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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May 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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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부재의 시대에 부쳐

라인의 CEO 모리카와 씨가 밝히는 라인의 비상식 경영에는 ‘비전은 필요 없다.’라는 대목이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심플을 생각한다』에서 비전을 세우는 것은 무용하며 나아가 혁신에 방해가 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비전이라는 것이 구성원들을 안심시켜 변화에 둔감하게 만들고 나아가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없게끔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이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위기감 속에서 불안해해야 하며 이래야만 기업의 생존력이 길러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존력을 통해 기업은 혁신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재미있는 접근 이기는 하나 반례를 들 것도 없이 전제부터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과연 불안하면 예민해진다는 것은 맞는 말일까?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총량은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정해져 있다. 불안이 증가되면 그만큼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정신적 리소스는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은 지식근로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업무 환경 속의 불안요인을 제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모리카와 씨는 거꾸로 회사가 불안을 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불안이 조장되는 환경에서 직원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보다는 생존에 매달리게 되라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이는 주위의 불안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인간 심리의 본연이기 때문에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데도 정말 불안감이 고객의 목소리를 더 예민하게 듣게 하고 나아가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게 해줄까?


이렇게 비전 무용론을 펼치는 것은 모기업 네이버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네이버는 공표한 비전이 없다. 홈페이지 어느 곳을 봐도, 기사를 찾아보더라도 회사의 비전을 명시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나 사내 소통의 자리에서도 네이버가 명시적 비전 없이 경영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상황이 급변하는데 비전이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단, 시기에 따른 목표를 제시한 적은 있다. (2015년 네이버는 중기 사업 목표로써 Global & Mobile을 내세운 적 있다.) 미션, 비전, 목표, 전략, 전술로 이어지는 기업 경영 방향 도출 과정에서 미션과 비전은 생략되어있는 셈이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대부분 회사의 방향성을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편이다. 그것이 사명이 될 수도, 비전이 될 수도, 혹은 슬로건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흔히 ‘경영 이념’이라 불리며 기업의 정신을 나타낸다. 이러한 기업 정신은 누군가가 이 회사를 택하고, 이 회사에서 일을 하며, 이 회사의 제품을 사는 이유를 축약해줄 수 있는 정수(Quintessence)이다. 그래서 잘 만들어진 기업 비전은 기업의 특성을 고스란히 잘 담고 있다.



Facebook, “To give people the power toshare and make the world more open and connected.”


Alibaba, “To make it easy to do businessanywhere.”


Paypal, “To build the Web’s mostconvenient, secure, cost-effective payment solution.”


Google, “To organize the world’sinformation and make it universally accessible and useful.”


Nike, “Bring inspiration and innovation toevery athlete in the world. If you have a body, you are an athlete.”


Ferrari, “To makeunique sports cars that represent the finest in Italian design andcraftsmanship, both on the track and on the road.”



이렇듯 잘 만들어진 비전은 브랜드의 특성을 포괄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또 대부분의 잘 나가는 기업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바를 비전을 통해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활용해 고객과 적절히 소통한다. 애플의 경우 ‘Think Different’와 같은 뚜렷한 슬로건으로 고객과 소통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힘이 되는 인간적 도구를 제공하여 우리가 일하고, 배우고, 소통하는 방법을 변화시킨다.”라는 비전을 대내외에 공표하여 그 회사가 추구하는 바가 명확히 하고 있다. 또,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하지 기계나 시스템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지속적으로 밝혀 애플이 지향하는 업의 방향을 알려 고객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기업들이 비전, 미래 가치, 경영 이념들을 정해놓고 있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기업의 색깔, 철학, 특징을 담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그나마 가장 훌륭한 기업 철학을 내세운 기업이 CJ 그룹이다. ‘생활을 바꾸는 기업’이라는 슬로건과 더불어 ‘건강, 즐거움, 편리를 창조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기업 비전을 제시하여 자신들이 생활 문화 영역에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자 한다는 목표가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렇게 간혹 대기업 중에 훌륭한 비전을 제시하는 기업들인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평이한 모범 답안’을 기업 비전으로 삼고 있다. 시가총액 10위 이내의 기업들을 살펴보자.



삼성전자, “미래사회에 대한 영감, 새로운 미래 창조”



SK하이닉스, 명시적 비전 없음



현대차, “창의적 사고와 끝없는 도전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함으로써 인류사회의 꿈을 실현합니다.”



네이버, 명시적 비전 없음



한국 전력, “Smart Energy Creator, KEPCO – 창조와 융합의 에너지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창출하며 깨끗하고 편리한 에너지 세상을 열어가는 기업”



삼성 물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 실현”


현대 모비스, “자동차에서 삶의 동반자로”



포스코, “POSCO The Great”



신한금융지주, “금융의 힘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


삼성생명, “진정성 있는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고객과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회사,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회사‘가 되고자 합니다.”



몇몇 회사는 업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고 그 방향성도 또렷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의미하는 바나 목적이 불분명하다. 심지어 몇몇 회사의 비전은 ‘이 회사가 이런 걸 하는 회사가 아닐 텐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듣고는 ‘그래도 저 기업은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성공한 기업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맞는 이야기다. 기업의 성공을 구성하는 요소는 워낙 많고 요소와 요소 사이의 상관 관계도 복잡하니 기업 비전이 성공을 좌우할 수 없는 요인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은 기업이 효율성, 지속 가능성을 위해 결코 약화시키면 안 될 가치 임 은분 명하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1. 대의에 헌신하는 느낌

2차 세계대전 말, 미국의 생산량은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아무리 자원과 사람이 미국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한 나라의 생산량이 나머지 참전국의 생산량을 다 합친 것보다 많았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몇몇 학자는 이를 두고 미국이 국민의 생산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던 비결로 국민들에게 ‘대의에 헌신하는 느낌을 적절히 심어주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즉,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장차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승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느낌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의에 기여하는 바가 명확한 상황에서는 비록 스스로 생각하기에 하찮거나 어려운 일이라도 주어진 바 소임을 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비전도 이러한 역할을 한다. 각 사업부별, 부서별 목표의 상위에 있는 기업의 대의가 있다면 이를 직원들에게 공유 전파함으로써 직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이 장차 기업의 대의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는 직원들이 일을 하는데 명분과 이유, 나아가 동기를 제공한다. 더불어 내가 속한 조직이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동질감, 즉 동료 의식을 고취시킨다. 함께 같은 목표에 헌신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 조직, 나아가 기업의 시너지는 상상 이상으로 발휘될 것이다.



2. 행동으로 이어지는 신념

기업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믿는 것이 바로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주는 것은 일하는 사람들의 신뢰 체계에 기업의 방향성이 반영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즉, 잘 만들어진 비전은 직원들의 신념에 투영되어 그들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좋은 비전이 있다고 해서 모든 직원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는 기업에서는 기업의 철학이나 방향성을 따르는 직원을 찾아볼 수 없다.) 신념 체계는 생각을 낳는다. 생각은 자연스레 행동으로 이어진다. 


Benz, “Das beste, oder nich”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



BMW, “Sheer driving pleasure” 진정한 운전의 즐거움



Volvo, “Volvo for life” 생명을 위한 볼보



Lexus, “The relentless pursuit ofperfection” 완벽에 대한 끝없는 추구



위의 예들은 지향하는 바가 명확한 자동차 회사들의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 들은 실제로 이들 회사들이 만들어내는 자동차들과도 잘 매칭 되는 느낌을 준다. 즉, 제품에 철학이 잘 반영된 경우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기업의 직원들은 기업의 철학을 자신의 신념 체계 속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소화한 기업의 철학은 직원들의 생각을 통해 행동으로 표출되게 된다. 예를 들어 안전에 대한 철학이 투철한 Volvo社의 직원을 생각해 보자. 차량을 설계하고 생산하는 데 있어서 원가절감, 고급화, 기능 고도화 등의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할 텐데, 어떠한 경우에도 안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테지만 그들의 결정은 회사가 지향하는 신념에 근거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듯 기업의 신념이 개인에게 잘 전달된 기업은 자율성을 부여하기도 좋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더라도 그 방향이 어긋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반대로 방향성도 제시하지 않은 채 개개인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면 직원은 스스로 업무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전체의 방향성이 없으니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어떠한 신념으로, 나아가 어떠한 생각으로 일하는지 알 수 없다. (이에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필요가 발생한다.) 이 경우 자율성은 직원들에게 불안으로 돌아올 뿐이다.



3. 창의성의 토대

만일 조준해야 할 과녁이 명확하지 않다면, 또 여러 개라면 하나의 과녁이 있을 때 보다 명중시킬 수 있는 확률은 떨어질 것이다.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정해주는 것이 기업 내 불안을 줄이고 창의성을 증진시키는 토대가 된다. 

전쟁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이 전쟁을 왜 치루어야 하는지, 누가 적인지,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를 알면 내가 지금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진다. 하지만 전쟁의 이유가 명확치 않고 상대방도 모호한 상황에서 오로지 ‘승리를 쟁취하라’는 구호만 외친다면 어떤 느낌일까. 누군가는 쉽게 지칠 수도, 또 누군가는 아군을 적군으로 오인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혼란하고 불안한 상황에 처한 군사는 사기가 높을 수 없다. 낮은 사기는 본인의 생존에 집중하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전쟁에 참여한 이들에게 이 전쟁에서 왜 이겨야 하는지, 적군은 누구인지, 수행해야 할 전략과 전술은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만 한다. 그러면 개인은 스스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걱정 없이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방도를 찾게 될 것이다. 큰 변혁과 혁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이 처한 현실에서 벌어지는 작은 혁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작은 혁신이 결국 조직의 DNA를 규정할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신 조직 논리와 권위, 그리고 규을을 전면에 내세웠다. 혼란해하고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권위와 규율로써 안심시켰다. 이러한 비전의 부재에서 자율성과 자기 동기 부여는 요원한 일일 뿐이다.


비전 부재의 시대에서 많은 이들이 아직도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야’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 ‘지금껏 기업 철학 없이도 잘 살아왔는데’라는 반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목표 설정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목표와 방향 설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기업 비전과 철학의 이야기로는 쉽게 이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좋은 비전은 일해야 하는 명분과 이유를 설명할 수 있고, 신념을 자연스레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해 주며 보다 안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근간이 되지 않겠는가?


어쩌면 지금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일을 멈추고, 머리를 맞대고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모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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