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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Jun 09. 2017

브랜드 파워

좀처럼 바뀌지 않는 1등의 비밀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민감한 듯하다. 그 시장을 열었다는 상징성을 갖고자 함 이리라. 실제로 시장에서 최초의 브랜드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물론, 별 중요하지도 않은 것으로 세계 최초를 외치는 기업들이 많아 그 중요성이 반감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특정 시장을 열어젖힌 최초의 브랜드라는 것은 그 시장의 운명과 함께 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시장과 함께 성장하고 시장과 함께 쇠락하는... 단순히 좋은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최초 브랜드가 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보았다.


알카라인 배터리 시장의 사례를 살펴보자.

1896년 National Carbon Company는 세계 최초로 휴대가 가능한 전력원을 선보인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휴대용 전원 시장이 열렸다. National Carbon Company는 이후 Eveready Battery Company로 사명을 바꾸고 같은 이름의 배터리로 시장을 70년간 지배한다. 이후 많은 배터리 업체들이 등장했지만, 그 가운데 어느 업체도 Eveready의 시장 점유율을 따라가지 못했다. 성능상 Eveready 배터리를 능가하는 건전지를 선보인 업체도 있었지만 Eveready의 브랜드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업체는 없었다. 점입가경. 1959년 Eveready는 알카라인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시장에 선보인다. 알카라인 배터리는 기존의 건전지보다  수명 면에서 월등했다. 이 시장에서의 절대 우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듯 보였다. Duracell이 등장하기 전 까지는...


Durable Cell의 약자를 브랜드로 내세운 'Duracell'은 Eveready 보다 알카라인 배터리 개발이 2~3년 정도 늦었다. Duracell 출시 초기, Eveready는 후발 주자에 브랜드 인지도도 미비했던 Duracell을 경쟁 상대로도 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Duracell이 '알카라인 배터리는 Duracell'이라는 전략으로 브랜드 파워를 쌓기 시작했다. 이제는 알카라인 배터리가 기존 건전지를 대체할 것이고 알카라인 배터리는 오래가는 Duracell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알카라인 배터리를 먼저 출시했지만 기존의 건전지와 같은 브랜드 네임 'Eveready'로 시장을 공략했던 Eveready社의 시장 점유율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시장의 최초 브랜드는 Eveready가 아닌 Duracell이었다.


Eveready는 방심했다. Duracell 브랜드는 세계를 평정하게 된다. 뒤늦게 기존 패러다임의 상표인 'Eveready'를 버리고 부랴부랴 'Energizer'로 알카라인 배터리 브랜드를 론칭한다. 하지만 알카라인 배터리 시장의 판도는 이미 Duracell로 넘어간 뒤였다. 물론, 한국처럼 알카라인 배터리 시장에서 Energizer가 브랜드 선점에 성공한 시장도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장에서 Duracell의 브랜드 파워가 우세하다.


이후 에너자이저는 마케팅에 역량을 집중한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대등하거나 나았던 Eveready가 브랜드 전략에서의 오판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 브랜드의 파워라는 것이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사례는 업종과 업태를 가리지 않고 찾아볼 수 있다. 

- 20세기 초 최초로 토마토 케첩(원래 케첩은 버섯, 허브, 생선 등으로 만들어졌다.)을 출시했던 Heinz는 아직까지도 시장 지배 사업자이다.

- 1901년 설립된 Gillette는 안전면도기, 카트리지 면도기 시장을 연 장본인이다. 1926년 Schick 등장해 대등한 품질로 100년 넘게 Gillette를 추격했지만 단 한 번도 Gillette는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 수동 SLR 카메라 시장의 맹주였던 니콘은 자동 초점 카메라가 등장하는 시점에도 별도의 브랜딩 전략을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캐논은 EOS(Electic Optical System)이라는 브랜드로 시장 공략에 나섰고 지금까지도 전문가 카메라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 무선 통신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하여 브랜드를 구축한 SKT도 전통의 유선 인터넷 강자인 KT도 최초 확보한 시장 점유율을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다.

- 아무리 미국 내에서 자국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고 해도 GM은 미국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의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단일 시장에서 브랜드 효과는 강력하다. 국내 시장의 현대 자동차처럼...

- 워크맨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휴대용 음향기기 시장에서 소니의 지배력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MP3가 등장하고 나서는 Apple의 iPod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었다. 아이리버가 턱밑(2위)까지 따라간 적이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런 강력한 브랜드의 파워는 비단 제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IT, 인터넷 서비스, 모바일 서비스 등에도 선도 진입한 최초의 브랜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 네이버는 질답형(질문 응답형) 검색의 시장을 열었다. 이후 한 번도 검색 점유율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 카카오가 메신저 시장을 접수한 이후 수많은 메신저가 등장했지만 점유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 피처폰 시장에서는 만년 3위였던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갤럭시'브랜드로 가장 먼저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후속 기업들의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1위를 수성 중이다.

- 브라운관 시장에서 고전하던 삼성전자는 LCD로 시장이 개편되는 타이밍에 맞춰 보르도 TV 등의 브랜드 TV를 잇달아 출시한다. 그 전략은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은 도요타가 주도할 것이지만, 내연기관이 없는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가 브랜드 주도권을 잡았고 앞으로도 이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다.



물론 강력한 브랜드만 갖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사업이 잘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업 이외의 요인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다른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신규 시장에 전이시켜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합병을 통해 시장의 판도를 바꾸려는 시도도 지속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신규 시장에 초도 진입한 브랜드가 그 시장의 절대 강자의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법칙'처럼 지켜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의 브랜드를 살펴보면 정말 많은 부분 그러한 추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은 반드시 브랜드 전략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시장 내 브랜드 현황은 시장에 진입하는 데 있어서 시기와 가부 여부를 결정하는데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이미 절대 강자가 있는 시장에 같은 패러다임의 제품을 갖고 들어가는 것은 필패(必敗)의 길이다. 열심히 하면, 혹은 디자인이나 서비스에서 우위를 거두면, 아니면 기능이나 가격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면 시장을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웬만큼 새롭지 않으면 뒤집지 않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니면 말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선행 후명이라 했던가. 어찌하다 보니 새로운 시장을 열고 이후 그 시장의 변화를 규정하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장을 재차 열어젖힌 회사들 보면 그 목표와 이상이 충격적(?)으로 먼 경우가 있다. 회사의 비전이나 목표가 듣는 순간 '허~' 소리가 나올 정도로 황당할 정도로 말이다. '일단 똑같이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보다 '어찌 되었건 세상에 없는 것을 꿈꾸자'는 자들이 변화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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