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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May 26. 2017

좋은 변화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사람을 바라보는 심리적 관성에 대해서

악명 높은 팀장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박찬호 스타일이었다. 업무를 마구 던져댔다. 뿐만 아니라 던지는 틈틈이 직원들을 마이크로 매니지먼트해서 혼을 빼놨다. 심하게 혼내기도 했고 그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왜 그렇게 자랑을 하던지… 팀장이 그러다 보니 팀원들이 하나 둘 떠났다. 그러다 나중에는 그 팀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까지 갔다. 팀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실장 승진에서 그 팀장은 미끄러졌다. 흔히 이야기해 ‘승진에서 물먹은’ 상황이 되었다. 자존심이 무척 강했던 그 팀장은 다른 부서로의 이동을 알아봤다. 나를 이렇게 홀대하는 조직에서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임원들 사이에서는 ‘일은 잘하는 팀장’으로 통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동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동하기로 되어있던 팀에서 난리가 났다.


‘그 팀에 있던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 오는 팀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 회의 도중에 화내고 면박 주는 일상이야 그렇게 저렇게 지나간다지만, 가끔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이성을 잃을 때에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더라. 한번은 회의 중에 같은 팀 지인에게 슬리퍼를 던져다. 80년대 직장에서나 벌어질 일 아닌가? 슬리퍼에 맞은 사람뿐만 아니라 팀 모두가 황당함과 창피함에 분루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민초들의 걱정은 이사에게 제대로 전달될 리 없었다. 이사는 '그렇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면서' 새로운 팀에 팀장으로 합류시켰다.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의식했던 것인지 처음 반년 정도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이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온몸으로 그 사람을 막아내겠다는 나섰던 사람들이 되려 머쓱해졌다. 내심 걱정하던 이사는 자신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고,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으쓱해했다.


그 팀장의 전배가 있은지 일 년이 지나고 그 팀의 사람들이 하나 둘 팀을 떠나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지 알아볼 것도 없이 이런저런 소문을 통해 그 팀의 사정을 접할 수 있었다. 팀장은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니, 일 년 가까이 참아서인지 좀 더 꼬인 심기와 가시 돋친 말로 사람들의 멘탈을 털어댄다고 했다. 사람들 모두 떠난다고 하니 이사는 결국 그 팀장을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가 보다…’


다들 이런 경험이 있지는 않은지… 사람들은 한결같다. 한번 그렇게 보인 사람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누구든 직장생활을 하면서 타인을 평할 때 한 번씩은 입에 담았을 말이 있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잖아.’


정말로 사람이 바뀌지 않는가? 이 ‘가설’이 과연 맞는지, 한번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실제로 바뀌는 사람이 있는가

- 바뀌는 사람이 있다면 왜 그들은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것일까




실제로 바뀌는 사람이 있는가

몇 년 전 육아 책을 보다 발견한 구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배운다. 그것이 심지어 그것이 나쁜 행동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가하는 가정 폭력, 알코올 중독, 흡연 습관 등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많은 수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 보고 배운 부모의 행동을 성인이 돼서도 유지한다고 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약 30% 정도의 아이들은 자신이 답습한 부모의 행동을 성장과정에서 재 평가하고 이를 수정한다고 한다. 학습과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의 변화는 어린 시절 최초로 그 행동을 받아들였을 때가 아니라 성장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부모에게 학대받고 자란 아이는 어린 시절 힘없는 사람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행동을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게 된다. 애초에 어린아이가 부모로부터 맞을 때 ‘아 내가 맞아보니 힘들구나 나도 다른 이들을 때리거나 하면 안 되겠군…’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30%의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배우고 겪어 보니 타인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리고 그 행동을 점진적으로 고쳐 나가게 된다.


비단 꼭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않은 행동이 아니라도 인구의 적지 않은 비중은 자신의 행동 양식을 성찰하고 고찰한다. 또 바꾸려 노력한다. 그것이 지적 능력이 되었건, 운동 능력이나 습관이 되었건 간에 자유 의지를 갖고 스스로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주위에는 변화하는 사람, 그것도 긍정적으로 스스로를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눈에 띄지 않을까

각인 효과는 부정적 사건을 접할 때일수록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작동의 강도도 훨씬 크다. 긍정적 기억보다 부정적 기억일수록 더 깊이, 더 오래 기억된다. 또 더 자주 떠오르는 특징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이 더 친숙한 것은 ‘부정 기억’ 일 것이다. 주변 사람을 인식할 때에도 비슷할 것이고, 그 부정 기억의 효과가 중첩될수록 그 강하게 남는다. 이러한 메커니즘에 인식하지 못하는(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객관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이 '부정 각인'에 대한 이유를 이렇게 해석한다.


‘원래 사람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아.’


즉, 부정 각인의 이유를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는 이야기다. 이렇다 보니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변화하는 사람’은 각인의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좋은 변화는 ‘부정’과 ‘반복’의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려워 기억 속에서 휘발된다.


게다가 심리적 관성도 한 몫 한다. 사람들은 처음 갖고 있는 인식을 변화하려는 수고를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래저래 긍정적 인식을 다른 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우리의 인식 속에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꽤나 비중있게 자리 잡는다.


회사의 평가에서도 이런 인식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만일 당신의 회사가 매우 객관적으로 직원들을 평가하고 있다면, 그 회사는 이상에 가까운 평가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회사의 평가는 인식에 기반해 이루어진다. 많은 회사들이 직원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연초에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설정하게 한다. 하지만 연말에 이를 활용해서 객관적으로 근거해 평가하는 회사는 보지 못했다. 정량적 기준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것이 애초에 어려울뿐더러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경우도 다반사라 KPI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기가 무척 어렵다. 수많은 경영학자들이 지식근로자들에게 KPI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 것이 어쩌면 애초에 KPI를 통해 지식 근로자를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피터 드러커는 지식근로자들에게 KPI가 '불필요'하다고 여러 저서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결국 인식에 기반에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한번 저 성과자로 낙인찍힌 사람에게는 쉽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기 쉽상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희망을 쉽게 접곤 한다.


하지만 사람은 바뀐다. 다만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뿐이다. 저성과자를 낙인찍어 조직의 하단으로 내몰기보다는 다른 인식의 틀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히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이야 말로 종래 갖고 있던 시각이 아닌 다양한 시각으로 함께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많이 긍정적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바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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