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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Feb 06. 2023

파사드(facade)의 낯

간판으로 만든 건축물

파사드(facade)의 낯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며 수많은 얼굴들을 마주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하며 내 얼굴을 먼저 마주하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면 가족들의 얼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이도, 학생도, 직장인도 사회에서의 하루를 보내기 위해, 수 많은 얼굴들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먼저 내 얼굴을 정돈합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얼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쌍둥이라 할지라도 어디 점 하나로라도 구별할 수 있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 얼굴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실망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쨋든 최대한 내 얼굴을 아름답게 보이려고 애쓰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런 얼굴을 영어로는 face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facade입니다. 두 단어가 비슷합니다.  fac(face면)+ade(명접)  (보이는)면의 합성어죠. 그리고 facade의 뜻은 건축물의 얼굴을 말합니다. 건축물의 정면이라고도 하고 입면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수많은 얼굴들을 만나고 소위 '예쁜'얼굴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던한 노력을 하는 것처럼 건축에 있어서도 이 파사드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건축가는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건축물의 입면인 facade는 사람의 얼굴과 마찬가지로 대중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지는 '첫인상'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고민의 깊이는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어집니다. 임대수익을 우선시하는 건축주들 조차도 '그래도 건물이 이뻐야지'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싶어하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외적인 것에 한정된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앞서 건축의 3요소인 구조, 기능, 미에서 파사드는 미(美)의 역할을 주로 맡고 있습니다. 현대 건축에서는 구조물 자체가 형태, 미(美)가 되는 경우도 종종 보이지만 구태여 예외를 염두하지 않고 구분을 하자면 그렇습니다.


구조가 입면이 된 사례(중국 올림픽 주 경기장)



그런데 한국의 건축물들의 파사드에는 장점일지 단점일지 알 수 없는 특색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간판(Sign)'입니다. 사실상 주택을 제외한 상업의 목적을 가지는 대다수의 건물들은 간판을 부착합니다.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건축가를 포함한 도시, 조경 등의 전문가들이 만든 건축물의 외피인 파사드 위로 건물에 입주한 상업시설들의 가지각색의 명함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꼴입니다. 그나마 최근 중심상업지역이나 신도시지역에서는 간판정비사업을 통해 어느정도 정비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건축물이 가진 본래의 모습을 가늠해 보기는 쉽지 않은 형편입니다. 현대의 수많은 경쟁 속에서 간판(Sign)이라는 무기가 없이 살아남기는 힘든 부분을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은 쉽사리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한번 상상해볼까요?

누가 보아도 연예인이 아닐까싶은 멋진 사람이 멋진 옷을 입고 메이크업과 헤어세팅까지 마친상태로 방송에 나타났다고 예를 들어 봅시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과 머리, 옷 어디든 가리지 않고 방송사나 협찬사, 기획사들의 명함, 광고지 따위들이 그 사람을 모두 가려버리고 있다고 말이죠. 더해서 그 멋진 사람의 주변으로 좀 더 눈에 뛰기 위해 인력을 고용해 각종 배너나 표지판들을 든 채 따라 다닌다고 말이죠. 그 멋진 사람은 이제 그 장소에 머물러 존재할 뿐 본래 뽐내고자 했던 멋을 잃어버렸습니다.


서울에는 옥외광고물이 200만개 정도 있고 이 중 7~80%가 불법 광고물이라고 합니다. 이미 한도를 넘어서버린 불법은 암묵적으로 용인되어버린 합법이 되어버렸고 이제 현대에 있어서 간판(Sign)은 피해갈 수 없는 또 다른 의미의 건축의 조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도시, 근교를 포함한 건축물이 세워지는 모든 장소에서 건축물의 파사드 입면은 도시를 포함한 전체의 경관을 만들어 나가는 장소의 맥락(context)만드는 요소이고, 이 맥락들은 때론 유기적으로, 때로는 개성적으로 켜켜이 쌓여 수천년간의 미학과 도전적인 미학에 대한 도전으로 중첩된 장소로서의 미학을 연구해 나갑니다. 하지만 그 미학을 만들어가는 건축가 또는 도시계획가의 의도는 버려지고 무분별한 각 개인들의 욕망들이 장소의 맥락(context)의 혼란을 초래해오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이 혼란 역시 또 하나의 미학이라 주장하지만 건축물이라는 '본질'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간판'이라는 대체도 아닌 침략된 텍스쳐들로 미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유럽의 전경을 한국화 시킨 인터넷 밈


과거의 유산과 건축물의 미, 도시의 경관을 지키려는 스위스, 파리, 스페인 등과 같은 도시들에서는 충분히 시행되고 있는 '가능함'이 왜 우리에게는 다가와지지 못하고 있을까요. 다양한 어쩔 수 없는 이유들이 있겠지만 분명히 논의되어야 하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임은 명확합니다.


현재는 저 역시도 현대의 중심도시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세기의 시간이 필요한 사항이라 생각됩니다. 과거 상업의 다양성이 크지 않았던 시대에 학교는 학교의 모습을, 관공서는 관공서의 모습을, 집과 상점들, 공연장들 까지 건축물의 형태미를 보여줌과 동시에 은유적인 방법으로 간판을 대신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던 장소와 도시의 아름다움이 가슴이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인구가 적은 지방 소도시나 마을단위에서는 실험적으로 도전해볼만한 사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지고 있지요.


도시의 간판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 쌓이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사실 건축물과 간판의 관계를 살펴보며 '나는 어떤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불평을 너무 많이 늘어놔버렸습니다.


먼저 건축물과 간판 두 가지를 인간에게 대입시켜 봅니다. 건축물은 본연의 인간에 빗대어 볼 수 있을 것이고 간판은 '의도하지 않은 장식물'로 생각해야하니 좀 갈무리해서 표현하면 누군가 나에게 원하지 않는 옷을 입히고, 내가 입고 있는 옷들마다 커다란 의류 브랜드 상표들이 그려져있다는 정도로 표현하면 어떨까요. 이것도 어느정도 정돈된 패션이라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모자,바지,셔츠,외투,신발 등등 모두 각기 다른 사람들이 코디를 해주고 모든 패션마다 각자의 특성이 강하게 부여된 로고들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면 통일성 같은 미적 기준을 가진 매칭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은 의미의 예를 들어볼까요?

옷이 아니라 나의 말투, 행동과 같은 태도와 직업적인 경력, 자격과 같은 배움은 어떨까요.

나의 성격과 성향에 맞지 않는 유행어나 은어를 쓰고, 사회적인 관습으로 강요되는 예의들. 우리들이 소위 악습이라 불리는 술자리 예절이나 상급자, 하급자에 대한 과한 예우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런것들을 나만의 개인적인 성향과 기준없이 받아들이다보면 어느 순간 소위 '꼰대'라 불리는 괴상한 인격의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시대가 되면서 그래도 많이 줄어든 편이지만 제가 한창 학교를 다니던 2000년대 초반의 시절만 해도 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과 선배들의 징계를 가장한 폭력은 당연한 일상이었고, 대학시절 소주잔을 부딪히는 순간 선배보다 높이 들었다는 이유로 쌍욕을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와 불합리를 겪었음에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어린 생각을 가진 본인은 그런 악습과 같은 예의들을 되물림해주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거기다 소위 사회생활이란 이유로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을 어떤 행사나 축제에서 강제로 여장을 시키고 춤을 추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도 마찬가지로 되물림이 이어집니다. 군대에서의 생활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젊은시절 잘못 배운 예절, 관습이란것을 깨닫고 고쳐나가 점잖은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을 버리지 못한 '그저 나이만 먹은 사람'이 되곤 합니다.


배움에 있어서도 자신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잘못된 배움을 택하기도 합니다. 사기, 투기, 도박, 유흥과 같은 것들 말이죠. 이런 모든 것들은 내 본질 위로 덮여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리치는 간판(Sign)이 되어버립니다.


억울하겠지만 의도하지 않은 허울도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든 것들입니다. 나 자신을 먼저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허울들을 벗어던지고 온전한 나부터 바라보고 가꾸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때로 '관계'를 쉬어가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줄여 그들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나의 경험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입니다.


'나는 본래 어떤 성향의 사람인 것인가.'에서 시작해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내어보고, 그 답에 따라 노력을 한 뒤에 부족한 부분을 또 다시 채워가는 일련의 수련의 과정을 끊임없이 겪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질'을 가꾸는 방법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참 평온할 것 같습니다.

그런 건물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참 아름다워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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