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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Nov 11. 2024

비밀을 품은 술, 천비향

-평택 [좋은 술]

15세기 독일 바이에른의 공작 알브레트 4세는 맥주를 만들 때 물, 맥아, 홉만을 사용하라는 법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맥주순수령'. 맥아와 홉에 물을 아무리 섞어 시큼하고 거무스름한 죽밖에 안 될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이나 미생물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절이니 이해해 줄 여지는 있다.

  

탁주는 쌀과 물. 누룩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 조상들은 발효를 주로 하는 효모가 무엇이고 부패를 일으키는 균이 어떤 녀석인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미생물이나 세균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았던 셈이다. 물론 독일의 맥주업자들도 야생의 균을 포집하거나 이미 맥주를 만들고 남은 효모를 재활용하는 방법  등을 사용해 맥주 순수령 시대에도 술을 만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술이 되지 않는다. 고귀한 공작님께서 그 사실을 모르셨을 뿐.


김승우 부대표가 양조장에 대해 설명했다.


다시 말하지만 탁주는 쌀과 물, 누룩으로 만든다. 누룩에는 쌀 속의 다당을 단당으로 끊어낼 수 있는 효소가 들어있다. 누룩 속 효모는 효소가 신나게 잘라놓은 단당을 먹고 알코올을 생성한다. 알코올 발효에 관여하는 효모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외우기 힘든 이름을 가졌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효소와 효모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만 기억했다. 문제는 그 효소와 효모의 활동을 인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누룩에는 효모와 효소뿐 아니라 젖산균, 초산균  같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효모가 활동을 하기도 전에 다른 균들의 세상이 된다면 좋은 술을 얻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좋은 술을 만드는 첫 관문은 번성하는 효소였다.


직접 빚는 누룩들

효소가 왕성하다는 것은  효소의 숫자가 많아진다는 말이다. 조상들은 밥, 죽, 범벅 등 익힌 쌀에 누룩을 넣고 효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효소가 와글와글 잔치를 벌일 때 그것들의 먹이가 될 다당류를 더 투입했다. 살아남기 더 좋은 세상을 만난 효소의 숫자는 당연히 늘어난다


효소의 활동으로 단당류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효모도 제 세상을 만난다.  단당을 먹고 내뱉는 알코올의 양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부패에 관여하는 미생물의 활동까지 막을 수 있다.


조상들이 언제부터 이 과정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이 방법을 이용해 더 높은 알코올 도수와 풍부한 향, 깊은 맛들은 구현 했다.


시음주. 찐, 택이, 천비향, 어차피, 화주


처음 익힌 쌀에 물과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것을 밑술이라고 한다면, 효소가 왕성해질 시간을 골라 익은 쌀을 더 투입하는 것을 덧술이라고 한다. 밑술 단계에서 술이 완성되면 단양주라 부르고 덧술이 한번 투입되면 이양주, 더 투입되면 삼양주가 된다. 더 투입되면? 그땐 산수의 영역이다. 사양주, 오양주....... 덧술을 할 때마다 밥이나 죽, 범벅등을 새로 해서 넣어야 한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물론 그런 수고를 잊을 만큼의 효과도 있다. 잘 만들기만 한다면


깔끔한 양조장 내부


나와 같은 한 무리의 관람객을 태운 버스는 평택으로 향했다. 평택이란 도시는 여러 요소를 품은 곳이다. 도시 가운데로 커다란 하천 두 개가 지나며 넓은 평야를 만든다. 그런가 하면 평택항으로 상징되는 바다도 있다. 2004년 이후로는 미군이 상주하는 평택미군기지도 존재한다. 바야흐로 모든 것이 뒤섞인듯하나 나름의 질서를 내포한 도시다.


천비향의 증류주와 소주 선물세트는 평택미군기지의 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영농법인  [좋은 술]은 그런 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평택에서 재배한 쌀과 직접 만든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2013년에 설립된 [좋은 술]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예령 대표와 그의 기족들이 대를 잇고 있는 양조장이다. 대표와 함께 술을 만들고 있는 배우자 김승우 부사장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여기 있는 술들이 이곳에서 생산되는 것들입니다. 도수가 낮은 것부터 설명드리면, JJIN 핑크와 골드가 있습니다. 찐 핑크는 복숭아를, 찐 골드는 황금향을 이용했습니다. 둘 다 7도의 탁주입니다. 젊은 분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딸의 의견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택이와 천비향, 무궁화향이 은은한 증류주, 그다음이 프리미엄 소주입니다. 약주는 재고가 없어서 오늘 시음은 어렵겠네요."

  

천비향의 약주를 맛볼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나머지 술 만으로도 훌륭했다.


증류기

시음할 수 있었던 [택이]는 알코올도수 9도의 삼양주다.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한 후 누룩을 넣어 밑술 만드는 작업을 두 번 반복한 후 마지막에 찹쌀 고두밥을 넣어 완성한다. 부드럽고 담백하다.


[천비향]은 덧술 작업을 4번 더한 오양주다. 깊고 아득한 풍미가 있다. 이렇게 만든 술은 낮은 온도에서 몇 달 더 숙성한다. 일주일 정도면 마실 수 있는 단양주에 비해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술이다. '천비향' 즉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공과 법이 담긴 술이다.


증류주들은 높은 도수이지만 목넘김이 부드럽다. 숙성이라는 비밀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얻어지는 것이다.


평택의 일몰도 일품이다

[좋은 술]의 술들은 우리 술 품평회 및 여러 곳에서 상을 받으며 품질을 인정받았다. 사실 조용히 한 모금 입으로 넘기는 것으로 그 품질을 인정할 만하다.


"쌀로 범벅을 만들어 밑술을 합니다. 이건 그 범벅을 만드는 기계입니다. 취미로 하시는 분들은 손으로도 가능하지만 상업 양조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런 기계를 직접 만들어 설치했습니다. 몸이 부서지지 않고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한 선택입니다. 그다음이 술을 짜는 기계입니다."


깔끔하고 먼지 하나 없는 양조장 안에는 직접 술을 빚는 이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고안된 기계들이 있었다. 이런 하나하나가 [좋은 술]의 깊은 맛을 만드는 비밀이 아닐는지. 맛있고 향긋한 술을 빚기 위해 몇 번이고 수고로움을 감당하지만, 그것을 좀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고자 노력하는 곳, [좋은 술] 양조장은 내게 그런 느낌을 주었다. 천년의 향기를 간직한 술을 오래도록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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