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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May 19. 2017

실패는 그것을 인정할 때 빛난다

실패 근육을 기르는 첫 단계

김어준: 자 그러면 이런 프로필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황상민: 아 참 잘 나신 분이군요. 그리고 자기가 잘났다는 걸 타인에게 보여주려 노력하는,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하고, 공감도 잘하고 배려하고,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새로운 생각, 꿈을 줄 수도 있고. 나는 리얼리스트, 아이디얼리스트 모든 속성을 다 갖추고 있다”라고 보는 거예요.

주변에서 이걸 인정을 해주면 실제로 갖춘 것보다 더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사람 그런데 이 사람은 정작 “뭘 위해서 사니?”라고 하면, “왜 사니?”라고 하면 “저는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고 착한 사람으로 살려고 해요”

이 프로필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아 나는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믿게 돼요.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할 거라고 믿게 되는데 “당신 진짜 그 일을 믿고 합니까?”라고 하면 “아니 네가 어디 감히 거기에 대해서 질문을 해? 그냥 내가 이야기하는 건 다 맞고 올은 거야”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무난하게 착한 사람 근데 “착하다”라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정작 “네가 원하는 게 뭐니?”하면 “제게 뭘 해야 할지를 알려주세요”

이런 분들은 대기업 임원들 성향… 회장님이 시키면 “잘 하겠습니다.”

근데 이런 분들이 정치를 하게 되면 “저는 욕심이 있는 건 아니에요 국민들이 원하시면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는 거죠.


김어준: 내가 욕심이 많아서 하려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요구해서 하는 거다? 역사가 나한테 요구하니까?


황상민: 다른 정치인들은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고 나는 희생자로 나섰기 때문에 나를 공경하고 숭상해야 한다.


김어준: 안 알아주면 되게 억울하겠네요?


황상민: 억울한 정도가 아니고 분명히 이게 하늘이 나에게 준 소명인데 어떡해야 하나라는 갈등을 하게 되죠.


김어준: 자기가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겠네요?


황상민: 그런 상상은 가능하지가 않죠 왜냐면 나는 착한 사람이니까.



황상민: 안철수는 ‘나는 착하고 바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할 뿐 아니라 거기에다가 간혹 나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멋진 생각할 수 있다. 근데 그건 다 책에 나온 이야기거든요. 책에 나온 걸 멋지게 이야기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모든 사람들이 “와 우리의 구세주”해야 돼요. 근데 “단일화를 해야 합니다.” 하면 “누구랑?” 하면서 혼란에 빠지는 거예요.

근데 ‘문재인 컴플랙스’라는 단어를 쓰면 안철수 의원은 더 열 받아요. 억울해요. 


김어준: 왜 그렇게 문재인을 이기고 싶어 합니까?


황상민: 문재인을 이기고 싶다기보다는 문재인은 ‘내가 대통령이 되는 걸 방해한 사람’이에요.


김어준: 안철수 의원의 행보를 보면 문재인과 상관없는 곳에서도 문재인을 봐요. 라이벌이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거든요.


황상민: 문재인 전 대표를 미워하는 건 지지도가 자기보다 높게 나오는 상황을 직면하고 거기에 대응을 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방식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이건 뭐가 잘못된 거야. 이건 노빠들의 패권, 책략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나쁜 사람일 수밖에 없어. 나쁜 사람이어야 해. 그래서 그걸 알려주는 거예요.



모 인터넷 방송에 나왔던 황상민 박사와 김어준의 대화다. 이 대화를 들으면서 난 친숙함, 익숙함을 느꼈다. 저 대화는 안철수 의원이 어떤 심리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었는데 나에게는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심리로 들렸다. 아니, 흔하다가보다는 회사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심리 유형중 하나가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런 심리가 대선에 출마한 사람의 것이라 저리 부각이 되었을 뿐이지,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늘 곁에 두고 접할 법한 일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황상민 박사의 이야기처럼 지나치게 자기중심 적이고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다른 이들의 모습에 예민한 심리의 기저는 아마 '두려움'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오늘날 많은 수의 직장인들이 불안에서 기인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그 불안은 ‘내가 인정받지 못하면 어쩌지?’ , '내가 성장하지 못하면 어쩌지?'일 것이다. 이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은 심리적 방어막을 구축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본인이 장착한 스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자기가 겪은 크고 작은 성공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자기의 경쟁자다 싶은 사람들에게 폄훼나 증오의 감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거꾸로 현대 직장인들의 불안은 불가피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와 회복을 반복한 사람들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사실 실패에 대한 공포는 살면서 겪은 실패의 횟수가 적을수록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삶에서 무수한 실패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패를 마주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본인이 실수,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그것에 겸허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수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기도 한다. 나아가 실패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거나, 다른 사람 탓을 하기도, 아니면 아얘 실패를 감춰버리기도 한다. 이는 아직 우리 사회가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이 지나치게 엄격해서일 것이다. 마치 작은 실패가 모여 나중에 큰 실패를 낳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말이다. 실패를 감추거나 인정하지 못해 미처 실패에서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같은 비슷한 종류의 실패가 발생했을 때 ‘왜 이런 일이 또 나에게’라고 억울해 할 것이다.


실패와 회복의 과정도 연습이 가능하다. 아니 연습 해야 한다.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하고 그로부터 회복에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한다. 그건 마치 훈련을 하면 할수록 특정 상황에 익숙해지는 운동선수와도 같다. 레이업 슛 연습을 하지 않은 농구 선수가 막상 경기에 들어 레이업 슛을 하려면 긴장이 되고 불안한 것처럼 말이다. 실패의 경험, 즉 연습이 없으면 실전에 임했을 때 불안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실수를 하게 되면 쉽게 실망할 것이다. 어쩌면 실망을 넘어 상황을 탓하거나 다른 동료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릴 수도 있다. 만일 레이업 슛을 충분히 연습하고 상황에 익숙한 사람이면 슛을 쏘는 순간도 설령 슛이 실패했을 상황에도 불안해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도 그리고 일터도 실패에 대한 값어치를 너무 적게 매기는 경향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고전적 격언을 구태여 들지 않더라도 그 중요함은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커리어나 역사에 실패의 기록을 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패와 회복의 역사를 가진 사람은 빛이 난다. 그 빛나는 역사를 지는 자들은 쉬이 불안해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졌는지, 성공의 경험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도 밝히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주위의 실패에 공감해주고 실망에 격려를 던질 줄 안다. 우리는 그들을 가까이할 때 좀 더 회복력 있어지고 삶을 통해 의미있는 것들을 익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터가 조장하는 '공포적 실패 기피'는 실무와 책임의 모호한 구분에서 오는 측면도 있다.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조직을 리드하는 ‘책임자’가 책임을 진다. 그리고 ‘실무자’가 그 책임 하에서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일터가 실무와 책임을 모호하게 인식하고 있다. ‘XX 씨 이번 건은 XX 씨가 책임지고 해보세요.’라는 말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왜 권한은 지시자가 다 갖고 있으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실무자에게 묻는 것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이야기 하지 않을까? 사실 일터에서 가장 흔하게 들어야 하는 것은 ‘실패해도 괜찮아. 책임자는 당신이 아니니까.’라는 말 아닐까?


실패하고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복은 단순하다. 실패나 실수를 부정하지 않으면 된다. 실패를 인정하는 데에서 실패에 대한 회복은 시작된다. 이는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성공에 대한 강박, 그리고 그에 따른 불안으로 가려졌던 내 주위의 삶과 일의 의미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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