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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Oct 30. 2022

극한직업 배달기사

4. 징글징글한 겨울 배달

극한직업 배달기사

사람들은 겨울 하면 첫눈과 크리스마스가 기다린다. 나도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그러나 소위 이 배달 직종에 종사하면서 눈이 싫어졌고 크리스마스는 징글징글하다. 나는 가끔 밤에 꿈을 꾼다. 자동차가 내 스쿠터를 들이받아 도로 위에 나뒹굴다 죽는 꿈. 너덜너덜한 내 몸..... 


교통사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눈과 비는 공포에 대상이 돼버렸다.


라이더는 프리랜서와 계약직이 있다. 프리랜서는 말 그대로 출퇴근이 조금은 자유롭지만, 나 같은 계약직은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출근해야 한다. 눈 비 오는 날은 라이더들이 가장 꺼려하는 날이다. 사고 가능성 때문이다. 드디어 첫눈이 나타났다. 이때는 완전무장을 해야 한다. 내복과 방한복, 두꺼운 겨울용 장갑과 바이크용 바람막이 장갑, 바이크용 마스크, 겨울용 장화 등... 완전무장하면 걷기도 힘들다.


한 번은 종로에서 홍은동까지 상당한 먼 거리 주문이 올라왔다.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이 주문을 잡지 않는다. 일명 잔반 처리해야 할 배달 주문. 보통 계약직 중에 선택되어 전화가 온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에서 오퍼레이터 전화다. 




'라이더님, 죄송하지만 이 건 좀 해주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런 장거리 배달은 배달료가 5천 원에서 1만원 사이가 되지만, 위험한 질주를 해야 한다. 눈 내리는 도로 위에서 전쟁 같은 교통상황을 뚫고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긴장된 마음을 스쿠터 손잡이를 꾹 잡고 출발했다.


오토바이 헬멧 커버를 덮으면 눈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헬멧 커버를 올리니 얼굴 안으로 흰 눈과 바람이 들이친다. 눈에서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반쯤 커버를 열고, 실눈을 뜨고  고개 운전을 해야 했다. 얼마나 긴장하면서 운전을 했는지 몸이 다 아파온다. 이 놈의 칼 같은 바람은 두꺼운 패딩 틈으로도 몰아쳐 들어왔다. 




1시간 반가량이 걸려 배달 1건을 마쳤다. 이런 주문 건은 진이 다 빠진다. 편의점 옆에 바이크를 주차하고 한숨 돌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연인들과 취객들이 가득하다. '다들 행복한 크리스마스네. 나만 빼고' 이러고 있는데....'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쉬고 가려니 내 바이크가 쓰러져 있었다.


한 청년이 알려줬다. 취객이 내 바이크에 기대는 바람에 쓰러졌다. 앞 범퍼가 깨지고 취객을 나 몰라라 도망을 갔다. 퇴근 시간에 날벼락을 맞고 망연자실했다. 자정이 지날 무렵, 아무도 없는 깜깜한 골목길 가로등 밑에서 우두커니 담배를 피웠다. 귓가에 김윤아의 야상곡이 흘러나오는데, 눈물이 맺혔다. 오늘 일당 범퍼 값으로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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