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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시야간숙소 May 23. 2023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 비판

비역사성에 대한 비판

약 8년 전에 쓴 글... 갑자기 생각나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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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생리(먹고 쌈)와 생식(낳고 기름)의 문제를 군집생활을 통해 집단적으로 해결하는 종으로 진화했는데 군집생활을 통해 생리와 생식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물종 내의 개체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새로운 구조(분업)가 등장했다. 이는 일상생활을 만들어내는 각 기능들이 결합된 관계로서 곧 경제라는 구조. 분업은 종의 재생산을 위한 생리와 생식을 통제하는 구조로서 인간 사회에 보편적인 구조인데 이 구조는 ‘생산’이 등장(농업혁명)하면서 비로소 출현했고 생산은 단순히 자연의 결실을 따먹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과정을 인간의 노동을 통해 재현하고 통제하는 것이었음. 이제 자연에 곡식을 길러서 생산량을 산출해내는 일련의 과정(지금이라고 한다면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련의 과정)을 누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그로부터 산출된 잉여생산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을 둘러싸고 분업이 발생하는 것.


  이 분업은 교환을 이끄는 분업(사회적 분업 : 누구는 쌀을 생산, 누구는 옷을 생산) 뿐 아니라 기술적 분업(누구는 계획하고, 누구는 감독하고, 누구는 업무를 수행하고 등)을 의미함. 결국 역사적으로 인간 사회는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분업을 하고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하여그리하여 어떤 특정한 구조를 낳는지를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따라서 생산재생산분업은 모든 인간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틀. 현재로 치더라도 생산과 관련해서 어느 기업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들이 어떻게 교환되어 결합되는지를 설명하거나 생산된 재화를 바탕으로 어떻게 재생산을 하는지, 노자대립(노동자vs자본가)이라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그 안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여성/남성, 육체노동/지식노동이 어떻게 ‘분할’되어 시스템이 굴러가는지,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의 인구비율도 따져볼 수도 있고 등등. 이런 차원에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을 중요한 문제(여성의 탓이 아닌 거시경제적 관점에서)를 볼 수 있을 것.


 이런 관점에서, 가라타니 고진(이하 고진)이 ‘교환양식’에 주목하는 것은, 기껏해야 사회적 분업만을 설명할 수 있을뿐더러 사회적 분업에서의 교환만을 특권화하여 역사의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시켰음. 수없이 비판되어 온 마르크스의 도식적인 ‘역사적 사회구성체’를 반복(“다섯 가지의 생산양식(원시적, 아시아적, 고전고대적 봉건제, 게르만적 봉건제, 자본제)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 44p, 『세계공화국으로』)한 것이나 다름없음. 이는 ‘정치철학적’사고에 빠져(‘초기’ 마르크스 또한 헤겔의 관념론적 정치철학과 완전히 ‘단절’하지 못했음) 역사와 경제학을 배경에 두지 않았기 때문. 고진이 역사와 경제학을 배경에 두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많은 곳에서 드러남.


① 복지국가의 성립과 쇠퇴를 사회주의권의 생성과 소멸로서만 분석정치적/경제적/역사적 요소에 대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음


복지국가로의 동기는 90년 이후 ‘사회주의’권의 소멸로 사라졌다. (16p)
국가사회주의의 소멸은 그 이전부터 복지국가가 실현되어 사회주의가 실업이 없다는 것만으로 매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19p)
복지국가는 국가사회주의에 대항한다는 동기에 의해 성립했다. (20p)


먼저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흔히 베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 노선은 19세기 말 불황(1873~1896) 이후 영국의 벨에포크 시기, 자본의 이윤율 저하로 인한 자본주의 붕괴가 비현실화됨에 따라 자본주의가 영원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의회를 통한 개혁에 초점을 맞추자면서 등장한 것이었고, 1920-30년대 대공황에 대한 자본의 대응(케인즈주의적 노선 : 유효수요 창출, 금융억압)이라는 ‘경제적 요소’가 복지국가의 성립에 영향을 끼침. 정치적으로 보자면, 복지국가는 1910년대부터의 현실사회주의권 성립(소련)으로 인한 유럽 내부 혁명에 대한 프리미엄이었고 스웨덴의 경우 2-30년대 노조운동의 활성화로 전국적으로 단결된 노총이 국가와 직접 임단협을 하면서 얻어냈던 것이었음.


 ② 종교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자의적이며 모순적


도시가 국가에 종속되면 자유도시는 성립되지 않음(동양적 제국, 동로마 제국) 반면 서로마제국은 봉건국가로 분립되어 황제는 명목전인 존재. 그래서 로마교회는 황제나 봉건제후에 대해 독립된 존재. 서유럽에 자유도시가 성립했던 것은 도시가 교황 측에 붙어 다양한 특권을 얻어냈기 때문. (70p)
보편종교가 호수적인 공동체, 즉 어소시에이션을 지향하나 이런 종교가 현실적으로 확대되고 정착하게 되면 국가의 종교가 되고 또 공동체의 종교가 됩니다. 동로마제국에서는 교회가 국가기구의 일부, 그에 반해 서유럽은 자치도시가 생기고 보편종교가 개시한 공간에 의해서 초래된 것. (108p)
서유럽도시에서 다양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사회운동으로 확대, 사회운동은 항상 종교적 부흥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음. ‘천년왕국’이라는 관념. 불교에도 천년왕국과 닮은 ‘말세’적 비전이 있음. 부르주아 혁명이 부르주아가 아닌 계급에 의한 사회운동으로 게다가 종교적 운동으로 개시되어 최후로 그것이 배제된 시점에서 성취되었음. 19세기 사회운동은 항상 종교적인 문맥과 결부. 생시몽 사회주의는 기독교적 색채. 종교를 비판해야 하지만 그것이 종교에 의해 개시된 윤리=교환양식을 부정하게 되어서는 안된다. (109-110p)


 요약하면, 동양적 국가가 성립된 곳에서는 종교가 국가기구가 되고, 국가가 성립되지 않았던 서유럽에서는 종교가 ‘보편윤리’를 제시함으로써 호수적인 공동체를 지향(그리하여 자유도시 성립)했고 이것이 다양한 종교개혁과 사회운동을 낳았다는 것. 우선 종교는 고진이 언급하기도 했지만 알튀세르가 말했던 대로, ‘이데올로기장치’. 중세만 보아도 교회는 봉건제의 일부였으며 봉건 시대 최대 지주로서 지배층을 형성, 농노에 대한 착취의 선두주자나 다름없었고, 교회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 경제활동 또한 마찬가지여서 당시 교회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팔아서는 안 되는 하느님이 주신 시간을 파는 것을 의미하고, 이자를 받는다는 건 일하지 않고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기도 했음. 유럽에 자유도시가 성립했던 것은 도시가 교황 측에 붙어 다양한 특권을 얻어냈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중부유럽의 경우 신성로마제국 안에서 황제와 교황의 다툼 속 도시가 황제에게 붙었다, 교황에게 붙었다 하면서 특권을 따내긴 했지만) 이탈리아의 경우 주교의 도시 통치에 귀족과 상인이 연합하여 반발함으로써 독립적 도시국가로 발전했을 뿐더러 이것은 보편종교가 개시한 공간’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상업의 발달로 인해 초래된 것이었음. 물론 중세 기독교가 종교개혁을 초래할 정도로 원시 기독교의 사상과 윤리와 괴리되어 변질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사실 이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이며 종교의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진행과정을 거세한 것일 뿐임. 종교가 개시한 윤리가 자치도시의 성립, 사회운동의 확대를 낳았다는 것은 물론, ‘천년왕국론’이 사회주의 사상의 발달 과정에서 초기 사회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것을 ‘과잉해석’할 필요는 없음. 종교개혁 때 일어난 ‘농민반란’ 역시 종교개혁가들은 탄압으로 일관, ‘종교 이상의 것’은 건들지도 않았음. 이 주장은 고대 말 – 중세 초의 일부 기독교인들이 노예제 폐지를 ‘기독교 윤리 전파설’(기독교 전파설의 경우 노예제의 쇠퇴가 신약성서의 교리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주장이지만 노예제도에 대한 고대와 중세 초기의 기독교인들의 실제 태도는 현실의 노예제를 인정했고 노예에 대한 인간적 대접 노력도 사회적으로 노예제를 인정하는 위에서 행해졌을 뿐이라 기독교는 노예제 쇠퇴의 직접적이고 결정적 요인이라 할 수 없음. 이기영,「서유럽에서 노예제사회로부터 농노제로의 이행과정」,『서양사론 제99호』)로 설명한 것과 다르지 않음. 결국 ‘경제적/정치적/역사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줌.


 ③ 교환만을 특권화하여 역사의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


상품교환은 공동체 바깥 사이에서(내부는 호수적 교환), 약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 한함(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에 의한 지배 하에서만) 그래서 미개사회(예컨대 서태평양의 섬들 사이의 교역)는 상품교환이 존재하지 않음. 왜냐하면 다수의 부족공동체는 전체로서 일개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고, 교환이 실익이라기보다는 교환을 통해 공동체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 (79-80p)


우선 교환만을 특권화하여 역사적 사회구성체들을 교환양식으로 설명한 것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 담긴 이론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비판은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으로 고진의 ‘비역사적’태도를 비판할 수 있음.     


 폴라니에 따르면 19세기에 자본주의가 완전히 꽃피고 나서야 ‘대전환’이 일어났다. 즉, 자체조절적인 시장이 자신의 진짜 차원을 얻게 되고 지금까지 지배적이었던 사회적인 것을 오히려 종속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급변이 있기까지는 단지 규제되는 시장, 가짜 시장, 내지는 비시장만이 존재한다고 그는 말한다. 소위 ‘경제적인’ 태도와 무관한 교환의 예로서 폴라니가 들고 있는 것은 상호성의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의식적인 교환이라든가 원시 국가가 생산을 압수한 후 행하는 재분배라든가, 아니면 교역항을 든다. (…)
 이 이론이 가진 문제라면 그것이 전적으로 몇몇 이질적인 조사에만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19세기의 ‘대전환’에 대한 논의를 할 때 (17-18세기에 발전한 대단히 다양화된 상업조직들보다) 포틀라치(족장의 지위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선물을 나누어주거나 자기 소유물을 과시적으로 없애버리는 행위를 하는 것)나 쿨라(트로브리안드 제도에서 의례적인 선물교환 제도. 이 교환행위는 소비가 목적이 아니라 여러 부족들을 결속시키는 연대감을 강화시키는 것이 목적)를 넣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결혼관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레비-스트로스의 친족관계에 대한 설명을 갖다 붙이는 것과 같다. 사실 여기에서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역사의 현실에 접근하고 다시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더 나아가는 데 대해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인 것 같지 않다. 그는 에레네스트 라부르스나 빌헬름 아벨, 혹은 아니면 가격사에 관한 그 많은 고전적 업적 중 어느 것 하나 인용하지 않고 있다. (…)
 어떤 교환 형태는 경제적이라고 이름 붙이고 어떤 또 다른 형태는 사회적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모든 형태의 것이 경제적이고 또 사회적인 것이다. 수세기 동안 아주 다양한 사회경제적인 교환이 존재했고 그것들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다양성 때문에 서로 공존했다. 상호성이나 재분배 역시 경제적인 형태이며 아주 일찍부터 유상 활동이 이루어지던 시장 역시 사회적 실체이면서 동시에 경제적 실체인 것이다. 교환은 언제나 대화이며 가격은 어느 순간에도 변화한다. 가격은 여러 종류의 압력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공급과 수요의 명령에도 반드시 복종하는 것이다. 19세기 이전에 ‘진정한’ 자체조절적인 시장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핵심 요소로서 흔히 가격 통제라는 것을 들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언제나 있었던 일이고 심지어 오늘날에도 있는 현상이다. (…)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한 지역 내의 여러 시장들 사이에 가격이 같은 방향으로 변화한다면 그때부터 시장경제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그것이 상이한 사법 지역 및 통치 영역을 넘어서 일어난다면 더욱 특징적인 현상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역사상 유일하게 자체조절적인 시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19-20세기 훨씬 이전부터도 시장경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고대부터 가격은 변동을 계속해왔다. 13세기에 들어가면 이미 전 유럽에 걸쳐 가격이 함께 변동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점점 더 엄밀한 경계 내에서 가격 변동의 방향이 뚜렷하게 일치했다. 심지어 18세기에 사부아 지역의 포시니에 있는 작은 읍들을 보더라도 이곳이 상업적인 연결이 좋지 않은 고산지역에 있는 곳인데도 이 지역의 모든 시장들에서 수확과 필요에 따라, 즉 공급과 수요에 따라 매주 가격이 함께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
 확실한 것은 폴라니가 소중히 이야기하는 비시장 이외에도 비록 규모는 작아도, 언제나 순전히 유상(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교환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마을의 틀내에서든, 아니면 여러 마을로 이루어진 틀내에서든 비록 소규모 수준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시장이 존재해왔다. (…) 그리스 도시는 심지어 원거리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대규모 도시 시장도 알고 있었다. (…) 훨씬 후대인 12세기 이후 이탈리아 도시들이 다른 지역에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다 같은 연유이다. 모래밭 위에 있는 척박한 텃밭만 가지고 있는 베네치아를 누가 먹여 살리겠는가? 결국 시장경제는 한걸음씩 만들어졌다.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브로델의 비판을 간단히 요약하면, 자본주의 이전 교환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교환의 역사적 변화의 과정, 각 시대별, 각 지역별 교환의 형태와 성격에 대해 일부를 특권화하여 ‘단순화’시켰다는 것. 즉, 호수적 교환은 사회적, 자본주의 성립 이후에 상품교환은 경제적이라고 이름붙인 것. 물론 고진 역시 사회구성체마다 지배적인 양식이 있을 뿐 다양한 교환들이 섞여 있음을 언급하긴 했으나, 그 발전과정 자체를 자신의 정치철학적 틀인 국가-네이션-자본을 가지고 단순화시켜서 설명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비역사적인 논리가 되었다는 것. 따라서 고진에게는 브로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지난날의 사회학자들이나 경제학자들 그리고 오늘날의 인류학자들이 역사에 대해서 거의 전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런 만큼 그들의 일이 쉬워지기는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리하면, 생산, 재생산, 분업이 역사와 인간사회를 파악하는 핵심이며 그가 주목한 교환은 기껏해야 사회적 분업만을 설명할 뿐이며 이를 특권화시켜 시장경제발전의 역사적 과정은 거세한 채 역사를 ‘단순화’시켰다는 것. 그가 국가의 자립성을 얘기하기 위해 의회민주주의가 가리고 있는 관료제 지배를 설명하는 부분(“시민혁명 이후 국가질서는 노골적 폭력에 의해 유지될 필요가 없고,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가족, 학교, 교회) 존재. 그러나 이것도 국가를 내부만으로 보고 있어서 국가 특유의 권력은 볼 수 없음. 국가의 자립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군, 관료기구라는 실체. 오늘날에도 의회제 민주주의가 발달하나 관료제의 지배는 점점 강화. 의회민주주의는 실질적으로 관료가 입안한 것을 국민이 스스로 결정한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정교한 절차” 130-131p, 『세계공화국으로』)도 마찬가지. 문제의 실체를 자기가 정치철학적으로 단순화 시킨 ‘국가의 특징’인 ‘관료기구’로만 보고 있음. 의회민주주의는 단순히 국가의 관료제적 성격을 가린다고 말하기보다는(이 주장은 직접민주주의류의 주장과 비슷함) ① 세계경제/정치가 통합되어가면서 일국적 차원의 정책이 불가능한 상황이 점차 초래된다는 것(국민국가의 해체적 성향) ② 전반적인 이념의 소실 속 보수적 정치지형으로의 단일화로 인해 ‘정치의 위기’가 심화되고, 행정기술적 관료들에 의한 운영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게 훨씬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것.     

 고진의 주장이 ‘비역사적’이라고 한 것과 별개로 가장 큰 문제는 그의 정치철학적 주장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가 부재하다는 것임. “애초에 부의 격차가 생기지 않는 교환시스템을 실현하는 것(186p)” “한 나라만의 사회주의혁명도, 그리고 동시적 세계혁명도 있을 수 없다면, 여기서 열쇠가 되는 것은 19세기 동안 죽 무시되어 왔던 칸트의 ‘세계공화국’이라는 이념. 국가들이 주권을 양도함으로써 성립, 그를 위해 제일보로 국제연합을 구상 위로부터 국가들을 억압하는 것(203p)”이라는 그의 주장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단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음. 그가 비판한 대로 민족주의에 무너진 ‘세계혁명’에 대한 한계가 마찬가지로 그의 ‘세계공화국’에 적용될 수밖에 없는데, 역사적 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를 넘어설 수 없는데 어떻게 주권을 양도하는 세계공화국이 성립하는지. 그리고 그 양도한 주권은 ‘누가’ ‘어떻게’ 통제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부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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