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젠간 진짜 어른이 될 수 있기나 할까
가장 친한 친구랑 대화를 하면 정말 끝이 없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팬을 빌려주면서 급격한 속도로 친해진 친구 V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하루 종일 수다를 떨고 왔는데도 부족하다고 느꼈었다. 그래서 방과 후 서로 이메일을 매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 메일들의 내용은 그다지 깊은 내용이 없었던 거 같다.
다만 얼마나 서로의 하루를 조그마한 일부조차도 나눠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각각 다른 곳에 가게 되며 이메일은 서서히 끊기게 되었고, 서로 삶이 바빠지자 연락도 하기 힘들어졌다. 조금은 섭섭하지만 나조차도 새로운 곳에 새로운 사람들과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평소 익숙한 것에만 기대는 나에겐 낯선 환경이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새로운 좋은 친구들을 가까스로 사귀게 되었지만, 역시나 맘 편히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말동무가 되어 줄 수 있는 친구는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구 V가 너무나도 그립고 보고 싶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나의 "어른" 내면은 이것 또한 스스로 지나가야 하는 시기라고 계속 부추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정말 "진정한" 어른이 되려고 나 자신을 아등바등하게 만든 것 같다.
내가 생각했었던 진짜 어른이란, 어떤 힘듦도 혼자 어떻게든 이겨내 가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2년이 지난 후, 친구 V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여졌다.
항상 나의 모든 하소연을 언제나 받아주던 든든한 친구가 그날따라 하나도 힘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반가운 친구 만났는데 왜 이리 슬퍼 보여?"
나는 일부러 밝은 분위기를 내고자 친구를 장난스럽게 쿡쿡 찌르며 먼저 말을 걸었다.
"야.. 나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학교에서 마음 통하는 친구 하나 찾지 못했고
지난 2년 동안 정말 너무나도 외로웠어.
그런데 가장 섭섭했던 건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너의 연락이 전혀 오지를 않았다는 거야.."
순간 나는 어떻게든 단단해진 어른이 되어보려던 억지스러운 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곤 정말 바보 같지만 갑자기 눈물이 고여왔다.
지금까지 가장 편한 사람과 장소만 찾으려는 나 자신을 바꾸려느라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일까.
그렇게나 맘속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던 친구의 상황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이기적 이게도 난 그 친구가 잘만 지내고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 친구는 언제나 나의 문제들 속에 해결책만 찾아 주던 똑 부러진 애였스니까.
'나보다 더 멋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겠지. 그러니까 난 더욱더 나에게 채찍질하며 어른이 되려고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그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것을 가장 꾹꾹 눌러놓고 있었는데,
막상 그 친구가 제일 힘들었을 땐 옆에 있어주지 못한 내가 너무 죄책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또한 그 친구도, 나도 똑같이 서로를 너무 그리워했다는 점에 또다시 눈물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이건 정말 복잡한 나 혼자의 내면적 갈등이었다.
그 후 우린 서로 부둥켜안으며 울다가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하루가 지나가도록 말했다.
그리곤 서로 외롭고 힘들 때마다 꼭 메세지라도 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하여 지금까지도 다른 나라에 있지만 서로 연락하는, 정말 서로 이 세상에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어 버렸다. 우린 이제 벌써 10년 지기 친구이다. 아직도 그 하루를 생각하면 친구가 격하게 보고 싶어 지고 껴안아 주고 싶어 진다.
무엇이든 혼자 잘 해내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
하지만 진정한 어른이란 또 다른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지 내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사실 나이는 순식간에 늘어가기만 하는 것 같은데,
아직도 "어른"이라는 기준이 나에겐 너무 높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준이라는 것도 아직까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어른이 되려는 스스로의 압박감을 조금은 덜어 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뭐든 억지로 되려는 것은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