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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시야간숙소 Aug 12. 2021

랑케의 역사주의 역사관

실증주의가 아닌 역사주의


1) 역사주의 역사관이란 무엇인가?
 
 역사주의는 때로는 역사적 사건들의 일회적인 개성을 강조하는 주장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때로는 역사법칙이나 역사적 예측과 연관되기도 하고, 이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역사주의는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 수만큼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아야하며, 도저히 어떤 고정된 의미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이한구, 2011, 97p) 따라서 ‘역사주의’는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학자마다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다. 다만 그 정의들 속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추출해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모든 사물과 사실이 역사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갖는다고 보고, 역사성을 통해 이들을 설명하고 평가하고자 하는 특수한 사고방식”(이한구, 2011, 98p), “어떠한 사건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가치에 대한 합당한 평가는 하나의 발전 과정 속에서 그것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와 수행했던 역할의 견지에서 그것을 고찰함으로써 획득될 수 있다는 믿음.”(김헌기, 2010, 5p), “과거의 사태를 당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동시에 현재를 역사의 산물로 이해하려는 경향”(박상현, 2015, 284p) 이 세 가지의 역사주의에 대한 정의를 보면, 보편적인 의미를 추출해낼 수 있다. 주목해야 할 단어를 중심으로 본다면 ‘모든 사물과 사실’, ‘어떠한 사건’, ‘과거의 사태’의 ‘본질’을 ‘역사성’ 혹은 ‘그것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설명‘ 혹은 ’고찰‘, ’이해‘하는 것이 역사주의라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역사주의는 “과거 사실의 개별적 사건들과 사실들이 개별적이고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며 역사 과정에서 그 각각은 자신의 시대와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역사주의의 의미를 순수한 그대로의 의미로 파악했을 때,역사주의적 역사관은 이전의 계몽주의적 역사관과 대비되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계몽주의적 역사관이 추구했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법칙과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적 역사관에서 진리란 서로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는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하며 보편타당한 진리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모든 역사적 사실은 역사적으로 주어진 어떤 것으로만 파악코자 하는 역사주의의 실증주의적 태도와도 연관이 된다. 역사 속의 개별적 사건이나 사실들은 그 자체로서 독특한 개성과 가치를 지니며 모든 사건은 반복되지 않으며 ‘일회적’이다.


2) 랑케의 역사관을 통해 본 역사주의 역사관
 
 “역사학은 미래의 이익을 위하여 과거를 판단하고 현재에 가르침을 주는 일을 맡아 왔다. 이 책은 그와 같은 원대한 임무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Fritz Stern ed., The Varieties of History: From Voltaire to the Present (Clevelnd, Ohio, 1956), p. 57.> 이는 랑케의 역사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이는 “역사서술은 이전 시대에서처럼 증빙되지 않은 자료를 가지고 주관적 평가에 좌우되거나 역사가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쓰여서는 안 되고, 철저한 사료 검증을 통한 하나의 ‘조직적인 지식탐구’로서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임성우, 2014, 93p)

 이와 같은 랑케의 역사관을 ‘실증주의적 역사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오류라 할 수 있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번역상의 문제로서 위와 같은 번역에 따르면 역사가의 임무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보일 수 있다. 앞서 역사주의적 역사관이란 과거 사실의 개별적 사건들과 사실들이 개별적이고 고유한 의미를 중요시한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랑케는 ‘사실의 나열과 기술’ 즉, 보여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가 아니라 개별적 사건들과 사실을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봄으로써 그 고유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고 보았다. 따라서 “다만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라는 번역은 “그것이 본래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것”로 번역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랑케의 역사관이 실증주의적 역사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실증주의란 구체적, 경험적 관찰을 통해 귀납적인 추론으로 ‘보편적/일반적’ 법칙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는데 랑케의 역사관은 보편적/일반적 법칙의 성립을 전제로 과거의 구체적, 개별적 사건과 사실들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랑케 역사학의 핵심은 과거 사실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입견이나 편견, 이해관계를 벗어나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가 관찰하기 전에 이미 실재(實在)로 존재하며,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랑케 역사학은 헤겔의 역사철학과 비교되는데 실제로 랑케가 헤겔의 역사철학과 대결하면서 그의 역사주의적 역사관을 정립해나갔기 때문이다. “랑케는 헤겔의 역사철학이 실제 사건과는 관계없는 추상적인 원리들을 통해 역사적 현실에 접근하기 때문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관념적인 철학에 그치는 것이며 사건 그 자체를 철학자의 이념에 종속시킨다고 보았다.”(김헌기, 2010, 13p) 따라서 랑케는 개별적인 사건과 사실에 주목하였으며 그 각각은 전일적인 보편성이 아니라 각자의 본질과 원리에 의해 발전해 나아간다고 보았다. 결국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일종의 ‘구체성 추구’는 과거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랑케는 한 시대에는 각각 개별적으로 독립성과 가치를 갖는 사실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이전 시대가 이후 시대의 수단이나 과정이 되지 않으며, 각 시대는 독자적인 성격과 의의를 지니며 그 자체로 완결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랑케가 그의 역사학에서 ‘보편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일까? “일견 그는 역사의 일반적 원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듯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역사발전의 보편성을 강조한다.”(김헌기, 2010, 14p) 앞서 역사가의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원리에서 시작하여 구체적인 사건과 사실들을 종속시키는 이전의 역사학(구체적으로 헤겔의 역사철학)을 비판했지만 개별적인 사건과 사실들에는 그 본질과 원리가 ‘내재’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본질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정신과 원리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사건과 사실들은 그 고유한 성격을 보존할 수 있다.


“인간사에 대한 지식 획득에 있어서는 두 가지 방식, 즉 개별자의 인식을 통하는 방식과 추상을 통하는 방식이 있다. 전자는 역사학의 방식이고 후자는 철학의 방식이다. … 개별자들은 개별자들에 이어져 있고, 이 모든 개별자들은 모두 오직 하나의 공통의 도덕적 원리에 붙들려 있다. 내 견해를 밝히자면, 최고의 역사과학은 그 고유한 방식을 통해 개별자에 대한 응시로부터 사건들에 대한 일반적 관념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건들의 연관성의 인지로의 상승을 요구하며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On the Relation of History and Philosophy』 中
 
“개별자는 보편자를 내재하고 있다. … 인식들의 통일성에 대한 견해는 개별적인 인식들의 다양성으로부터 부지중에 생겨난다.”
『The Great Powers』 中


 형태적으로 보았을 때 추상(보편)에서 구체(특수)로 나아가는 헤겔의 방법론과 구체(특수)에서 추상(보편)으로 나아가는 랑케의 방법론은 순서만 거꾸로 되었을 뿐 보편적이고 일반론적인 법칙을 수립하고자 하는 목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개체적․보편적 역사 발전의 원리의 원천을 역사의 외부에 있는 신에게 둠으로써 양자의 조화를 시도하였다.”(김헌기, 2010, 16p) 그리고 이러한 신성(神性)은 역사진행 자체를 좌우하지는 않으며, 다만 그 진행 속에 내재하고 있을 뿐으로 보았다.<이와 같이 랑케가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에 대한 혹독한 비판도 존재한다. “신의 “신성한 비밀문자”가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 위에 숨어서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 역사가의 사명이란 역사상 나타나는 개별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만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형이상학적 실체와 세속 역사에 나타난 현상들의 보이지 않는 연결성이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는 것이라 믿었다. 다시 말해 엄밀한 검증을 거친 사료에 입각한 역사서술이야말로 신의 의지를 드러내는 최선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역사가의 사명은 성직자의 사명과 유사한 것으로 역사 속에 담겨진 신의 비밀문자를 해독하는 임무를 지닌다는 것이다.“(임상우, 2014, 94p)>



✎ 참고문헌

· 김헌기, 「봉쇄의 담론으로서의 역사주의 비판 : 랑케의 역사담론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2010
· 이한구, 「역사주의와 반역사주의」, 한국사학사학회, 2011
· 임상우, 「[서양사] ‘과학적’ 역사학과 국가주의 역사서술」, 역사학보, 2014
· 박상현, 「계몽주의와 역사주의」, 사회와 역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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