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건 고단하다
남한산성 둘레길
발걸음에 리듬감이 붙고 앞뒤로 움직이는 팔이 더는 부자연스럽지 않을 때, 등에 맨 가방의 흔들림도 하나처럼 될 때면 일정 궤도에 오른 거다. 그렇게 걷는 순간 잡념은 사라진다. 도심에서 시름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할 때 브레이크 없는 걸음은 과속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경사가 있는 산이라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그 무엇에 대한 여유는 없다. 그 시각 올라야 한다는 의지를 넘어설 의식이 있을 리 없다. 리듬감 있는 발걸음이든 그 어떤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오르막이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좋아 걷는다. 그래도 걷는 건 고단하다.
남한산성 둘레를 걷고 고단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지나치다 못해 황당하다. 가장 긴 코스가 3시간을 조금 더 걷는 정도다. 남한산 아래에서 올라서는 게 아니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버스 종점에서 산성에 다다르기까지 짧은 오르막을 제외한다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무난한 길이다(물론 그 난이도라는 건 개인차가 있을 터, 이 날 동행했던 지인은 힘들어했다).
동장대 터에서 벌봉 가는 성벽길버스 종점에서 동쪽으로 가면 만나는 동문을 시작점으로 잡는다. 산성의 문은 오래된 듯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성벽 또한 그러한데, 오래된 듯한 성벽은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고, 새로 쌓은 성벽은 회칠이 허연 게 ‘남한산성’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다. 장경사를 지나 동장대 터가 나오기 전까지 오른다. 산성 건너 산엔 진달래와 벚꽃이 땡땡이 옷처럼 푸른 산 등판에 점점이 박혔다. 무엇으로 바쁘고 여유가 없었을까, 도심에서 보지 못했던 봄꽃을 여기서 본다. 낮은 산이지만 그래도 산이라고 도심에서 지나버린 봄꽃의 절정이 여긴 지금이다.
홀로 걷고 싶을 때가 있고 함께 걷고 싶을 때가 있다. 변덕스럽게도, 홀로 걸으면 동행이 있길 바라고, 함께 걸을 때는 홀로 걸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경우가 있다. 걸으면서 찾아든 행복과 멋진 풍광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 싶은 그리운 사람이 있기 때문일 테고, 서로 격려하고 힘이 되어주면서 나누는 괜찮은 수다 뒤로 조용한 고독 같은 걸 바라기도 하기 때문일 테다. 것들은 사는 것과 참 비슷해 슬픈 일이다.
답답한 대기 아래 고단한 삶들이 있을 테다.남한산성 둘레길에서 동장대 터부터 북문을 지나는 길이 걷기도 좋고 경치도 좋다. 서문 쪽보다는 인적이 드물고 오르내리는 길이 있어 걷는 맛을 더한다. 탁 틔인 경치는 일품이다. 눈 내린 따뜻한 날에 걸으면 좋을 법한 곳이다. 서문에서 보는 서울 풍광은 언제나 그렇듯 답답하다. 뿌연 대기는 서울의 일상을 상징하듯 다시금 저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 꺼리게 한다. 사는 건 고단하다. 제아무리 평범해 보이더라도 고단한 건 고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