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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Oct 30. 2022

극한직업 배달기사

5. 비 오는 날 슬립

극한직업 배달기사

오늘도 무사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비옷을 입고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었다. 배달하고부터 날씨에 민감해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점심 저녁에 몰리는 주문을 소화하기에 바빴다. 특히 비 오는 날은 주문건수가 밀려 난리가 난다. 라이더들이 속도를 낼 수 없으니, 배달전쟁이 일어난다.


라이더 하는 동안 나는 못된 자동차 운전들에게 많은 자극을 받았다. 특히 비 오는 날을 운전자들은 상당히 예민한 상태다. 앞은 잘 보이지 않고 오토바이들은 차 사이를 지나다니니, 서로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벼들 자세를 취한다. 이게 안 보여도 자동차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워낙 겁이 많이 교통신호는 웬만하면 지키며 간다. 비 오는 날 저녁 광화문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시내 한복판이라도 비 때문에 골목 안쪽 도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배달을 마치고 커브를 틀었다. 그때 스쿠터가 휘청하면서 넘어지고 몇 미터를 쫘~악 미끄러졌다. 만약 반대차선에서 차가 왔다면 사망사고로 이어진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장갑으로 브레이크를 걸고 보도블록에 걸려 멈췄다. '휴우~~' 절로 한숨이 내쉬어졌다. 비가 도로 위에 잔잔하게 얼어있었다. 오토바이가 깨지고 종아리 쪽에 피가 났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제가 슬립 났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할 거 같네요'. 


slip:[동사] 미끄러지다(넘어지거나 거의 넘어질 뻔하게 잠깐 미끄러짐을 나타냄)


비를 맞으며 두꺼운 바지를 올리니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 뼈가 드러났다. 급하게 병원을 찾았다. 살점이 떨어져 내 흰 뼈를 처음 봤다.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마취하고 더러운 오물을 한참을 씻어냈다. 상처가 꽤 컸다. 지금도 내 정강이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있다. 


라이더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다. 가끔 다른 라이더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스팔트에 턱이 갈려서 얼굴 반이 날아갔다! 음주운전 차량으로 야간 라이더가 죽었데!, 그 친구 다리가 깔려서 장애인 됐어!'라는 소리를 대기실에서 듣곤 한다.


멋모르고 도전한 배달일이 이렇게 극한직업이었다니. 아직도 남아있는 정강이 흉터를 바라보면 아찔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사망할까? 뉴스에서 배달 라이더들의 고개 운전으로 인식이 좋지 않다. 


나 또한 위험하게 운전하는 라이더들을 보며 비난한 적도 있다.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이 직업군을 비하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좋은 라이더들도 많았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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