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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싫었던 진짜 이유

by 충만한삶

“와! 비다!” 아이들이 창밖을 보며 즐겁게 외친다. “비가 그렇게 좋니? 난 비 오는 날 싫던데..”

“비오는 날이 왜 싫어요?” 아이들이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묻는다. 도통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다. 나는 오히려 비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이해가 안 가는데 말이다.


언제부터 비를 이렇게 싫어했던가 기억을 더듬어본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는 아침에 비가 오면 싫다는 느낌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빗속에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부터 비는 썩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었던 것 같다.


대학생은 공식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사실 진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성인은 아니다. 그러나 직장인은 달랐다. 사회에 속한 진짜 성인이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 덕분에? 하루하루가 그다지 즐겁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내리는 비가 그래서 달갑지 않았다.


비가 오면 출근길은 더 어려웠다. 일단 기분이 가라앉아 회사에 가는 길이 더 힘들기도 했고, 비가 오면 차가 막혀 시간도 더 걸리곤 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면 내 우산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우산도 내 몸에 닿아 불쾌해지기도 했다. 특히 첫 직장은 지하철을 갈아타고 한참 걸어야 했는데 비오는 날 특히 그 길이 길고 축축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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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아무래도 내가 비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돈을 벌러 가야 하는 그 길이 더 무겁고 고되게 느껴져서 인 것 같다. 회사를 휴직하고 또 아이들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비가 전처럼 싫지 않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아침에 시간 체크 해가며 아이들과 나를 닥달할 필요가 없고, 밖에 꼭 나가지 않아도 되니 싫을 이유가 없어진 것 같다. 오히려 아침에 비를 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가 오면 여기저기 쑤시니 그것도 비가 싫은 하나의 이유일까 생각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몸이 좀 쑤셔도 이제는 비를 기쁘게 바라 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상 비는 회사 가기 싫은 마음을 더 증폭시켜 주는 하나의 장치였던 것이다. 회사는 가기 싫지만 가지 않을 수 없으니 그걸 표면 상 드러내 굳이 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부정적인 감정은 남아 회사가는 길을 더 어렵게 만드는 비에게 그 화살이 돌아간 것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비를 아름답게 바라 볼 여유를 빼앗는 것일까? 깔때기 법칙 처럼 오늘도 결국 아이들에게 생각이 옮겨간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지금 그토록 좋아하던 비를 싫어하게 될까? 아니면 비와 현실을 잘 조화시키며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가게 될까? 후자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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