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전공하면 보통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기초과목이 '기초설계이론'입니다. 학교나 교육과정마다 과목명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건축의 기초가 되는 용어나 역사들을 배우는 과목이지요. 비단 전공 교육에서만이 아니라 건축기사와 같은 자격증 시험에서도 가장 먼저 시작하게 되는'건축계획'파트에서 공부해야하는 내용입니다.
걔 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 챕터로, 시험문제의 1번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건축의 3요소' 입니다.
이 건축의 3요소는 BC 1세기 로마시대에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의 건축가로 활동했던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VitruviusPollio)가 집대성한 건축10서에 기술되었고 바로 현 시대에도 정의로 통하는 <구조, 기능 그리고 형태(미)> 입니다.
건축에 있어서 3대 구성요소는 구조적으로 안전해야 하고, 기능적으로 공간,구조물로서의 실용성이 있어야 하며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건축의 구조는 기둥이나 바닥, 보와 같은 건축물 뼈대가 되어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들을 말하며, 건축의 기능은 완성된 건축물이 공간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형태와 상징으로서 이용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적인 부분에서 건축은 시대와 역사, 사상을 대변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기초로 하여 집대성 된 학문이 건축이기 때문에 건축가는 공학자이면서 예술가이기도 해야합니다. 애초에 건축가 Architect의 어원이 고대 그리스 어휘인 'archi'(우두머리)와 'tekton'(제작공)의 합성어인 'architekton'과 라틴어 'architectus'(모든 작업의 계획 감독자) 즉, '모든 지식을 총괄하는 자'에서 왔음에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건축 전공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구조적인 부분을 깊이 배우기 전이었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이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얇디 얇은 어린 20대였기에 얇팍한 지식으로 흉내내기에 가까운 구조와 기능을 설계하고 젊은이의 창의력을 앞세워 미적인 부분에 몹시 치중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나마도 어설프기 그지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따금 그럴싸한 형태적인 미를 만들어 과제로 제출을 할 때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담당 교수님의 표정이 참 묘했습니다. 한번은 사무실 기능을 주로 하는 과제를 제출하고나서 교수님은 즐거우면서도 서글픈.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수업의 일환으로 말씀해 주셔야할 '크리틱'이라 부르던 비평을 멈춘 채 잠시 생각에 빠져 계시곤 했습니다.
"과제의 주제를 정말 잘 해석한 형태야. 기능적으로도 무리가 없고 구조적인 부분은 책을 참고해 보렴. 그런데..."
교수님께서 생각을 멈추고 칭찬에 가까운 크리틱을 해주시면 그리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 건축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죠.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그런데'라는 말은 제 인생의 진로에 있어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 시초였습니다.
"네가 학생이 아니라 진짜 건축가로 사회에서 건축설계를 하게 되면 아마도 이 건물은 지어지기 힘들거야. 건축주인 클라이언트가 싫어할거거든. 이런 디자인은 건축비가 비싸고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률이 떨어지니까."
교수님께서도 이 말을 해주어야 할지 분명 고민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학생에게 세상의 쓴맛을 먼저 알려주어 꿈에 생채기를 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셨을 테니까요. 하지만 세상을 먼저 살아온 어른으로서 꼭 해주고픈 말씀이기도 했을것입니다.
그래서 나름의 고민 후 막바지 수업 크리틱 즈음엔 미적인 부분을 완전히 버린것은 아니지만 사무실 기능에 집중적으로 치중한 건축 디자인을 과제로 제출했습니다. 다른 수업의 교수님들까지 참여한 마지막 크리틱에서 제 과제물은 그야말로 대차게 까였습니다. 학생으로서 창의성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구요.
물론, 완벽하진 않더라도 기능과 미를 동시에 만족시킬 만한 답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쓴맛과 어린 학생의 창의력이 맞물리는 지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제가 그러한 부분을 깊이 고민하면서 세상을 한번 둘러보았을 때 제 주변의 세상의 대부분은 최대한 임대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기능에 치중한 건물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습니다. 빼곡한 원룸건물들과 똑같이 생긴 아파트들. 간판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상가건물들이 있었습니다. 꿈과 창의력이 들어간 건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돈이 많은 클라이언트이거나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건축사가 만든 건물이 아니라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건물을 설계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어리고 급한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 탓에 저는 너무 이른 선택을 해버렸습니다. 건축가가 되지말고 돈이 많은 사람이 되자구요. 내가 만들고픈 건물을 디자인하거나 실제로 지어지기 위해서는 유명한 건축가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되는게 쉬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졸업과 동시에 창업을 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해답을 찾아가는 건축가로서의 노력과 즐거움을 너무 쉽게 포기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띠크 모나코 외관
부띠크 모나코 외관2
서울 강남의 조민석 건축가님이 설계한 '부띠크 모나코'라는 빌딩이 있습니다. 사무실로 빼곡히 채워야할 공간의 일부를 비워 공용공간이나 녹지로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건축주나 건물주 입장에서는 임대료를 받을 공간을 비워버렸으니 속상해 할 만도 하지만 오히려 그 빌딩은 전위적이면서 동시에 섬세한 디자인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건축상을 수상하며 희소성을 갖춘 고가의 건물이 되어 비워진 공간만큼의 수익을 채워버렸습니다.
요즘 세상의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인생의 큰 부분을 '돈'이라는 기능에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태의 미를 잃고 임대료에 집중한 네모반듯, 법적 규제선 한도에 꽉맞춘 이상한 건물이 된 꼴이죠. 한 때 뭐든 '하지 않아도 괜찮아.'가 유행하면서 돈보다 마음과 여유를 생각하자는 유행이 돌기도 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경기침체다, 주식이 올랐네 내렸네, 부동산이 위험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저도 우스겟소리로 말하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인생을 '돈과 부'때문에 오히려 인생이 불행해지는 경우들을 종종 목격합니다. 무지성으로 시작한 투자에 실패하거나, 돈 때문에 사랑했던 사람과 다투고 헤어지거나 하는 그런 흔한 이야기들이지요.
그렇다고 '돈'이라는 기능을 버리고 삽시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잖아요.'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건축에서 구조과 기능, 미가 시대의 요구에 맞춰 적절한 중간점을 찾게 되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인생도 적절한 중간점이 있을거라고 믿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구조, 기능, 미를 빗대어 본다면 아마도 구조는 내 삶을 지탱해 주는 내 몸의 건강과 맞물릴 듯 하고, 기능은 사회 속에서의 나의 역할. 아마도 경제적인 부분이 크겠지요. 마지막으로 미(美)라고 부르는 부분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성이나 삶을 살아가는 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과 경제력, 그리고 태도
여러분들은 어떤 적절함을 바라고 계신가요. 지금의 시대에 걸맞는 그 적절한 중간점을 찾아가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