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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를 믿지는 않습니다만....

궁합이 맞지 않아도 GO입니다!



  새해 아침부터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너 돼지띠랑 용띠가 상극인 거 알지?"


 언니는 재작년부터 하던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나와 새로 장사를 시작했다. 1인 족발 보쌈 도시락 사업으로 생각보다 수완이 좋아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올랐고 매장을 오픈한 지 반년만에 사업 초기 비용과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 옛날부터 계획한 일은 악착같이 이뤄냈던 언니는 이번에도 꽤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언니가 사업을 시작하고 나한테 뜻밖의 루틴이 생겼다. 언니의 출근 시간 모닝콜이 시작된 것이다. 장사를 하기 전에 언니는 과외 선생님이었는데 그때는 일을 다 마치고 돌아가는 밤 12시가 되어서야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집안일에 반려견 산책, 아이의 공부와 남편의 약, 내 일까지 모두 챙기고 나면 녹초가 되어 여기가 이승인지 저승인지 따질 겨를도 없이 마룻바닥에 깔아놓은 요 속으로 스며드는 시간이었다. 언니는 나의 그런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해 그날 만난 학생이며 학부모 이야기를 했고 운전하면서 만난 무개념 운전자와 나이를 드시고도 줄기차게 싸우는 부모님을 흉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의 푸념들을 늘어놓았다. 영혼이 가출한 나로서는 "그래~ 그렇구나. 어이구!"라고 간신히 대답만 할 수 있었고, 언니는 나의 대답이 성의 없다며 "얘, 너랑 전화하면 하나도 재미없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재미가 없댔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4~5번은 했다. 그런데 이젠 아침에 모닝콜을 한다. 주로 오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오는 언니의 모닝콜은 그 전날 장사의 대박쪽박 여부와 직원에 대한 칭찬과 불만, 진상손님과 단솔손님 이야기, 1년을 더 자시고도 여전히 싸우는 부모님 흉과 오늘 하루 장사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그 시간이면 나는 가족들이 널브러 놓은 집안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거나 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잠시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생각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언니가 새해 아침부터 띠별 궁합을 이야기한 이유는 역시 새로 뽑은 직원 때문이었다. 언니 말을 빌자면 장사를 하다 보면 직원이 진심을 다해 일하는지 아닌지 보는 눈이 생긴다는데, 이번에 새로 뽑은 직원은 약삭빠르게 눈치를 굴리는 모습이 빤히 보인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보다 못한 언니 결국 그 직원에게 쓴소리를 했고, 정곡을 찔린 직원은 언니에게 미안하다며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을 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인정한 것이 기특했던 -직원이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언니는 그 뒤 그 직원에게 자상하게 일을 가르치며 농담도 던졌고 그러다가 무심결에 무슨 띠인지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뿔싸! 용띠란다.


 언니는 띠별 운세니 꿈 해몽을 참 열심히도 찾아본다. 본인은 재미로만 본다고 하는데 가끔 하는 말속에 해몽했던 대로 일이 벌어졌다는 둥, 수맥을 피해 머리를 뉘어야 한다는 둥, 스님이 올 한 해 대범하게 움직여도 좋다는 토정비결을 내놨다는 둥 하는 걸 보면 재미로만 그치는 건 아닌 듯싶다. 새해 아침부터 언니가 뜻하지 않게 알게 된 새 직원의 십이지 띠는 그동안의 일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하나, 2022년의 마지막 날에 고가의 접시까지 깨버렸다고 한다-. 새 직원에 대한 푸념과 올 겨울에 장사가 이렇게 안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2주 동안 휴가라도 내고 일본에 다녀올 걸 그랬다는 언니의 한숨 섞인 하소연을 모두 들어주고 난 뒤, 나는 힘내라는 말과 함께 오늘은 대박 나길 바란다는 진심 어린 응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모닝콜은 그래도 자정의 통화보다는 꽤 성실하게 받는 편이다. 영혼도 담겨있고, 맞장구도 맛깔나게 치고 나 역시도 밤의 통화보다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받게 된다. 통화 시간이 40분을 넘기기 시작하면 마음이 초조해지긴 하지만 -아침 9시 30분에 시작된 통화가 10시를 넘기 시작하면 어쩐지 그날 오전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기분이다 - "얘, 너랑 전화하면 하나도 재미없다!"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언니가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끝까지 성실하게 받으려고 노력한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언니나 엄마의 병적일 정도로 잦은 전화가 짜증 나고 성가시기만 했는데, 마흔을 넘기고 나니 내가 아니면 엄마와 언니의 응어리진 마음을 누가 들어줄까, 그들이 아니라면 나라는 존재가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다. 나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남편이 토끼띠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역시나 운세를 믿지 않지만 그냥 궁금해졌다. 주변 환경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섭다. 내가 아니라도 주변 환경이 기라고 하면 "그릉가? 그렇다면?!" 이 된다. 무심결에 초록창에 토끼띠라고 치니 참 친절도 하지, 올해의 운세부터 시작해서 토정비결, 띠별 궁합, 성격, 성공운, 토끼 꿈, 귀여운 토끼 이미지까지 참 찬란하다. 그중에서 2023년 운세를 비교적 상세하게 적어놓은 페이지에 들어가 읽어보았다. 그런데 언니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인가? 다른 건 훌훌 넘어가지는데 유독 토끼띠와 맞지 않는 띠궁합에 눈이 확 꽂힌다. 맙소사! 말띠란다! 허어, 이를 어쩌나... 내가 말띤데? 찬찬히 읽어본다. 토끼띠는 가정적이라는데 말띠는 자유분방하고 충동적이라 갇힌 환경을 싫어한단다. 맞는 말이다. 그런 말띠를 토끼띠가 가둬 놓으려고만 하니 말띠는 답답하고 토끼띠 입장에서는 밖으로만 나돌려고 하는 말띠를 이해할 수 없어 상극이라고 한다. 이것 또한 어느 정도 맞다. 남편은 모든 활동이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편이다. 취미도 한 자리에 앉아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조립하거나 만드는 일이고 운동은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도 내가 가자고 해야 가지 혼자서는 당일치기 나들이도 곧장 볼일만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반면 나는 한번 나가면 최대한 모든 것을 누리고 돌아오려고 한다 -청년 시절에는 돌아오는 것조차 아슬아슬했다-. 그 누림의 범주에 스포츠 같은 활동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만 남편이랑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다르다. 나는 박물관과 도서관 미술관, 연주회, 공연, 산책, 소모임을 좋아하지만 남편은 수영장에서 멍하니 둥둥 떠있기, 온천 목욕, 숙소 안에서 텔레비전 보며 뒹굴기, 맛집 가기, 가끔 아이와 모노레일이나 집라인을 탄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나마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은 자기도 스포츠를 좋아한다면서 레이싱을 하고 싶다지만 그건 엄연히 말해서 기기 조작이지 스포츠는 아니다. 게다가 나는 바이크든 경주용 자동차든, 목숨을 담보로 한 스피드는 딱 질색이다.


 말띠 운세에도 토끼띠가 상극일까 싶어 내친김에 말띠를 찾아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쓸데없는 짓이었는데, 당연히 똑같은 점괘가 나왔다. 상극이란다. 말띠의 상극은 그 외에도 많았다. 돼지띠와도 맞지 않고 용띠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닭띠는 아주 머리채를 잡고 싸울 판이다. 허어, 이거 점점 심각해진다. 언니가 돼지띠요 엄마가 용띠, 아빠가 닭띠인데 운세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이 지구상에 없어야 한다. 말띠랑 어울리는 십이지는 겨우 양띠와 개띠뿐인데, 내 주변에 양띠는 없고 딸과 조카가 개띠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하나 어쩌나...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해 초록창을 닫으려는데, 마지막 문장이 친절하게 확인 사살까지 해준다. 토끼띠와 개띠는 경제관념이 없어 지출이 많고 말띠는 충동적인 지출이 있어 돈을 모으기 어렵단다. 산너머 산이다. 투명한 유리잔에 찬물을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노트북 화면을 닫고 거실 한가운데 앉아서 오늘도 뭔가를 꼼지락꼼지락 만들고 있는 남편을 본다. 평화로워 보인다. 행복해 보인다. 좋아 보인다. 운세는 어쩌면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 나와 남편은 신혼 초에 서로 다른 성격 때문에 자주 다투곤 했다. 운세에 나온 성격대로였다. 그런데 결혼 생활이 지속되면서 아이가 생겼고, 아이가 생김과 동시에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변해야만 했다. 바깥 활동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새 집안에서 글을 쓰며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알게 됐고, 남편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서로 이런 평화로운 상태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제 예전만큼 사람이나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모임도 서로 마음이 맞아야 안식이 되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자기 성공과 행복을 나열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는 타인의 열등감을 부추기고 자존감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내 존재감마저 딱 그 정도 수준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딸을 낳고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처음에는 남편이 나를 집안에만 가두려 한다고 생각했었다. 반대로 남편은 가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생리와는 맞지도 않는 사회생활을 20년 가까이했다. 서로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살아왔지만 우린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원동력에는 아이도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었다. 그러니 운세에서 이야기한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극 관계는 아닌 것이다. 남편은 나를 믿었다. 내가 방랑벽을 잘 조절하고 가정에도 헌신적인 존재가 될 사람이라는 것을 믿었다. 나는 남편이 가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사람이라는 걸 믿는다. 이제는 나를 가두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지지해줄 사람이라는 것도 믿는다. 그 모든 것은 가정이라는 틀이 깨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20년 가까이 되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터득하게 되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옛말처럼 부. 부. 관계는 결국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 아닐까. 내가 유일하게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 사람과 맺은 오랜 인연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말띠와 상극인 돼지띠와 용띠, 닭띠 그리고 다시 토끼띠는 나의 친정 식구들이다. 호칭만으로도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드는 관계들이다. 서운함, 원망, 화, 눈물, 슬픔, 억한 마음, 우울, 좌절, 절망, 미움, 애증, 사랑, 감사함, 잠깐의 행복, 생각해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안타까움, 또다시 이어지는 슬픔, 회한, 어쩔 수 없는 동정, 미안함, 죄스러움, 미안함, 죄스러움... 다음 생에 이 구성으로는 다시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무한한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존재들. 부디 행복하길 바라게 되는 마음 아픈 존재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간중간 끊어질 듯 계속 이어져왔다. 우리는 궁합이 완전히 망한 가족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때론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옆으로 갈지자로 가기도 하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었고, 그러다 결국 어디로든 다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지금에 왔다. 징그럽게 궁합이 맞지 않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전화를 하고 확인을 하고 시끄럽게 한바탕 난리를 쳤다가 각자 마음을 쓸어내리고 다시 만날 준비를 한다. 여전히 어디론가 간다.


 그러니 상극이라는 띠별 운세는 결국 죄다 틀린 것이 아닐까? 허울 좋은 변명처럼 들린대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음양오행이니 토정비결이니 띠별 운세를 믿지 않으니 큰소리쳐본다. 그까짓 궁합, 결국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 아닌가요 점사님들? 궁합이 맞다가도 살다 보면 아니올시다일 수도 있고 궁합이 정말 망한 구성이라도 살아보니 그냥저냥 살만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조차 모르는 게 사람 속인데, 가보지 않고 어떻게 안다는 겁니까. 그러니 올해 결혼운이니 성공운, 취업운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저는 운세를 믿지 않습니다만 감히 제가 점괘를 봐드린다면,

당신 마음만 진심이라면

궁합이 맞지 않아도 일단 G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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