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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 Jan 31. 2019

구급차가 두려웠던 할머니

무엇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는가

"언니이이!"


빽 지르는 절규. 고개를 돌려보니 보라색 방한복 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얼굴을 박은채 쓰러져 계신다. 이어 옆에 계신 다른 할머니는 다시금 큰소리로 외친다.


"제발! 누군가... 좀 도와주세요."


언니 왜 그래, 어깨를 두드려 깨워본다. 꿈쩍 하지 않는데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싶다. 119라는 번호를 눌러본다. 이 번호를 눌렀던 적이 있기나 했나 싶었다.


협력 업체를 만나러 옛 직장 근처에 왔던 차였다. 오래간만에 익숙한 거리에 접어들어 색다른 감회에 젖을 즈음 벌어진 일이었다. 전화통을 붙잡고 무단횡단을 한 채로 쓰러진 분께로 달려가 본다. 네 119 상황실입니다, 라는 말이 들려올 때 까지도 그 할머니는 꿈쩍하지 않는다.


"할머니 한분이 쓰러지셨어요. LG전자 우면 사옥 정문 앞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니 차분한 대꾸가 들려온다.

"할머니 의식 있으신가요?"


엎드려 계시던 분은 옆의 할머니의 손에 흔들려 정신을 차리는 듯하다.

"의식은 있으신 것 같아요."

다시 차분한 대꾸,

"정확한 위치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 여기가 그... 우면동 LG 전자 앞이라고 밖에..."

당황하고 있는데, 상황을 보고 길 건너에서 뛰어온 과일가게 아저씨가 주소를 불러준다.


"네 출동합니다. 5분 내로 도착합니다."


통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전화 걸 때 의례히 들리던 '뚜루루~' 소리는 들렸던가?


정신을 잡고 보니 옆의 할머니가 엎드려 계시던 분을 일으켜 세운다.


"할머니 일으켜 세우지 마세요! 어지러우신 분을 억지로 잡아 일으키면 어떻게 합니까?"

옆의 할머니는 미간에 주름을 세우며 되려 호통을 치신다.

"아니야 일으켜 세워야 해...!"

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보고 있지만 말고 젊은이가 좀 부축 좀 해줘."


가까운 버스 정류장 의자로 옮겨 드리려 할머니를 안고 몸을 돌렸다. 대략 스무 명의 사람이 둘러싼 채였다. 경황을 찾고 나서야 주위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해 할머니 얼굴에서 피나, 라는 말소리. 새하얀 얼굴에 두줄의 열상이, 마치 색연필로 그은 듯 도드라졌다. 하나는 코에, 하나는 눈 고리에. 코를 가로지른 상처를 보니, 혹시 코가 부러진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엉거주춤 부축을 한채 발을 옮긴다. 문득 일 년 전 이맘때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일 년 넘는 병환에 힘겹게 세상을 뜬 할머니.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자 갑자기 겁이 난다.


벤치에 앉혀 드리자 '아이고'하는 한숨을 내뱉으신다. 정신이 드시는가 보다.

"언니 이제 가자."

라는 옆의 할머니의 말을 듣고는 황당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윽박질렀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사람이 쓰러졌는데 집에 가다뇨. 이제 곧 구급차 오니까 병원에 가셔서 진찰이라도 받아보게 하세요. 대체 무슨 연유로 쓰러지셨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자 옆에서 엉거주춤 부축하며 앉아있던 할머니가 눈을 팔자로 만들면서,

"이 언니 보호자 할 사람이 없어. 어떻게 병원을 가..."

말끝을 흐린다.


아니, 의료보험이 있을 텐데. 병원에 못 가신다니. 이게 맞는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분께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하나, 여기가 미국이 아닐진대 병원비가 무서울 리 없을 텐데.

"아냐 우리 그냥 가야 해..."

"아뇨, 그래도 그냥 가시기엔"

만류해보건만. 우격다짐으로 지나가던 택시를 잡으신다. 그리고 뒷자리에 욱여넣듯이 편찮으신 그분을 태우고 출발하려는 찰나, 마침 전화가 왔다. 한 손으로는 택시 문을 닫지 못하게끔 잡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구급대입니다. 2Km 전방입니다. 현재 상황은 어떠신가요?"

여성 대원의 차분한 목소리.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목소리다. 구급대원들은 경황없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하게 발성하는 법을 배우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화로나마 내 편이 생겼다는 생각에 일러바치는 듯이

"저기요, 근데 할머니들이 그냥 가시려고 해요. 제 생각에는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


이내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그런 분들은 저희들이 가더라도 구급차에 탑승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보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건 좀..."


택시 문이 닫히고. 차는 떠났다.


사람들은 하나둘 갈길을 가고. 나는 홀로 황망히 보도블록을 딛고 서있다. 더웠다. 너무 더웠다. 파카 속 몸이 땀으로 흥건하다는 걸 깨달았다. 겉옷을 벗었다. 이내 오한이 스민다.


할머니는 무엇을 걱정한 것인가. 보호자가 없다며 도망치듯 떠난 이유가 무얼까. 우두커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무엇인가. 보호자가 없다고는 하지만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본인의 증상이 확정되는 순간 지불해야 하는 병원비가 걱정됐던 걸까. 아니 어쩌면 이미 편찮은 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얼굴로 넘어질 수 있겠는가.


이 씁쓸함은 뭔가. 도대체.

그녀는 무엇이 두려워 자리를 피했는지 이해하려 노력할수록 머리는 복잡해졌다. 단, 숙명적으로 늙어가는 인간으로의 두려움은 새삼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늙고 병드는 것을 넘어서, 어느 사회에서 늙고 병드느냐가 공포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사회에서 늙는 것이라는 '걱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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