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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미 Nov 04. 2019

내 집에서 내 밥 차려먹기

자취 8년 차에 시작하는 집밥 다짐

자취를 시작한 지 햇수로 8년차가 되었다.

첫 집은 신대방동이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 관리비 8만, 전기세 별도.

작지만 화장실도 딸려 있었고,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이었지만 별로 쓰지 않았던 책상과 책장, 옷장 한 칸에 그럴 듯한 주방까지 딸린 내 나름대로의 첫 집이었다.


사실 보증금 500만원 중 250만원이 엄마 돈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엄마 주머니에서도 쉽게 나올 돈이 아닌 그 돈을 받아 어설픈 독립을 하면서도 학생이라는 신분을 내세워 꼬박꼬박 월세를 받아 먹었더랬다.

평일에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오가면서 주말에는 옆동네 카페에서 알바를 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그 생활 패턴은 나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대학생 초창기 기숙사 생활을 할 때도 본가가 멀지 않아 주말마다 엄마 밥을 먹는 '복 받은' 사생이었던 나는 서울로 터를 옮겨 자취를 하고 학생 티 못 벗은 얼굴로 인턴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드디어 정직원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처음으로 사원증을 목에 걸고 강남대로를 날뛰던 시절에도 한 달에 두어번은 고향집에 내려가 전에 없이 귀한 딸 대접을 받으면서 토요일 저녁에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일요일 아침에는 아빠가 끓여주는 김치죽을 먹으면서 20대를 보냈다.


신대방 첫 집 계약이 1년만에 만료되고 베란다와 화장실이 내 방보다 컸던 기이한 구조의 건대입구역 근처 두 번째 집에서 꼬박 2년, 거기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어린이대공원역 근처의 그래도 내 방이 화장실보다는 컸던 다세대 주택에서 3년 반을 보냈다.


도합 6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본가 화장실이 원래부터 깨끗한 게 아니었다는 점과 설거지는 바로바로 해치우지 않으면 금세 탑이 된다는 점, 세탁을 두 번만 미루면 내 몸을 닦을 수건이 없어진다는 점, 마른 옷가지를 개서 정리하는 게 세탁보다 500배는 귀찮다는 점, 계절마다의 옷장 정리 역시 저절로 되는 게 아니었다는 점, 혼자서는 이불 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과 더불어 내가 추구하는 깔끔함에 비해 나는 정말 대단히 '게으르다'는 점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본가에 가서 친오빠와 밥을 먹으면 곧죽어도 지는 느낌이라 안 하던 설거지를 이제는 승부욕은커녕 아무 생각 없이 해내고, 주말 저녁 네 가족이 오랜만에 차려먹은 저녁상도 전보다는 곧잘 앞장서서 치우는 막내딸이 되었다.


직장 문제로 서울에서 경기도로 거처를 옮기면서 기분이 꽤 묘했던 기억이 난다.  비슷한 수준의 월세로 서울 살 때에 비하면 두 배는 높아진 층고, 심지어 복층 구조에 빨래 건조대를 한껏 펼쳐도 춤을 추고도 남을 만큼 넓어진 무려 '오피스텔'이 내 집이었다. 아, 정확히 말하면 내 이름으로 빌린 남의 집.


처음 그 집에 왔던 아빠는 집이 너무 넓어 큰일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너같이 게으른 애가 청소를 어떻게 다 하려고 하는지, 욕심이 과하다는 말로 집들이 소감을 내뱉던 아빠의 진짜 걱정은 나중에서야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그 넓은 집에 혼자 퇴근하고 들어가면 혼자 적적해서 어쩌려고 그런 집을 구했냐고. 엄마와 나는 좁아 터진 집에서 우는 것보단 낫지, 하고 대꾸했지만 꼬박 3개월이 지나고 나니 혼자서 근사하게 밥을 차려 먹어도 괜히 울적해지는 날이 잦았다. 


어쨌든 그 외로움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로운 직장에서 만난 동료 몇이 동료 이상의 친구가 되어 일주일에 두세번은 술을 마시며 극복- 했지만..  그리고 그 술고래 중 한 명이 알려준 대출로 드디어 전셋집 얻어서 월세 탈출한 건 또 다른 결말이다. 기승전전세대출.


빨래 널고 나면 걸어다닐 공간이 없어 건조대 밑으로 기어다니던 집들을 지나 어설프게나마 침실이 따로 있는 전셋집을 얻어 이사하면서 스스로에게 얼마나 심취했었는지 모른다. 전세금 중에 80퍼센트는 대출이고, 15퍼센트는 또 아빠 돈이고, 5퍼센트만 순전한 내 돈이라 우리집 변기만이 오롯이 내 것이다 라는 대책없는 긍정발언을 하면서 입주한 집에서도 벌써 8개월 째다.


자취생활 8년 동안 나는 대학생에서 졸업생이 됐고, 졸업생에서 월급 100만원 받는 인턴이 되었다가, '초봉'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6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그 사이 집도 커졌고, 미미하게나마 급여도 늘었고 뱃살도 늘었고 객기도 늘었지만 집밥 차려먹는 성의는 자꾸만 줄어든다.


육덕진 고기 반찬에 시뻘건 짠 맛의 찌개만 찾던 사회 초년생은 이제 외식은 점점 물리고, 고향집에 가도 엄마가 만든 감자볶음에 버섯볶음, 삼삼한 무국을 찾는 입맛이 되었는데 엄마 밥 먹을 기회는 자꾸만 줄어드니 이를 어째.


괜히 혼자 사는 내가 짠해서 오늘은 8년 전보다 넓어진 내 집(이라고 부르는 빌린 집)에서 파 송송 썰어넣어 계란국 끓여 저녁을 차려먹을 참이다. 두 달 빨리 시작하는 2020년 계획, 삼삼한 집 밥 차려먹기. 그날 그날 당기는 메뉴를 만들다 보면 자취 8년 차가 9년 차가 되고 건강도 해지고 뿌듯도 하고 그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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