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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로스 Jan 31. 2019

그런 날도 있었지.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던가. 그 날은 아마 나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날이었나 보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으나 누구도 연락을 받지 않던 날. 모두 일정이 있어서 만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어본 날이기도 하네. 아마 한동안 연애를 쉬고 있을 때였을 거다. 나란 사람은 다른 이들과 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방구석에 멍하니 있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날은 그런 감정이 가장 부풀이 오른 날이 아니었을까.


처음엔 잠시 통화하면서 적막한 방을 채우고자 했다. 그런데 네 명이 되도록 전화를 받은 사람이 없었다. 기름종이같이 얇은 내 인간관계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득 초조해지면서 여섯 번째 통화버튼을 누르는 데 다행히 받더라.


‘미안, 오늘은 안 되겠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보는 친구들부터 1년에 한두 번 보곤 하는 지인들까지 모두 바쁜 날이었다. 우연히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왠지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 하긴, 갑자기 저녁에 연락해서 밤에 보자고 하는 게 무리고 부담일 수 있지.


나는 계획적인 만남보다 충동적으로 만나는 걸 좋아한다. 밥솥에서 밥을 퍼내다가, 길바닥에 흩어져있는 전단지를 보다가, 집에 가는 버스에 앉자마자. 그렇게 개연성 없이 상대가 떠오르면 연락하고 만날 약속을 잡곤 했다. 가능하면 빨리 말이다.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만났을 때 감동을 상상하며 설렘이 불어나기 시작한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 날짜가 올 때까지 혼자 백 미터 달리기를 한다. 평소에 하던 일은 건성건성 처리하고 만나서 할 일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간다. 시간이 소중한 건 잘 알지만 이때만큼은 기다리는 시간을 드러내고 싶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끝도 없이 치솟아 오르다 어느 순간 무덤덤해진다. 시큰둥한 마음에 왠지 약속을 취소하고 싶기도 하다. 좀 더 어렸을 땐 그런 이유로 집에서 쉰 적도 있다.


연락을 계속 돌리다 둘만 보기엔 왠지 어색한 사람 전화번호 위에서 손가락이 멈칫했다. 이 사람은 만나면 반갑고 좋은데 이상하게 5분 이상 대화를 하기 힘들다. 말을 할 때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커피잔 손잡이나 폰을 만지작 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할 말이 다 떨어지면 긴 침묵이 흐른다. 서로 조심히 내뱉는 숨소리마저 크게 들렸던 기억이 있다.


다음에 이 사람이랑 만날 때는 시끄러운 곳에서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결국 폰을 뒤집었다. 뒤집어 놓고도 이 사람은 항상 한가한 사람이라 부르면 나올 텐데 라는 미련이 생겼지만 굳은 마음을 먹고 오늘은 혼자 있기로 한다. 혼자가 되어서 그런 걸까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있고 싶다는 투정을 부리고 싶은 걸까. 그날은 그런 생각을 하며 뒤척거리다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북적거렸던 동호회 모임에서 한껏 취한 내 모습이 나온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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