장님과 함께 버스를 탔다. 무인카페는 우리의 작업실 출퇴근 약 2달 차에 생겨난 작은 카페였고, 오픈 직후에는 (날씨가 무척 좋았기에) 사장님이 종종 밖에 앉아있거나, 주변을 서성거리곤 했다. 이탈리아 원두를 썼다고 강조 강조하는 카페였는데, 사장님도 이탈리아 사람처럼 키도 크고 옷도 멋들어지게 입어, 나와 짝꿍은 진짜 이탈리아는 사장님이라며 웃어 보이곤 했다. 우린 작업실에 충분히 많은 커피와 차가 구비되어 있고, 디카페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인카페를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난해 엄청 추운 날 지인이 꼭 아이스라떼를 먹어야겠다고 고집하여 난 이 카페를 구경할 겸 지인을 데리고 갔고, 그 결과 라떼는 지인에게 한 모금, 그리고 모두 작업실 싱크대로 버려졌다..(미안)
날이 추워지며 카페 사장님을 통 만나질 못했는데, 어젠 우리가 타는 버스에 사장님이 탔다. 최근 들어 손님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괜히 맘이 찌릿찌릿했다. 알고 보면 남는 건 돈밖에 없는 아저씨가 재미 삼아하는 카페를 백수 처지인 내가 걱정하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난 자꾸 마음이 쓰인다. 한 카페가 망하는 건 내 알 바가 아닌데, 저 사장이라는 사람이 꿈에 부풀었다가 실망을 하게 되는, 그리고 이윽고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원망하게 되는 그 상황을 보는 것이 힘들다 생각했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사장님을 보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 사장님에 마음이 자꾸 쓰이는 건 나의 부친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의 부친은 이탈리아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어 보이는(실제로도..) 사람이지만 말이다. 어제 버스에서 사장님을 보고 짝꿍에게 "사장님 그래도 겉모습은 되게 멋져! 센스 굿"이라 말했고, 나의 짝꿍은 맞다며, 하지만 무언가 너무 착하기만 할 것 같은 인상이 걱정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며 난 자연스레 나의 부친을 떠올렸다. 나의 부친은 이탈리아가 아닌 것처럼 센스 굿 역시 아니지만, 착하기만 한 인상의 소유자이며, 그 인상은 정확하다. 정말로 인상보다 더 착해 빠진 사람이다. (나는 5살이 되던 해부터 가족 내 착한 순위에서 아빠에게 밀리게 되었다...ㅎ)
나의 부친은 3년 전 28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을'당'했고, 처음엔 바로 재취업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땅한 자리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종종 곧 다시 회사를 나갈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종종 이야기만 되풀이될 뿐이다.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친이 어디선가 들어온 몇 년 후에 사업을 하면 잘 될 거라는 이야기에 언젠가는 사업을 구상했었다. 아는 사람이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데 괜찮은 거 같다며 자꾸 컴퓨터로 건물과 방들을 찾아보는 거다. 너무 생뚱맞아서 게스트하우스를 가 본 적은 있느냐 물었더니 없다고 하고(ㅋㅋㅋㅋㅋ) sns 홍보는 기본일 텐데 할 수 있겠느냐 물으니 머리 위에 띄워지는 물음표(ㅋㅋㅋㅋㅋ) 그리고, 본인의 인상이 좋으니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묵고 가고 싶지 않겠냐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길래 게스트 하우스에 먼저 들어가 호스트의 인상을 보고 숙소를 결정하는 경우는 희박하다며 극구 말렸다. 후...
나의 부친이 자꾸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와서 슬쩍 말할 때면 끝까지 듣지 않아도 재빨리 뜯어말려야 했던 적이 몇 번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업이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나는 자꾸 무인카페 사장님을 보며 마음이 쓰인다. 어쩌면 이 카페가 어쩌면 정말 이탈리아를 매달 드나드는 부자 아저씨의 자기만족을 위한 취미생활일지도 모르겠으나, 난 그래도 자꾸 나의 부친처럼 선한 인상의 사장님이 손님 없는 가게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아.. 이 또한 쉽지 않겠지만, 작업실을 빼기 전에 벨기에를 강조 강조한 핫 초콜릿은 한번 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