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라남생이잎벌레의 꿈

금빛 꿈을 품은 작은 벌레의 모험






금생이는 오늘도 가슬가슬 솜털이 난 메꽃 잎을 맛있게 갉아먹고 있어요.


처음으로 눈을 뜨던 날, 금생이는 메꽃 가지 위에 네 발을 딱 붙이고 서있었어요. 자기가 딱 달라붙어 서있는 곳이 메꽃인 줄모르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댔지요.

“어서 기어올라라!”

메꽃 밑에서 누군가 소리쳤어요. 금생이는 그것이 엄마인 줄 단번에 알아봤어요. 엄마는 가지 밑으로 쪼르륵 미끄러지려는 금생이를 보더니 서둘러 날아와 머리로 금생이의 꽁무니를 밀어 올렸지요. 금생이는 간신히 메꽃 위에 올라 엄마를 멀뚱멀뚱 쳐다봤어요.

“그래,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

엄마가 투명하게 빛나는 금빛 날개를 활짝 펼치며 말했어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를 거야.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두렴.”

금생이는 아직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답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금생이야. 그리고 여기 이 메꽃 밭이 너의 집이란다.”

엄마는 그 말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렸어요. 어디로 날아갔는지, 다시 돌아올 건지 금생이는 알 수 없었지요. 그 뒤로 금생이는 엄마의 말대로 메꽃 밭에서 살면서 메꽃 잎을 하루도 빠짐없이 맛있게 먹었답니다. 처음에 희끄무레하기만 했던 날개가 어느새인가 엄마의 날개만큼 투명하게 빛이 났고, 날개 위에는 메꽃 밭에 사는 어느 누구보다도 멋지고 큰 금빛 무늬가 생겼지요. 금생이의 금빛 날개는 메꽃 밭의 자랑이었어요. 하지만 금생이는 메꽃 밭의 자랑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금생아, 우리 저기 막 잎을 피운 메꽃에 가보자. 어제 잎을 피웠으니 맛이 아주 좋을 거야.”

새로 핀 메꽃 잎만 골라먹는 동이가 말했어요. 동이는 금생이가 처음으로 눈을 뜨던 날, 금생이 보다 반나절 앞서 태어났어요. 반나절 앞서 태어나서인지, 몸집도 금생이 보다 크고 날개도 튼튼했지요. 그래도 날개 위에 무늬만큼은 금생이를 따라가지 못했어요. 동이의 날개 위에는 새똥처럼 거무튀튀한 동그란 무늬가 볼품없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답니다. 날개가 못생겨서 못마땅하긴 했지만 동이는 자기보다 근사한 무늬를 가진 남생이가 싫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금생이를 동생처럼 아꼈지요.

“동이 누나, 왜 우리는 메꽃 밭에만 살아야 하는 거야?” 메꽃 잎을 갉아먹고 있던 금생이가 물었어요. 새로 핀 메꽃 잎으로 날아가려던 동이가 날개를 접고 한숨을 내쉬었어요.

“또 그 소리야?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우리 같은 잎벌레들은 메꽃 잎을 먹고살아. 그러니 당연히 메꽃 밭에 살지!” 동이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설명했어요.

“너 또 오솔길 너머에 있는 도깨비 마을을 생각하고 있구나?”

“하지만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게 너무 예쁜 걸. 내 날개에 있는 금박 무늬 따위는 도깨비 마을의 불빛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금생이가 입술을 비죽 내밀며 말했어요.

“그럼, 네 날개보다 훨씬 빛나고말고! ” 금생이의 금빛 날개가 가끔은 샘이 났던 동이가 눈을 가느다랗게 흘기며 말했어요.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금생이에게 단단히 일렀답니다.

“도깨비 마을은 아주 위험한 곳이야. 옛날에 은비네 할아버지가 너처럼 호기심에 도깨비 마을에 갔다가 목숨만 간신히 붙어서 돌아왔잖아. 그 뒤로 은비네 할아버지는 날지도 못하고 은비가 가져다주는 메꽃 잎만 먹으며 살고 있단다.”

“어떻게 되었기에?”

“글쎄, 도깨비들이 우리 금빛 날개가 예쁘다며 죄가 뜯어갔다지 뭐야.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날개가 뜯기기 전에는 무시무시한 감옥에 갇혀 있었데. 그 감옥은 창살도, 자물쇠도 없이 투명한데 머리 위에는 그물 같은 하늘이 동그랗게 떠있데. 그런데 밖으로 나가려고 날갯짓을 하면 뭔가에 쿵 부딪히고는 그대로 나뒹굴었다는 거야. 아무리 애를 써도 그물 같은 하늘 아래를 벗어나지 못했다지 뭐야.”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떻게 빠져나왔데?”

“어느 날, 감옥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머리 위를 덮고 있던 그물 같은 하늘이 사라지더래. 그러고는 도깨비 손이 쓱 다가오는데 할아버지를 덥석 잡았다는 거야. 할아버지는 옴짝달싹 못한 채 도깨비에게 잡혀 어딘가로 갔는데, 너무 겁이 나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지 뭐야?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등딱지가 너무 아프고 욱신거려서 날 수도 없었데.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간신히 그곳을 도망쳐 나오셨데.”

“날개도 없이?”

“처음에는 도깨비들의 검은 눈을 피해 며칠 밤이고 며칠 낮이고 기어 다녔지. 도깨비들이 먹다가 흘린 음식을 뒤집어쓴 채 숨기도 하고, 도깨비들의 물건인 듯한 쇠붙이에 찰싹 달라붙어 숨기도 했데. 그러다가 높다란 벽에 다다랐는데 글쎄 그 벽에서 엄청나게 지독한 냄새가 나더라는 거야.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파리 아저씨를 만났어. 파리 아저씨는 만신창이가 된 할아버지를 발견하고는 가엾어서 들판으로 옮겨주었데. 파리 다리에 매달린 채 도깨비 마을을 빠져나오면서도 할아버지는 도깨비들이 아름답게 꾸며놓은 색색의 도깨비불을 넋을 잃고 바라보셨다지? 아무튼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들판으로 간신히 도망쳐 나왔고 그다음부터는 너도 알다시피 여기 이 메꽃 밭에서 은비 할머니를 만나셨어.”

“와!”

“너무 좋아하지 마. 어쨌든 제 아무리 색색의 불빛이 아름다워 보여도 도깨비 마을은 아주 위험한 곳이야. 우리 같은 조무래기 벌레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으니 절대로 가서는 안돼.”

동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볼픔없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 버렸어요. 하지만 금생이는 날개를 펼칠 수 없었답니다. 방금 전에 동이가 말한 투명한 감옥이라던지, 도깨비 마을의 아름다운 불빛이 눈앞에서 아른거렸지요. 동이는 도깨비 마을이 위험천만한 곳이라고 했지만 금생이의 귀에 그런 말이 들릴리가 없었어요.



메꽃 밭에 어둠이 찾아왔어요. 처음에는 언덕 끝자락에 걸린 해가 하늘을 보라색으로 물들이더니 금세 주위가 깜깜해졌지요. 하늘에는 초승달 하나 없이 별빛만 희미하게 메꽃 밭을 비추고 있었어요. 메꽃 밭의 잎벌레들은 저마다 가지나 잎사귀 뒤에 날개를 접고 매달린 채 잠이 들었어요. 금생이도 다른 친구들처럼 잎사귀 뒤에 날개를 접고 자리를 잡았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답니다. 금생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오솔길 너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어요. 그때였어요. 온통 새까맣기만 했던 오솔길 너머에 도깨비불이 하나둘씩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했어요. 하루 중에 금생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지요! 도깨비불은 점점 밤하늘의 별을 집어삼킬 만큼 크고 밝게 빛났어요. 금생이의 자그마한 두 눈에도 도깨비불이 가득 들어찼답니다. 오솔길 너머 도깨비 마을은 이제 햇살에 반사된 호수처럼 눈부시게 빛났어요. 금생이는 도깨비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하염없이 도깨비 마을을 바라보았어요. 그러다가 문득 엄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지요.

‘이 메꽃 밭이 너의 집이란다.’

동이의 말도 떠올랐어요.

‘제 아무리 색색의 불빛이 아름다워 보여도 도깨비 마을은 아주 위험한 곳이야.’

금생이는 날개가 죄다 뜯겼다는 은비네 할아버지가 생각났어요. 날개가 뜯기다니 생각만 해도 날개 딱지가 아려오는 것 같았지요. 금생이는 한쪽 날개를 펴보았어요. 반쪽 자리 금박 무늬가 새겨진 나머지 한쪽 날개도 쭉 펼쳐보았지요. 그러고는 친구들에게 소리를 들키지 않도록 아주 자그맣게 두 날개를 떨어보았어요. 이대로 조금만 더 힘주어 날개를 떨면 그대로 하늘 위로 날아오를 수 있어요. 금생이는 날개가 뜯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지만, 메꽃 밭이 집이라는 엄마의 말이 꽁무니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지만, 이대로 날갯짓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어요. 마음이 온통 도깨비 마을의 불빛처럼 불타올라 사라질 것만 같았지요. 이윽고 고요한 밤하늘에 파르르 작은 소리가 울렸어요. 너무나도 작은 소리라 아무도 듣지 못했답니다. 깜깜한 오솔길 밤하늘 위로 금빛의 투명한 이파리 하나가 반짝였어요. 이파리는 바람을 타고 도깨비 마을로 날아갔어요.




도깨비 마을 앞에 다다른 금생이는 봄이면 몰아닥치는 작은 회오리바람처럼 불빛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어요.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금생이는 자기가 불빛 속으로 뛰어든 것인지, 불빛이 자기를 삼킨 것인지 알 수 없었지요.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는 온통 금빛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어요. 날개조차 완전히 금빛이 되어있었지요. 금생이는 앞을 볼 수가 없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뜨던 날, 번쩍하고 빛났던 태양 빛이 떠올랐어요. 그때도 주위가 온통 눈이 부시도록 하얬었지요. 금생이는 이 금빛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도깨비에게도 커다란 날개가 있어, 자기처럼 날개 무늬에서 금빛이 나는지 궁금했어요.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날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답니다. 먼 길을 날아오느라고 날개까지 저리고 아팠어요. 금생이는 쉴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힘없이 파르르 떨리는 날개 밑으로 은은하게 빛을 내뿜고 있는 작은 연못이 보였어요. 연못 위에 개구리밥이 떠있는 걸 보니 개구리가 살고 있는 게 분명한데, 개구리의 먹이가 될 걱정 따위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날개가 아팠답니다. 금생이는 개구리 밥 위로 내려앉았어요. 그러고는 주위를 계속 살펴보며 혹시라도 개구리가 나타나면 재빨리 하늘로 날아갈 준비를 했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개구리는 나오지 않고 연못은 이상하리만큼 잔잔했어요. 연못 안에는 알록달록한 몸빛을 자랑하는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어요. 금생이는 지금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몸빛을 가진 물고기들을 본 적이 없었답니다.




“실례합니다..”

금생이는 평화롭게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를 방해하는 것이 미안해 조심스럽게 물고기들을 불렀어요.

“저는 오솔길의 메꽃 밭에서 온 금생이라고 해요.”

연못 안은 여전히 조용했어요. 물고기들은 금생이가 보이지 않는지 하얗고 삐죽삐죽한 돌 사이를 미끄러지듯 헤엄쳐다니기만 했지요.

“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금생이가 다시 한번 물었어요.

“소용없어.”

어디선가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금생이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어요. 머리 위에서 거무튀튀한 무엇인가가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죠.

“쟤들한테 말을 걸어봐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거야. 이미 저 어항에 너무 익숙해져서 귀가 어두워져 버렸거든.”

금생이 앞으로 날아온 것은 바로 파리였어요. 파리는 멀지 않은 곳에 날개를 멈춘 채 공중 위에 떠있었지요.

“어…어… 어떻게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도 하늘에 뜰 수 있어요?”

“허, 이놈 봐라.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군 그래. 자, 눈을 크게 뜨고 내 발 밑을 자세히 보라고.”

금생이는 파리의 말대로 눈을 크게 뜨고 파리의 발이 있는 곳을 쳐다봤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요. 금생이는 앞다리로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보았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투명한 벽이 눈앞에 보였어요. 파리는 투명한 벽 꼭대기에 발을 딛고 서있었답니다.

“이제 알겠니? 넌 지금 연못이 아니라 어항에 담긴 개구리밥 위에 있는 거야.”

파리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어항… 이요?”

“그래, 어항. 물이 담겨 있는 투명한 유리그릇. 네가 보고 있는 저 물고기들은 연못에 사는 녀석들과는 차원이 달라.”

금생이는 파리가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나저나 너 메꽃 밭에서 왔다고 했니?”

“네. 저는 메꽃 밭에 사는 금생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혹시 잎벌레야?”

“네. 메꽃 밭에서 메꽃 잎을 먹고 사니 잎벌레가 맞아요.”

“너 같은 잎벌레를 하나 알고 있지.”

금생이는 눈이 동그래졌어요.

“어쨌든 이 세계에는 오래 있지 않는 게 좋아. 옛날에도 너같이 날개가 아름다운 잎벌레 하나가 이곳을 찾아왔다가 아주 끔찍한 일을 당했거든.” 파리는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지 눈살을 찌푸렸어요.

“혹시 은비네 할아버지 이야긴가요? 할아버지를 도와줬다는 파리가 혹시 아저씨예요?”

“은비네 할아버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어서 떠나는 게 좋아.”

파리는 앞다리를 부산하게 비벼대며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한 자리에 오래 있는 건 나한테도 좋지 않아. 언제 살충제 세례를 받을지 모르거든. 어쨌든 나가는 길은 내가 알고 있으니까 어서 따라와.”

파리는 볼품없는 날개를 바삐 움직이며 하늘로 날아올랐어요. 금생이는 파리가 하는 말이 수수께끼 투성이었지만 낯선 곳에서 아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아 파리가 반가웠답니다. 게다가 파리가 은비네 할아버지를 알고 있다니 한결 마음이 놓였지요. 금생이는 앉아있던 개구리밥을 박차고 파리를 따라 날아올랐어요.




“도깨비불을 보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금생이는 파리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외쳤어요. 파리는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는 금빛 안개를 뚫고 아무 말 없이 앞으로 날아가기만 했답니다.

“파리 아저씨 제발 부탁이니 도깨비불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려주세요.” 금생이는 자기보다 한 발 앞서 날아가는 파리를 향해 계속해서 소리쳤어요. 정말로 도깨비불을 보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갑자기 파리가 방향을 바꿔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어요. 금생이도 질세라 파리를 따라갔지요. 위로 날아오를수록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부셨어요. 금생이는 눈을 찔끔 감고 파리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 따라갔답니다. 한 참을 날아오르던 파리가 커다란 벽에 거꾸로 붙은 채 날개를 접는 소리가 들렸어요. 금생이도 메꽃 잎 뒤에 거꾸로 붙어서 자곤 했던 재주를 살려 어렵지 않게 파리 옆에 자리를 잡았지요. 파리가 붙은 벽은 방금 전과는 다르게 빛이 희미하게 어른거렸어요.

“이쯤이면 안전할 거야.” 파리가 한숨을 돌리며 말했어요.

“천장까지는 잘 보지 않거든.”

“잘 보지 않다니, 도깨비가 말인가요?” 금생이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는 파리를 향해 물었어요. 파리에게 꼭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두 눈에 서렸지요.

“흐음, 할 수 없군. 얌전히 이곳을 떠나도록 도우려고 했는데 도깨비불이 그렇게 보고 싶다니.” 파리는 두 발을 비비며 금생이를 쳐다보았어요. 그러고는 중요한 이야기라도 꺼낼 듯이 한 숨을 크게 내쉬었지요.

그때였어요. 어디선가 커다란 그물이 나타나더니 천장을 휙 하고 훑고 지나갔어요.

“조심해! 그물에 걸려들면 끝장이야!”” 파리가 재빠르게 그물을 피하며 금생이를 향해 외쳤어요.

금생이는 파리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땅을 향해 곤두박질쳤어요. 너무 놀란 나머지 날개를 펴는 것도 잊은 채 천장에 붙였던 발을 떼어버린 거예요. 금생이는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얼마나 떨어졌을까, 금생이는 폭신하고 보드라운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어요. 떨어지면서 질끈 감았던 눈을 떠보니 발라당 뒤집어진 채 보드라운 바닥에 누워있었지요. 금생이는 몸을 바로 세우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날개를 떨어보고 발버둥을 쳐보아도 소용없었어요. 파리가 천장 주위를 맴돌며 금생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어요.

“어서 도망쳐! 사람에게 붙잡히면 정말 끝장이라고!” 파리가 금생이를 향해 외쳤어요.




파리는 천장을 향해 날아오를 때보다 날개를 더 부산스럽게 움직였어요. 필사적으로 도망치라는 파리의 말에 금생이는 뜻 모를 두려움을 느꼈지요. 아까보다 더 크게 발버둥을 치며 몸을 뒤집으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뒤로 자빠져본 적 없는 금생이로서는 몸을 바로 뒤집는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었어요. 금생이가 꽁무니를 떨면서 폭신한 바닥에 닿은 날개를 펴려고 할 때였어요. 이번에는 어디선가 둥글둥글한 뭔가가 나타나더니 금생이를 꼭 집어 올렸어요. 금생이는 방금 전에 파리가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사람에게 잡히면 끝장이라고 한 것을 보니 지금 자기는 사람에게 잡힌 모양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금생이는 사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어요. 분명 도깨비 마을에 찾아온 것인데, 도깨비 마을에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깨비가 살고 있는 걸까요? 순간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 들면서 머리가 미끄러운 바닥에 쿵 부딪쳤어요.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땅을 짚고 서있었지요. 금생이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그러다가 자기를 쳐다보는 새까만 두 눈과 눈이 마주쳤지요. 등이 오싹해지면서 날개가 파르르 떨렸어요. 자기도 모르게 위를 올려다 보게 되었는데, 동이가 말했던 그물 같은 하늘이 머리 위를 동그랗게 덮고 있었지요. 맙소사! 그제서야 금생이는 투명한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펴보니 방금 전에 파리가 어항이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유리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지요.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금색의 불빛은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어요.



금생이를 요모조모 살펴보던 사람은 이내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금생이는 까만 눈이 사라지자 날개를 활짝 펴고 다친 곳이 없는지 몸 구석구석 살펴보았어요. 날개 죽지 한 편이 살짝 구겨지긴 했지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지요. 금생이는 다시 투명한 유리벽 너머를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투명한 감옥이야 은비네 할아버지가 아무리 빠져나가려고 날갯짓을 해도 소용없다고 했었으니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요. 게다가 지금은 너무 지치고 배가 고팠어요. 메꽃 밭을 떠난 이후로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으니까요. 금생이는 고개를 들어 그물이 쳐진 동그란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파리는 온데간데없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금생이는 투명한 감옥 안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힘을 아꼈어요. 감옥을 빠져나가겠다고 발버둥을 쳤다가는 빠져나가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금생이는 몸을 가만히 옹크린 채 새로 잎을 피운 메꽃을 생각했어요. 생각만 해도 입이 오물오물 움직여졌지요. 어리고 싱싱한 메꽃 잎을 먹는 상상을 하자니 스르르 잠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벌컥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새까만 눈이 다시 금생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어요. 이번에는 둘이 아니라 넷이었어요. 눈들이 금생이를 신기한 듯 쳐다보며 유리 감옥을 이리저리 돌리자 금생이는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이제는 날 힘조차 없었지요.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동그란 그물 하늘이 빠끔히 열렸어요. 그리고는 금생이 앞으로 싱싱한 이파리가 툭 떨어졌답니다. 봉숭아 잎이었어요. 메꽃 밭에서도 본 적 있던 봉숭아였지요. 잎벌레들은 메꽃 잎 말고는 다른 잎은 잘 먹지 않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어요. 금생이는 떨어진 봉숭아 잎을 맛있게 우적우적 뜯어먹기 시작했답니다. 사람들은 금생이가 잎을 뜯어먹는 모습을 다 지켜본 후에야 자리를 떠났어요. 배가 부르자 금생이는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어요. 투명한 유리 감옥에 갇힌 것도 생각만큼 무섭거나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비춰 드는 불빛도 여전히 아름답고 따스했답니다.


머리 위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왔는지 파리가 동그란 그물 하늘 위에 앉아있었어요.

“다친 곳은 없니?” 파리가 물었어요.

“네, 날개가 조금 접혔지만 금방 나을 것 같아요.”

“도깨비불을 보고 싶다는 네 말을 듣는 게 아니었는데....” 파리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어요.

“저는 괜찮아요. 아저씨 탓도 아닌걸요. 그나저나 아저씨가 말했던 그 사람이라는 거 말이에요, 도깨비 이름인가요?”

“도깨비 이름? 하하하!” 그물 위에서 파리가 날개를 비비며 웃음을 터뜨렸어요.

“아니, 도깨비 이름이 아니란다. 사람은 그냥 사람이야. 그래, 도깨비처럼 생겼지만 뿔이 없고 눈이 두 개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그럼 여기는 사람이 사는 마을인가요?”

“사람이 있으니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람은 저마다 집이라는 게 있는데, 너는 그중 한 집에 들어온 거야.”

금생이는 파리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요.

“사람은 굉장히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구나.” 금생이가 혼잣말처럼 파리를 향해 말했어요.

“그래, 아름다운 곳이기는 하지만 위험하기도 해.” 파리는 동이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지요.

“아까 네가 거꾸로 매달렸던 천장이 보이니?” 파리가 날개로 천장을 가리키며 물었어요.

“네.”

“눈이 많이 부시겠지만 우리가 앉았던 곳을 자세히 봐봐.”

금생이는 파리가 시키는 대로 천장을 올려다봤어요.

“하얗게 빛을 내뿜고 있는 막대 같은 것이 보이지?”

“네, 보여요. 와! 정말 아름다워요!”

“그래, 저게 네가 그토록 보려고 했던 도깨비불이야. 사람들은 저걸 형광등이라고 부르지만.”

“형광등이요?”

“그래, 형광등. 나도 우리 조상님들께 전해 들은 얘기지만 사람들은 어둠을 무서워해서 밤에도 밝게 빛날 수 있는 형광등을 만들었데. 아마 너는 저 형광등 불빛을 보고 도깨비불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메꽃 밭에서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제 금빛 날개 따위는 따라가지도 못할 만큼 아름다워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사는 곳은 위험해. 아까 보았던 어항 속 물고기들도 사람들이 바다에서 잡아온 거란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꼭 손에 넣고 싶어 하거든.”

“하지만 이렇게 먹을 것도 주고 은비네 할아버지처럼 날개를 뜯지도 않는걸요.”

“아까 민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는 유리병에 두고 먹이를 주면서 키워보고 싶데. 그러니 은비네 할아버지처럼 날개를 뜯기는 일은 없을 거야.”

“민이요?”

“그래, 이 집 딸 이름이 민이야. 지난번에 민이네 앞집에 살았던 성재네에, 네가 말했던 그 은비네 할아버지가 찾아왔었어. 나는 성재네 집에 살지 않았지만 성재네 집에 살던 똥파리가 은비네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잘 알고 있지. 날개가 죄다 뜯긴 은비네 할아버지를 숨겨주려고 똥파리가 우리 집에 찾아왔었거든. 성재는 성질이 아주 고약한 아이라 민이네가 훨씬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럼 저는 이제부터 이 투명한 감옥에 살면서 민이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먹어야 하는 거예요?”

“민이가 엄마한테 그러는데, 성재가 잎벌레 날개를 죄다 뜯어버린 것을 보고 너무 가여워서 혹 이다음에 자기 집에 잎벌레가 날아들면 어떻게 키울지 공부를 해 두었데. 그러면서 잎벌레는 메꽃 잎을 좋아하니 내일 날이 밝는대로 집 앞 언덕에 올라 메꽃 잎을 따오겠다고 했어.”

“언덕 위 메꽃 밭이면 오솔길에 있는 우리 메꽃 밭을 말하는 거예요!” 금생이는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어요.

“그나저나 너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냐?” 파리가 날개를 바쁘게 움직이며 유리병 아래로 내려왔어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민이라는 아이가 매일 메꽃 잎을 가져다준다고 하니 당분간은 아무 일 없을 것 같아요. 이 유리병에서 지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어요.”

“넌 참 특이한 아이로구나.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다니 말이다.”

파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천장 위로 날아올랐어요.

“그럼 행운을 빈다. 나는 사람들이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이만 가야 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네 주위에 있을 테니.”

“고마워요, 파리 아저씨.”

금생이는 열려 있는 문틈으로 날렵하게 날아가는 파리를 향해 더듬이를 흔들어 인사했어요.




이제 투명한 유리병 안에는 다시 금생이 혼자 남았어요. 저만치 떨어진 곳에 처음 보았던 어항이 놓여있고, 어항 속에는 알록달록한 몸빛을 자랑하는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지요. 물고기들은 사람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은지 어항 속을 평화롭게 누비고 다녔어요. 금생이의 머리 위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름다운 불빛이 쏟아져 내렸어요. 그 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금생이는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지요. 날개도 몸도 온통 금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잎벌레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어요. 자그마한 메꽃 밭에서 메꽃만 먹고사는 한낱 작은 곤충이 아니라 온몸으로 밤하늘을 밝히는 별이 된 것 같았어요. 비록 진짜 밤하늘의 별이 된 건 아니지만 처음 만난 인간 세상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지 두려움과 동시에 설렘이 앞섰지요. 자길 유리병 안에 넣은 민이가 어떤 아이일지도 무척 궁금했어요. 금생이는 민이가 너무 오래 자길 붙잡아두지 않기를 바랐어요. 은비네 할아버지를 가엽게 생각한 인간이라고 하니, 호기심을 채우고 나면 자길 놓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된다면 금생이는 아름다운 불빛으로 가득한 인간 세상을 더 많이 모험할 거예요. 그전에 이 유리병 안에서 민이라는 아이를 먼저 알아갈 테지만요. 금생이는 그토록 바라던 도깨비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답니다.


어느 봄 밤, 유리병에 담긴 자그마한 잎벌레 한 마리는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금빛 날개를 소리 없이 파르르 떨었어요.





* 어느 초여름 밤,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금빛 날개가 아름다운 곤충 한 마리가 날아들었어요. 난생처음 보는 곤충의 모습에 호기심이 동해 작은 유리병 안에 넣고 하루 동안 살펴보았지요. 이리저리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해보니 우리 집에 날아든 그 곤충은 금자라남생이잎벌레라는 아주 근사한 이름을 갖고 있었어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금자라남생이잎벌레는 그렇게 우리 집에서 하루 동안 제 호기심을 채워주고 다시 하늘로 날아갔답니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앞으로 누구를 만날까, 무슨 이유로 위험한 인간이 사는 집으로 날아들었을까, 금자라남생이잎벌레를 날려 보낸 뒤에도 한참 동안 그 녀석 생각이 났어요. 이 동화는 그렇게 해서 쓰게 된 것이랍니다. 꿈을 갖고 모험을 떠난 곤충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거예요. 혹시라도 제 경우처럼 어느 날 작은 곤충이 집으로 찾아온다면, 그 곤충에게도 삶을 모험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자유롭게 날려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 ⓒ 2020 아프리카와 고양이 글



- 사진 출처: 야생화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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